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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재선은 한국에 큰 기회 될 수 있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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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라몬 파체코 파르도 영국 킹스칼리지런던 교수·브뤼셀자유대학 KF 한국석좌

라몬 파체코 파르도 영국 킹스칼리지런던 교수·브뤼셀자유대학 KF 한국석좌

거침없는 미·중 경쟁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코로나19 팬데믹의 경제적 여파, 기후변화의 도전, 여기에 북한의 지속적인 도발까지. 세계는 지금 미래가 지극히 불투명한 복합위기의 시대를 맞고 있다.

한국과 같은 중견국 입장에서는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미국과 중국 같은 강대국은 실질적인 행동의 자유를 가지고 있지만 중견국은 대응적인 외교·경제 정책을 펼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새로운 위기에는 새로운 기회가 오기 마련이다. 특히 한국은 국제 정세가 만든 ‘복합기회’를 포착할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다.

지난해 한국 해외 투자 유치 최대
복합위기에 매력적 투자처 부상
불안정한 정세 속 기회 포착 가능

[일러스트=김지윤]

[일러스트=김지윤]

미국과 중국 간 경제·기술 경쟁을 예로 들어보자. 한국의 정책 입안자들과 기업인들은 무역 개방과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따른 다자주의를 강력하게 지지한다. 그러나 이 세계는 조만간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경제안보와 디리스킹(중국과 경제협력을 유지하면서 위험 요인 제거)은 단순한 유행어가 아니다. 미국·중국·유럽연합(EU) 등 ‘빅3’의 산업 정책이 이끄는 세계 경제의 현실이다.

겉으로 보기에 이것은 한국에 곤경을 초래할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통계는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해 187억 달러의 기록적인 해외 투자를 유치했고, 327억 달러의 기록적인 투자 약속을 끌어냈다. 해외 투자자들이 한국에 가장 많이 투자한 분야는 반도체·배터리·선박·자동차 같은 첨단 기술 부문이다. 외국 기업·정부들은 한국 기업들이 세계 경제 성장을 주도할 핵심 부문에서 지금도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낙관한다는 이야기다.

삼성과 ASML이 한국에 첨단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기 위해 7억6000만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사례를 예로 들어보자. 과거 ASML 같은 기업들은 인건비 등 비용을 기준으로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와 경쟁할 수 없는 한국에 투자하는 것을 주저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장 요인보다는 정치가 경제적 의사 결정의 중심이 되면서, 한국은 혁신 주도적이고 안정적 경제 환경 덕분에 더 매력적인 파트너가 되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네덜란드 ASML의 클린룸을 방문한 첫 외국 정상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외국 정부·기업들에 있어 한국을 지지하는 것은 최우선 과제가 되었다.

한국의 증가하는 무기 수출도 현재의 복합위기 환경이 전략적으로 현명하고 제조업 기반이 강한 중견국들에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국방부 추정에 따르면 한국 무기 제조업체들은 지난해 140억 달러 상당의 계약을 체결해 사상 두 번째를 기록했다. 2022년에는 사상 최고치인 173억 달러의 무기 수출 계약을 맺었다. 또 지난해 수입업체는 3배, 무기 시스템 판매는 2배로 증가하는 등 고객이 더욱 다양화됐다.

유럽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러시아의 한층 격화된 공격성에 여전히 경각심을 갖고 있다. 중동에선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 홍해에서 상업용 선박을 위협하는 예멘의 후티 반군의 공격 등으로 몇달 째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폴란드와 에스토니아를 포함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들과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를 포함한 중동 국가들이 한국과 무기 수입 및 방위 협정을 강화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최근 호주와 말레이시아 등 중국의 위협을 느끼는 국가들도 한국의 무기 제조업체에 의존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도널드 트럼프와 같은 신뢰할 수 없는 미국 대통령이 다시 취임할 것이라는 전망과 세계 여러 지역의 불안이 맞물린다면 한국에는 위기가 아니라 큰 기회가 될 수 있다. 그것이 국내 정치의 영향을 받지 않는 주요 분야에서 정부와 민간 기업이 장기적으로 협력하는 것의 핵심 이점인데, 한국은 이 부분에서 탁월하다.

따라서 한국은 단순히 강대국의 변덕이나 불안정한 글로벌 환경에 끊임없이 반응해야 하는 ‘장기판의 졸’이 아니다. 불안정한 세계에서 제 역할을 하는 중견국의 모범이라 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이 표명한 글로벌 중추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어떤 명칭으로 부르든 한국은 복합위기의 세계가 가져오는 복합기회를 포착한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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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몬 파체코 파르도 영국 킹스칼리지런던 교수·브뤼셀자유대학 KF 한국석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