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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마 왜 떴는지 알아? 그들이 후원한 '16세 무명선수' 정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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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76년 역사 ‘푸마’ 적자 탈출기

브랜드로 본 세계

글로벌 브랜드의 현황과 철학, 투자 방향과 생존 전략을 전합니다. 돈만 주면 사는 하나의 상품, 나를 돋보이게 하는 플렉스라고만 하기엔 그 ‘브랜드’에 담긴 이야기들이 아깝습니다. 국제부 기자들이 한땀한땀 정성껏 씁니다. 이번엔 죽었다 살아난 브랜드 ‘푸마’의 환생 스토리입니다. 한국서도 ‘세대 통합’ 복고 열풍입니다.

푸마

푸마

축구 강국 아르헨티나에선 나이키보다 이 브랜드가 더 인기입니다. 2020년 세상을 떠난 축구의 전설, 디에고 마라도나가 이 브랜드 축구화를 신고 그라운드를 누볐기 때문이죠. 글로벌 매출 중 아르헨티나의 비중이 워낙 커서, 지난해 12월 ‘남미의 트럼프’ 하비에르 밀레이 신임 대통령이 환율의 54%를 평가절하할 때 글로벌 실적과 주가가 타격을 입었다고 해요.

독일 태생의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푸마 얘기입니다. 아르헨 평가절하 같은 변수들이 있었지만, 지난해 푸마는 목표치를 상회하는 6억2200만 유로(약 8965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습니다. ‘텃밭’이던 남미·북미 외에 유럽·아시아에서도 기대 이상 선전을 했기 때문이죠.

요헨 차이츠

요헨 차이츠

1948년 창립한 푸마는 아디다스와 ‘한뿌리’입니다. 형 루돌프 다슬러(1898~1974)가 푸마, 동생 아돌프 다슬러(1900~1978)가 아디다스의 창업자이거든요. 세일즈맨 경력이 있는 형, 손재주가 뛰어난 동생은 1924년 뉘른베르크 인근 자택에서 신발공장을 공동 창업합니다.

이들의 신발이 빛을 본 건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때였어요. 미국의 흑인 육상선수 제시가 이들의 신발을 싣고 100m, 200m, 멀리뛰기, 400m 릴레이 등 4개 종목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당연히 다슬러 형제의 신발도 주목을 받게 됐죠. 나치의 스포츠 장려 정책도 형제가 승승장구하는 데 한몫했고요(형·동생 모두 나치당원이었습니다).

그러나 2차대전 이후 사업이 힘들어졌고, 전쟁 막바지엔 형 루돌프가 군대에 끌려갑니다. 동생 아돌프는 징집되지 않았고요. 루돌프는 이런 우여곡절 뒤에 동생 아돌프가 있다고 여겼고, 반목과 오해가 겹겹이 쌓여 형제는 1947년 갈라섭니다.

푸마를 만든 형 루돌프 다슬러(왼쪽)와 아디다스를 만든 동생 아돌프 다슬러. [사진 푸마]

푸마를 만든 형 루돌프 다슬러(왼쪽)와 아디다스를 만든 동생 아돌프 다슬러. [사진 푸마]

형제 기업이지만, 푸마가 아디다스의 공세에 맥을 못 추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미국 대표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에도 밀렸고요. 1980년대 이후 시장에서 푸마의 브랜드 가치는 그야말로 사망 직전에 이릅니다. 8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1억 달러(약 1332억원)의 부채를 졌다고 해요. 그 때문에 한때 푸마가 후원하려고 해도 해당 선수가 외면하는 수모를 겪기도 합니다.

이랬던 푸마를 부활시킨 인물이 요헨 차이츠입니다. 그는 1990년 푸마의 마케팅 부서에 들어와 30세의 나이에 최고경영자(CEO)로 전격 발탁됐죠. 지금은 할리데이비슨 이사회 의장 겸 CEO를 맡고 있죠. 차이츠는 구조조정으로 군더더기부터 없앤 뒤, 어정쩡한 브랜드에 정체성을 불어넣었습니다. 나이키의 ‘자유’ 이미지처럼, 푸마는 ‘저항’을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푸마가 후원한 ‘아르헨티나의 축구 전설’ 디에고 마라도나와 그를 기념해 만든 축구화 ‘마라도나 수퍼 FG’다. [사진 핀터레스트]

푸마가 후원한 ‘아르헨티나의 축구 전설’ 디에고 마라도나와 그를 기념해 만든 축구화 ‘마라도나 수퍼 FG’다. [사진 핀터레스트]

아울러 유명 스포츠 브랜드들이 거들떠보지 않은 아프리카와 비주류에 주목했어요. 경쟁 브랜드가 골프선수 타이거 우즈, 브라질 축구선수 호나우두에 투자할 때, 푸마는 당시 16세 무명의 육상선수 우사인 볼트를 후원했어요. 기존의 스타급 선수나 스포츠 강국 대신 이길 확률이 적은 팀이나 선수에게 힘을 불어넣는 ‘언더독 마케팅’에 집중합니다.

푸마 팔레르모

푸마 팔레르모

우여곡절도 있었죠. 푸마가 후원한 카메룬 축구 국가대표팀은 2001년 1월 아프리카컵에 민소매 유니폼을 입고 나타났습니다. 스포츠용품 업계 최초였습니다. 푸마는 이슈 선점을 위해 예고 없는 ‘게릴라 마케팅’을 진행했죠. 민소매 유니폼 덕분인지 이듬해 카메룬은 아프리카컵에서 우승했습니다. 그런데 사전 협의가 없던 푸마의 행보가 괘씸했던지 국제축구연맹(FIFA)은 2002 한·일 월드컵 때 민소매 유니폼의 착용을 금지했죠. 이를 예상하지 못했던 선수들은 급한 대로 유니폼에 검정 셔츠를 받쳐 입고 뛰어야 했습니다.

유망주를 발굴해 함께 시장의 흐름을 바꾼다는 푸마의 ‘언더독 DNA’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푸마 코리아는 2022년부터 높이뛰기 선수 우상혁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올해부터는 비치발리볼 선수도 후원하려고 한답니다. 또 지난해 말부터 걸그룹 아이브(IVE)를 아시아·태평양(APAC) 홍보대사로 내세워 활발하게 마케팅 중입니다. 이 회사 관계자는 “K팝 등 한국의 문화 영향력을 토대로 국내뿐 아니라 APAC 시장 매출을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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