ADVERTISEMENT
오피니언 글로벌 아이

여유로움과는 거리 먼 미국 서머타임 논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안착히 글로벌협력팀장

안착히 글로벌협력팀장

지난 10일, 미국 애리조나 주와 하와이 주를 제외한 총 48개 주에서 한 시간이 사라졌다. 현지 시간 오전 1시 59분 59초가 지나면서 시계추는 오전 2시가 아닌 3시로 훌쩍 건너뛴(spring forward: 봄을 맞아 시간을 앞당긴다는 표현) 것이다. 다소 생소하게 들려도 1918년 일시적으로 도입된 이 일광절약시간(Daylight Saving Time)은 이후 1966년 미 연방 통일시간법 채택에 따라 현재까지 실시되고 있다.

우리에게는 서머타임(Summer Time)으로 알려진 이 제도는 미국 뿐 아니라 영국과 유럽연합(EU) 회원국·캐나다·호주 등 세계 70여 국가에서 시행되고 있다. 미국은 3월 둘째 주 일요일에서 11월 첫째 주 일요일까지 8개월간 이어지고, 유럽은 3월 말에 시작해 7개월 뒤인 10월 말에 종료한다. 추위가 물러가 활동하기 좋은 계절에 태양광을 한 시간 ‘늘려’ 소비를 촉진하고 따뜻한 야외에서 저녁 시간을 즐기며 인공조명에 필요한 에너지를 절약하자는 취지다.

3월 10일(현지시간) 실시된 일광절약시간의 시작을 알리는 SNS 안내. [ABCNews 인스타그램 캡처]

3월 10일(현지시간) 실시된 일광절약시간의 시작을 알리는 SNS 안내. [ABCNews 인스타그램 캡처]

미국 인구 3억 2천만 명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따를 수밖에 없는 제도이다 보니 말도 많고 탈도 많다. 도입 후 수십 년 간 찬반 논쟁이 이어지자 미국 상원은 2022년 매년 두 차례나 시간을 조정하는 번거로움과 수면 시간 변화에 따른 건강 문제, 또 이에 따른 교통사고 유발 같은 위험 부담이 크다며 일광절약시간을 일 년 내내 시행하자는 햇빛보호법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하지만 이런 결정에도 불구하고 기존 표준시간이 생체리듬에 더 적합하다는 의학계 의견과 일반 시민 반대가 만만치 않아 아직도 하원에서 계류 중이다.

연방의회 차원의 법 도입이 요원해지자 이제는 주별로 표준시간 또는 일광절약시간으로 통일하자는 움직임에 힘이 실리고 있다. 주 차원에서 연중 일광절약시간을 택할 경우 연방의회 승인이 필요하지만, 기존 표준시간을 택하면 연방 차원의 승인 없이 주법이 확정된다. 이럴 경우 현재도 4개의 각기 다른 표준시간대로 구별된 북미 대륙에 복잡한 주별 서머타임 도입 여부가 여러 혼선과 막중한 경제적 손실을 가져올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물론 좀 귀찮아도 수면시간 60분 사라지는 게 대수냐고 반문하는 이도 많다. 어차피 가을이 오면 시계를 한 시간 뒤로 되돌려(fall back: 가을에는 시간을 뒤로 늦추라는 표현) 따뜻한 이불 속에서 좀 더 잘 수 있지 않느냐고 말이다. 한편으론 ‘조삼모사’의 논쟁처럼 보이지만, 결정의 순간으로 다가가고 있는 것 역시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