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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수의료 의사에게 핀셋형 보상책 이뤄져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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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경수 영남대 예방의학교실 교수·산학연구부총장

이경수 영남대 예방의학교실 교수·산학연구부총장

의대 정원 증원 이슈가 사회적 블랙홀이 되며, 당초 국민 건강을 위해 획기적으로 강화하려는 필수의료와 지역의료 살리기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필수의료는 중증·응급·소아·임산부 환자 등과 같이 의사가 환자 곁을 지켜야 하는 의료서비스이다. 이를 제공하는 의사들의 삶의 질을 보장해 주는 정책이 필수의료를 살리는 길이다. 그러나 정작 이들은 본인·가족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과는 거리가 있는 삶을 살 거나 비필수 의사들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대우를 받는 경우도 많다.

건강보험료를 100조원 넘게 쓰지만 필수의료 지원은 보잘것없다. 건강보험료의 낮은 보장성을 보완하고,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실손보험을 도입한 지난 20여 년 동안 의사들은 법적 위험이 적고 경제적 편익이 큰 의료서비스로 급격하게 이동하게 되었고, 필수의료는 급격하게 위축되었다.

실손보험 도입후 필수의료 뒷전
비필수 의사보다 낮은 대우 방치
재정 투입해 필수의료 복원해야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규제 완화라는 이름 아래 단계를 밟아 진료를 받는 의료전달체계의 빗장을 풀어버린 결과 서울 가서 진료받는 것을 선호하게 되었고 지역의료는 무너지고 있다. 지난 20여년 동안 필수의료 분야 건강보험수가는 원가에 미치지 못하여 대학병원조차 필수의료 분야를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게 됐다.

고령화 등으로 의료비가 급증하며 건강보험 재정 적자 운영을 이유로 건강보험료 인상은 최소한으로 이루어져 왔다. 정부는 건강보험을 지원하는 정부지원금을 2015년 이후 단 한 번도 법정지원액만큼 지원하지 않아 9년 동안 누적된 지원 부족분이 15조원에 이른다. 필수의료와 지역의료가 온전하게 작동하도록 필수의료에 대한 보상과 의료 이용의 단계를 건강하게 복원해야 하건만 의대 입학생 2000명 증원에 매몰돼 있다.

우리 국민은 전국 어디 가서든 진료받고 입원할 수 있는데, 세계 어떤 나라 환자도 원하는 대로 모든 병원을 문턱 없이 이용하지는 못한다. 이런 방식은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들고 지역의료와 필수의료를 망친다. 또 개인 의원과 대학병원이 경쟁하면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나라는 없다. 경증·중증 관계없이 대형병원을 찾는 극도의 전문의 선호와 의료의 무제한 이용을 방치한 정책 실패의 결과다. 이를 개선하기 위한 주치의 제도 도입 논의가 30년째 되고 있지만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대학병원들이 수도권에 6000병상을 더 지으려 하고, 수십억원 하는 고가 장비를 개인 의원에 수없이 설치하여도 어떤 계획이나 규제가 없는 게 현실이다.

한국 의료제도가 만신창이가 되도록 정부가 방치하였기에 필수의료는 내동댕이쳐졌고, 지역의료는 각자도생의 길을 걷게 됐다. 지금 시급한 것은 의사면허 정지가 아니라 필수의료를 복원시켜 지역의료를 살리는 것이다.

중병이 든 의료체계를 중환자실에서 나오도록 하기 위해서는 의료체계 개혁과 함께, 필수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개인에게 핀셋형 보상책이 이루어져야 한다. 필수의료와 지역의료 복원을 위한 의료 개혁은 거대 담론이 아니라, 현장과 환자 관점에서 이뤄져야 한다. 필수의료를 유지하기 위한 국가 재정을 과감하게 투입하고 건강보험료를 합리적으로 인상하는 것을 미룰 수 없다. 건강보험료를 급격하게 인상하지 못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정부재정을 증액하여 필수의료를 복원시켜야 한다. 건강보험공단은 수가 상환만 하는 출납부 역할을 넘어 지역 단위로 보험 재정을 투입하여 지역에서 적정한 의료서비스와 질병 예방정책이 추진되도록 하여야 한다.

주치의제도를 도입하여 의료전달체계를 재구축함으로써 동네 의원의 기능과 대학병원의 기능을 명확하게 구분하여 의료서비스 생태계를 복원하여야 한다. 무분별한 병상 증가와 고가 의료장비의 설치를 평가하기 위한 장치도 마련하여야 한다.

서울 이외 지역에 수십 개 설치 운영되는 국가 지정 감염병·암·심뇌질환·응급의료·전문질환 센터가 지역 네트워크를 이끌어 지역 단위로 온전하게 기능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또 국가 지정 필수의료 공공의원을 지정하여 운영을 보장함으로써 지역의료 공백이 없도록 하여야 한다. 의과대학 정원 증원이 홍수 난 마을에 마실 물조차 없는 상황으로 가지 않고 의료계 난맥을 극복하여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를 되살리는 계기가 돼야 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경수 영남대 예방의학교실 교수·산학연구부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