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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M 기술 유출 의혹…K반도체 비상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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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고대역폭 메모리(HBM) 업계의 선두주자인 SK하이닉스가 후발주자인 미국 마이크론으로 이직한 자사 퇴직 직원을 상대로 낸 전직 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였다. 인공지능(AI) 반도체의 주요 부품인 HBM을 놓고 업계의 개발 경쟁이 치열해 핵심 기술 유출 우려가 큰 상황이었다.

서울중앙지법 제50민사부(재판장 김상훈)는 SK하이닉스가 퇴직 직원 A씨를 상대로 낸 전직 금지 가처분 신청을 지난달 29일 인용했다고 7일 밝혔다. 재판부는 재취업한 회사를 즉시 그만두지 않을 경우 A씨는 SK하이닉스 측에 매일 1000만원씩 지급하라고 함께 결정했다. A씨는 마이크론에 재취업해 임원급으로 재직 중이다.

AI 반도체 기술 글로벌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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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에 입사해 메모리연구소 설계팀 주임 연구원, D램설계개발사업부 설계팀 선임연구원, HBM사업 수석, HBM 디자인부서 프로젝트 설계총괄 등을 거친 A씨는 D램 및 HBM 설계 관련 업무를 맡아오다가 2022년 7월 26일 퇴사했다. A씨는 2015년부터 매년 정보보호서약서를, 퇴직 무렵인 2022년 7월에도 전직 금지 약정서와 국가 핵심 기술 등의 비밀유지서약서를 작성했다. 약정서에는 마이크론을 포함한 전직 금지 대상 업체와 기간(2년)이 명시돼 있다. A씨의 재취업 사실을 확인한 SK하이닉스는 지난해 8월 법원에 전직 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법원이 A씨의 전직 금지 약정 기간이 5개월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인 건 최근 HBM 업계의 치열한 개발 경쟁과 무관하지 않다. 약정 기간이 1년 남짓 남아도 가처분 신청이 기각되곤 했는데, 법원이 이번에 받아들인 점, 그리고 1일당 1000만원의 이행강제금까지 부과한 점을 업계에서는 이례적이라고 평가한다. 재판부는 “채무자(A씨)가 취득한 정보가 유출될 경우 마이크론은 동종 분야에서 채권자(SK하이닉스)와 동등한 사업 능력을 갖추는 데 소요되는 시간을 상당 기간 단축할 수 있는 반면, 채권자는 그에 관한 경쟁력을 상당 부분 훼손당할 것으로 보이는 점, 정보가 유출될 경우 원상 회복은 사실상 불가능한 점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결정 배경을 설명했다.

HBM은 D램 여러 개를 수직으로 쌓은 뒤 묶은 것으로, 기존 D램보다 데이터 처리 속도를 혁신적으로 끌어올렸다. SK하이닉스는 AI 반도체 분야 전 세계 시장점유율 90% 이상인 엔비디아와 손잡고 HBM 업계 1위로 올라섰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HBM 시장 점유율은 SK하이닉스 53%, 삼성전자 38%, 마이크론 9% 등이다. SK하이닉스는 이처럼 HBM을 앞세워 지난 30년간 메모리 반도체 1위를 지켜 왔던 삼성전자의 위상을 흔들었다.

HBM은 제조 공정 난이도가 높고 가격이 비싸 수익성이 높다. 엔비디아가 올해 출시할 AI 반도체 H200, B100에는 5세대인 HBM3E가 6, 8개씩 붙는다. 그간 엔비디아에 HBM을 사실상 독점 공급해 온 SK하이닉스가 기술력 측면에서는 가장 앞선다. 삼성전자도 최근 업계 최초로 36GB HBM3E 12단 적층 D램 개발에 성공했다. 현재 8단 수준인 SK하이닉스·마이크론 제품보다 많은 12단부터 곧바로 양산에 들어가는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마이크론도 지난달 26일(현지시간) “HBM3E 양산을 시작해 올 2분기 출하한다”고 발표했다. 4세대 HBM 개발을 포기하고 곧바로 5세대 생산에 뛰어들었다.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2022년 19억 달러(약 2조5000억원)였던 전 세계 HBM 시장 규모는 지난해 40억 달러(약 5조3000억원)로 2배 넘게 커졌다. 2027년엔 330억 달러(약 44조원)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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