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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마지막 회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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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이도성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이도성 베이징 특파원

이도성 베이징 특파원

중국에 있는 전 세계 언론사의 특파원들이 7일 이른 아침부터 베이징 미디어센터에 몰렸다. 입구부터 경계가 삼엄했다. 이름, 사진, 소속이 적힌 기자증을 일일이 확인하고서야 차량이 지날 수 있게 정문을 열어줬다. 건물로 들어설 땐 국제공항 출국장에 온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엑스레이 검사대와 금속탐지기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수색받았다. 이 과정을 통과해야 2층 회의실로 오를 수 있었다. 이날 왕이 중국 외교부장의 기자회견이 열리는 곳이다.

지난 7일 중국 베이징미디어센터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 기자 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는 왕이 외교부장. 이도성 기자

지난 7일 중국 베이징미디어센터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 기자 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는 왕이 외교부장. 이도성 기자

기자회견은 오전 10시로 공지됐지만 자리 다툼이 치열했다. 약 3시간 전부터 취재진이 몰려 300석 넘게 마련한 좌석엔 빈 곳이 없었다. 100대에 가까운 방송 카메라가 연단을 비추고 있었다. 10시 정각이 되자 왕 부장이 등장했다. 수백 명의 눈동자가 한 곳을 향했다. 준비한 인사말을 마친 왕 부장은 1시간 30분 넘게 질의응답을 이어갔다. 내외신 기자 21명에게 질문받고 일일이 답했다. 특히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는 “근본적인 길은 북한의 합리적인 안보 우려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회견 종료 후에도 일부 기자들이 연단으로 달려가 질문을 쏟아냈다. 한 일본 기자는 “우리에겐 질문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음 질문 기회는 없을지도 모른다. 이번이 외교부장으로서의 마지막 기자회견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1953년생으로 올해 만 70세인 왕 부장은 앞서 10년 동안 외교부장 자리를 맡은 뒤 부총리급인 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으로 영전했다. 하지만 후임인 친강 전 외교부장이 면직되면서 지난해 7월부터 외교부장을 겸임하고 있다.

한 직급 아래인 외교부장을 겸한 건 임시방편이라는 분석이다. 후임 외교부장으로는 류젠차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거론된다. 류 부장은 외교부 대변인 출신으로 주필리핀대사와 주인도네시아대사 등을 지냈다. ‘사드 배치’ 관련 논의가 본격화되던 2015년 3월엔 서울을 방문해 외교 협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앞서 왕 부장은 올해 신년 축사에서 한국 이야기를 쏙 빼놨다. 중국 외교정책 방향을 설명하면서 미국, 러시아, 일본 등을 차례로 언급했지만 한국은 거론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최근 소원해진 한·중 관계의 현주소다. 앞으로 중국 외교가 나아갈 변화의 방향에 관심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