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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잡아야 할 동아줄'…지방·미니의대 5배 증원 써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5일 오전 서울의 한 의과대학에서 교수진이 이동하고 있다.   교육부는 이날 내년도 의과대학 정원 신청에 전국 40개 의대가 3401명 증원 신청했다고 밝혔다. 뉴스1

5일 오전 서울의 한 의과대학에서 교수진이 이동하고 있다. 교육부는 이날 내년도 의과대학 정원 신청에 전국 40개 의대가 3401명 증원 신청했다고 밝혔다. 뉴스1

전국 40개 대학이 의대 정원을 3401명 늘려 달라고 신청했다. 정부가 목표로 한 증원 규모인 2000명을 훨씬 뛰어넘는 수치다. 의대를 보유한 모든 대학이 많게는 정원의 5배까지 증원을 요청했다.

5일 교육부에 따르면, 2025학년도 의과대학 정원 신청을 받은 결과 서울 소재 8개 대학은 365명, 경기·인천 소재 5개 대학은 565명을 증원 신청했으며, 비수도권 27개 대학은 2471명을 증원 신청했다. 지난해 11월 보건복지부 수요 조사 때 접수된 의대 증원 최대 규모(2847명)보다 554명이나 더 많다.

지역 국립대, 최대 5배 ‘공격적 증원 신청’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증원 신청 규모가 3000명을 돌파한 건 의대를 보유한 지역의 국립대들이 지난해 수요 조사 때보다 공격적으로 증원을 신청했기 때문이다. 충북대는 현재 49명인 의대 정원보다 5배 많은 250명을 신청했는데, 지난해 11월 제출한 인원(150명)보다 100명을 더 늘렸다. 경상국립대(정원 76명)도 수요 조사 때보다 50명 늘어난 200명을 최종 신청했다. 강원대(49명→140명), 울산대(40명→150명), 경북대(110명→250명) 등도 정원보다 2~3배 늘려 신청서를 냈다.

권순기 경상국립대 총장은 “경남의 의사 배출 수와 의료 종사자 비율이 전국 평균보다 낮은 상황”며 “정부에서 의료 인원을 늘려준다는데, 지역을 책임지는 거점국립대학이 손 놓고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의대 증원만큼 지역 대학 반등시킬 방법 없었다” 

증원 신청의 72.7%(3401명 중 2471명)는 비수도권 의대에 집중됐다. 학령인구 감소와 수도권 쏠림으로 생존 위기에 몰린 지역대학 입장에서 의대 증원이 ‘무조건 잡아야 할 동아줄’이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지역의 한 대학 총장은 “의료계 집단행동이 치열했지만, 지난 십수년간 지역대학의 좌절감은 더 컸다”며 “의대 증원만큼 빠르고 확실하게 지역대학을 반등시킬 방법이 없는데, 이 기회를 어떤 총장과 본부가 날려버릴 수 있겠나”라고 했다.

경기·인천 ‘미니 의대’ 학교당 평균 110명 이상 증원 신청

5일 서울의 한 대형 병원에 의료진이 걸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5일 서울의 한 대형 병원에 의료진이 걸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정원이 50명 이하인 이른바 ‘미니 의대’들의 증원 신청도 예상치를 크게 상회했다. 교육부가 ‘소규모 의과대학의 교육역량 강화’를 정원 배정 원칙으로 내걸었던 만큼 이번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심리가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특히 경기·인천 소재의 가천대·성균관대·아주대·인하대·차의과대 등 ‘미니 의대’ 5개교가 현 정원 총합(209명)보다 2.7배 많은 565명을 증원 신청했다. 산술적으로 한 학교당 평균 110명 이상 증원을 요구한 셈이다. 인하대(49명)가 120명, 가천대·아주대(40명) 등도 150~200명까지 증원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인 지역에 있는 한 대학의 기획처장은 “이 지역 의대들은 역량도 있고 지역적 기반도 있는데 수도권이라는 이유로 서울과 묶여 온갖 발전에서 제외만 돼 왔다”며 “완공 예정인 대학병원 개수, 병상 수, 의료 수준 등을 고려했을 때 지금보다 2~3배 증원해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했다. 일부 대학에선 “더 써낼 걸 아쉽다”는 반응도 나왔다.

신청 인원 비공개한 대학들 “의사 눈치”

서울 소재 8개 대학을 비롯한 많은 사립대학은 정확한 증원 신청 규모를 공개하길 꺼렸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개별 학교의 증원 신청을 공개하지 못하는 이유는 의료계 강경파 중심으로 (증원 신청에 따라 너무 많다, 적다 등) 비판과 괴롭힘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보호해드리고자 하는 것”이라고 했다.

수도권의 한 대학 처장도 “증원 신청 규모를 정확히 밝히면 ‘너무 많이 썼다’며 의사들이 본부로 찾아와 항의하거나 집단행동을 할 수 있는데, 정면충돌하는 상황은 막으려는 것”이라고 했다.

증원 신청 규모에 비해 실제로 교육부가 인정한 인원이 적을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 비공개하는 대학들도 있다. 지역의 한 대학 관계자는 “많이 신청했다가 적게 배정받은 게 드러나면 경쟁력에 큰 흠이 가지 않겠나”라며 “재단 입장에서는 입단속을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2000명 내에서 신속하게 정원 배정”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정부는 각 대학의 제출 수요와 교육 역량을 집중적으로 고려해 빠르면 이달 말까지 정원을 할당할 방침이다. 대학들은 아무리 늦어도 수시 모집 시작 전인 5월 말까지 홈페이지에 입시 요강을 게시해야 한다.

의대 증원 규모는 정부가 정한 2000명을 초과하지는 않을 전망이다. 박 차관 “2000명이라는 총 증원 범위 내에서 각 학교가 제출한 증원 규모와 지역 필수 의료에 도움 되는 방향, 의료의 질을 확보하는 방향에 맞게 학교별로 배분할 것”이라며 “정원 배정 절차를 신속하게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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