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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푼도 안 되는 이들의 선택이 전체 결과를 바꿀 수 있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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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0호 08면

이준웅의 총선 레이더 ⑦ 요동치는 여론조사 왜

여론조사가 기록한 정당지지도 추세를 보면, 지난 몇 달 동안 여야는 엎치락뒤치락 선두를 다투고 있다. ‘여론은 개인 의견의 총합’이란 표준적이면서도 최소주의적인 정의를 따르자면 개인 의견들이 바뀌지 않고서 이렇게 여론이 변할 수는 없다. 따라서 요동치는 여론조사 결과는 지난 몇 달간 유권자 의견이 그렇게 널뛰었다는 뜻이 되는데, 당신은 진정 이 말을 믿는가.

유권자의 캠페인 메시지에 대한 차별적 수용과 지지의 효과

유권자의 캠페인 메시지에 대한 차별적 수용과 지지의 효과

인간과 사회에 대한 과학적 탐구를 본격화한 20세기 사회과학이 내놓은 몇 안 되는 결론 중의 하나가 ‘이미 형성된 개인의 태도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에 대해 이미 호불호의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의 생각을 극단적으로 이끄는 일은 상대적으로 쉽다. 그러나 도덕적 신념이나 가치에 기초한 정치적 태도를 바꾸는 일은 불가능하지는 않더라도 절대 간단치 않다.

왜냐하면 정치적 태도란 밥상머리에서 시작하는 정치적 사회화를 통해 장기간 빚어진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래집단이 겪는 공유 경험 속에서 단련되며, 당대 매체 지형에 따라 흐르는 당파적 정보에 선별적으로 노출되면서 체계적으로 강화된다. 정치 이념은 심지어 일부 유전적으로 결정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일란성과 이란성 쌍생아의 정치적 태도를 비교한 연구에 따르면 유전자는 진보-보수이념을 갖게 되는 데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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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저 요동치는 여론조사 결과는 무엇이란 말인가. 일단 모든 조사에 수반하는 무작위적 오차변량을 고려해야 한다. 표집오차뿐만 아니라 조사회사가 범하는 오차들도 더해야 한다. 그리고 정치적 태도가 곧 의견을 표명하는 행동으로 이어지는 방식은 한 가지가 아니라는 자명한 사실에 주의하자. 요컨대 마음이 바뀌지는 않을망정, 행동은 미묘하게 달라질 수 있다.

다음 경우에 당신은 어떻게 했나. 낯부끄러운 행동을 서슴지 않는 당 대표를 보거나, 공천에 헛발질하는 당 지도부 소식을 듣거나, 아니면 상식을 거스르는 정당 정책을 접할 때, 당신이라면 어떻게 행동하는가. 받자마자 끊어버린 조사요청 전화는 당신의 그런 주저함, 망연함 그리고 불평불만을 반영한다. 주저했던 당신의 응답은 전략적 의연함이나 이념적 훈육 의도에 나온 것일 수 있다.

환멸이나 전략을 따른 행동이 선거결과를 좌지우지한단 말인가. 굳은 자를 제외하고 나머지 표를 노리는 캠페인이 치열한 선거전에서 어쩐지 모든 선거결과는 51대 49로 수렴한다. 이런 조건에서 전체 유권자의 몇 할도, 몇 푼도 안 되는 환멸이나 전략적 행동은 집합적 수준의 선거결과를 바꿀 수 있다. 대다수 개인의 정치적 태도는 변하지 않고, 심지어 극단적으로 양극화하더라도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그림〉은 유권자의 정치 지식에 따라서 경쟁하는 두 정당의 메시지를 얼마나 수용하고 또 얼마나 행동의 근거로 삼는지 차이가 나는 양상이 미묘하게 다른 경우를 보여 준다. 정치 지식 수준이 높은 집단의 정당별 메시지에 대한 수용과 지지의 격차가 차이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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