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자유의 방패(FS)’ 한·미 연합연습 기간인 5일부터 사흘 간 서해상에서 위성항법장치(GPS) 전파 교란을 시도한 것으로 8일 확인됐다. 북한이 극도로 민감해 하는 한·미 연합연습을 겨냥해 시위를 벌이는 동시에 한·미의 탐지 능력을 시험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FS 연합연습은 지난 4일부터 오는 14일까지 11일간 진행될 예정이다.
합동참모본부와 복수의 군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5일 정오를 전후해 서해 북방한계선(NLL) 북방에서 남측 서해 5도(백령도·대청도·소청도·연평도·소연평도) 상공을 향해 수 차례 GPS 전파교란 신호가 발사된 것이 군의 탐지 자산에 포착됐다. 교란 신호는 6일과 7일에도 수회 탐지됐다. 이에 군은 민간 선박과 항공기 등의 피해를 우려해 국토교통부·해양수산부·해경청 등 유관 기관에도 관련 정보를 공유했다.
군 관계자는 “북한의 GPS 교란 신호로 인해 현재까지 군사 작전이 영향을 받거나 군에 피해가 발생한 것은 없다”면서 “민간 항공기·선박 등의 피해도 접수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군은 북한의 GPS 교란 대비 탐지체계를 운용 중이며, 국토부 등 유관기관과 실시간 정보를 공유하면서 필요한 조치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군 당국은 북한의 전파 교란 시도가 연합연습에 대응한 북한의 도발로 보고, 빈도나 강도가 달라지는지 여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군 관계자는 “GPS 교란은 함정과 항공기, 선박 운용에 심각한 위협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피해가 발생할 경우 북한은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5~7일 발사된 교란 신호는 과거에 비해 저출력이었고, 상공을 향해 발사돼 지상에서는 미약하게 포착됐다고 한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선 한·미 훈련에 대응하면서도 일·북 접촉, 서방 외교 사절의 평양 복귀 추진 등 외교적 현안을 고려해 수위를 조절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이 한·미 군의 탐지 능력을 시험해 보기 위해 일부러 약한 전파를 보냈을 가능성도 있다. 북한 당국은 2010년대 초반부터 GPS 교란 부대의 능력을 꾸준히 증강시켜왔다.
GPS 전파 교란은 군의 무기 체계에 영향 주고 부대 계측기 등에 심각한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통상 군용 GPS는 전파 교란에 덜 취약하지만, 일부 무기 체계는 상용 GPS를 적용하고 있어 저출력 교란 전파에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서해 5도 인근 지역은 인천국제공항·인천항 등이 있어 민간 선박과 항공기가 활발하게 오가는 곳이다. 인천국제공항공사·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인천국제공항에선 매일 1300여대의 여객기가 오고 간다. 인천항에는 5~7일 200여대의 선박이 입·출항했다. 이들 항공기·선박의 안내 지도 역할을 하는 GPS가 먹통이 되면 ‘교통 대란’은 물론 심각한 운항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북한의 GPS 전파 교란이 수면 위로 올라온 건 2016년 이후 약 8년 만이다. 북한은 2010년부터 4차례에 걸쳐 GPS 교란을 벌였다. 앞서 2010년 8월에는 을지프리덤가디언(UFG) 군사연습 직후 GPS 공격을 한 데 이어 2011년 3월, 2012년 4~5월 각각 한·미 연합군사연습 키 리졸브(KR), 한·미 연합 공중전투훈련을 겨냥해 전파 교란을 시도했다.
북한은 20대 총선을 앞둔 2016년 3월 31일~4월 5일에는 수도권 전역에 영향이 미치는 고출력 GPS 교란을 감행했다. 중앙전파관리소에 따르면 2010년 첫 GPS 교란 당시 이동통신 기지국 181국, 항공기 14대, 선박 1척이 영향을 받았지만, 2016년에는 이동통신 기지국 1794국, 항공기 1007대, 선박 751척이 영향을 받았다. 4회 만에 전파 교란 능력을 18배 가까이 끌어올렸단 얘기다.
이 때문에 북한이 이달 5일부터 교란 신호를 사흘 연속 보낸 것은 다분히 한·미 연합연습을 노린 것이란 게 군 당국의 분석이다. 2016년 이후로도 약한 교란 시도가 몇 차례 탐지됐지만 군은 이를 외부에 공개하진 않았다.
북한이 최근 러시아와 군사 교류를 늘리면서 GPS 교란 능력을 증강시킬 기회로 삼았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북한은 1990년대 말 러시아로부터 GPS 전파 교란 장비를 수입한 뒤 이를 개량해 관련 장비를 만들어왔다.
김정은 수도권 포사격 훈련 지도…軍 “장비 전개부터 지켜봐”
한편 노동신문은 이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7일 우리 수도권을 타격 권에 두는 북한군 대연합부대의 포사격 훈련을 지도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김정은이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을 겨냥한 포격 훈련을 지도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관련 기사와 함께 1~2면에 걸쳐 게재했다.
김정은은 이 자리에서 “빠른 타격으로 주도권을 쥘 수 있게 경상적인(변함없는) 전투동원 준비를 갖추기 위한 사업을 더욱 완강히 내밀어야한다”고 주문했으며 '포병전쟁준비 완성'을 위한 '중요 과업'을 제시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이와 관련, 합참은 “어제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서해상 표적을 대상으로 북한군의 사격 훈련이 있었으며, 우리 군은 북한군이 장비를 전개하는 등 훈련 준비 단계부터 관련 활동을 감시하고 추적했다”고 밝혔다. 이는 김정은이 참여한 북한군의 훈련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있었다는 점을 공개해 북한을 압박한 것으로 풀이된다.
합참 관계자는 또 “우리 군은 확고한 연합 방위 태세를 유지하는 가운데 현재 진행 중인 FS 연습과 연합 훈련을 시행하며 북한의 도발 징후와 군사 활동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면서 “만약 북한이 도발을 자행한다면 ’즉·강·끝’ 원칙에 따라 압도적이고 단호하게 응징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