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노정태가 소리내다

'파묘'가 좌파영화?…'건국전쟁' 감독의 자승자박 논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

소리내다(Make Some Noise)’ 외 더 많은 상품도 함께 구독해보세요.

도 함께 구독하시겠어요?

이승만 전 대통령을 조명한 영화 ‘건국전쟁’의 김덕영 감독이 ‘파묘’를 좌파 영화로 비판해 논란이 됐다. 그래픽=김영희 기자

이승만 전 대통령을 조명한 영화 ‘건국전쟁’의 김덕영 감독이 ‘파묘’를 좌파 영화로 비판해 논란이 됐다. 그래픽=김영희 기자

장재현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 전작인 ‘사바하’ ‘검은 사제들’ 뿐 아니라 검은 사제들의 원작이라 할 수 있는 단편 ‘12번째 보조사제’까지 극장에서 본 사람으로서 하는 말이다. 그래서 ‘파묘’를 기다렸다. 오컬트 미스터리라는 비인기 장르에 천착해 온 그가 한국의 풍수를 호러와 어떻게 연결 지었을지 궁금했다.

일제 쇠말뚝론은 진보도 비판 #건국전쟁 감독의 공격, 역효과 #'우파=친일' 편견만 키울 수도

기대가 너무 컸던 걸까. 관객의 혼을 쏙 빼놓는 ‘MZ 무당’ 화림(김고은)의 대살굿 장면 후 물 흐르듯 전개되는 전반부까지는 참 좋았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일제가 한반도에 박은 쇠말뚝’이라는 고리타분한 소재에, 일본 괴물을 때려잡는 전개로 흘러가는 건 너무도 실망스러웠다. 영화평론가 이동진이 내놓은 한 줄 평에 십분 동의한다. “허리가 끊겨 양분된 후 힘 못 쓰는 이야기. 편의적 보이스오버로 시각적 상상력을 대체한 맥없는 클라이맥스.”

 스포일링이 되지 않는 선에서 문제적 요소들을 언급해 보자. ‘파묘’의 후반부는 백두대간의 정기를 끊기 위해 일제가 쇠말뚝을 박았다는 괴담에 바탕을 두고 있다. 1990년대 정부 차원에서 쇠말뚝 뽑기를 홍보·지원할 정도로 대중적 관심을 끌었지만, 덕분에 근거 없는 헛소문이라는 게 명백히 밝혀진 사안이다. 발견된 것은 모두 토지측량용 지지대였거나 해방 후 군부대가 텐트를 치기 위해 박은 고정 말뚝 따위였다. 애초에 일본인은 한국식 풍수를 믿지 않으니 시간과 비용을 들여가며 쇠말뚝을 박을 이유가 없다.

 영화 후반부에 담긴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일본의 오컬트 요소를 묘사하는 방식 그 자체다. 무당 화림은 “일본 요괴는 한국 귀신과 달리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인다더라”며 “이건 내가 지금껏 봐온 것과 전혀 다르다”고 연신 강조한다. 관객의 눈앞에 드러나는 ‘일본 괴물’의 정체 역시 황당무계하다. ‘검은 사제들’에서 가톨릭의 구마 의식을, ‘사바하’는 불교 중에서도 밀교를 소재로 삼으면서도, 해당 요소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보여주었던 장재현의 작품이라 믿기 어려울 정도다.

 이러한 난점은 굳이 나누자면 진보 진영 내에서도 어느 정도 지적되고 있다. 김훤주 해딴에 대표는 “영화 ‘파묘’는 겉으로 일제 청산 또는 반일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잇속을 밝히는 ‘국뽕’ 장사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흥행도 좋고 일제 만행 고발도 좋지만 이미 거짓으로 판명된 쇠말뚝 이야기를 동원할 이유는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파묘’는 파죽지세의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3월 4일 현재 누적 관객 600만 명을 넘었고, 이 추세라면 올해 최초의 ‘천만 영화’ 등극도 충분히 가능할 듯하다. 사실 영화의 흥행은 매우 많은 변수가 작용하는 현상이므로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다. 영화평론가 등 소위 ‘시네필’이 대중적 흥행작을 못 알아보는 건 흔한 일이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일은 따로 있다. 앞서 인용한 비판적 견해가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을 만든 김덕영 감독이 불러일으킨 ‘좌파 영화’ 논란 때문이다. 가령 김훤주 대표는 앞 글의 도입부에서 “어떤 감독이 ‘좌파들이나 보는 영화’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래? 그렇다면 나도 봐줘야지’ 하는 마음으로 동네 영화관으로 갔다”라고 밝히고 있다.

 물론 김덕영 감독의 발언이 없었다고 해서 ‘파묘’가 흥행에 실패했으리라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좌파 영화’와 ‘우파 영화’를 갈라 내 편을 확보하려 했던 김 감독이 ‘파묘’의 초반 흥행에 긍정적 기여를 했다고 말해도 억측은 아닐 듯하다. ‘건국전쟁’을 안 봤거나 그 흥행을 불편해하고 있던 이들에게 일종의 ‘정치적 면죄부’를 발급한 셈이니 말이다. 이렇게 ‘파묘’에 담겨 있는 시대착오적 쇠말뚝 음모론, 이미 죽은 줄 알았던 그 ‘겁나 험한 것’이 다시 세상에 나와버렸다.

 한국 영화계의 주류가 보수보다는 진보, 우파보다는 좌파 성향이 강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고 어떤 영화를 ‘좌파 영화’로 지목하는 것이 과연 ‘우파 영화’에 도움이 될까. 김 감독의 발언과 그로 인한 나비 효과를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파묘’를 그냥 내버려 뒀다면 영화의 재미보다는 완성도를 따지고, 반일 국뽕 서사를 싫어하는 평론가와 관객들이 개봉 초기에 좀 더 적극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그렇다고 ‘파묘’가 흥행하지 못했으리라는 법은 없지만, 적어도 한국의 대중문화와 반일 코드라는 주제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의 장을 열 수는 있었다.

 현실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일부 좌파 진영에서 심하게 왜곡했지만 친일과 반일, 보수와 진보의 관계는 1차 방정식이 아니다. ‘건국전쟁’은 이승만 전 대통령의 독립운동을 자세히 다루었고 관객의 호응을 받았다. 이 전 대통령은 때로 미국마저 곤란하게 할 정도로 치열한 반일 감정을 품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김 감독은 ‘반일 영화’를 ‘좌파 영화’와 등치해버렸다. 그 결과 본인이 ‘건국전쟁’을 통해 깨뜨리고자 했던 ‘우파’와 ‘친일’을 동일시하는 대중적 편견이 더 힘을 얻게 되었다.

 모든 예술은 정치적이다. 하지만 예술에 곧장 정치의 딱지를 붙이는 것은 예술의 발전뿐 아니라 정치적 효과를 거두는 측면에서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과도한 반일 선동 비판은 지식인의 몫으로 남겨두고, 보수 영화인들은 ‘국제시장’처럼 보수적 감성을 담고 있으면서도 대중의 사랑을 받는 영화를 만드는 일에 힘써야 하지 않을까.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