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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해 케이블 악몽 현실로…"아시아·유럽·중동 인터넷 25% 지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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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예멘 사나에서 후티 반군 지지자들이 영국과 이스라엘 국기를 밟으며 서방의 예멘 공격,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에 대한 규탄 시위를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2월 예멘 사나에서 후티 반군 지지자들이 영국과 이스라엘 국기를 밟으며 서방의 예멘 공격,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에 대한 규탄 시위를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예멘 후티 반군의 공격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홍해 일대 해저 케이블이 최근 훼손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해 글로벌 인터넷망 혼란이 현실화되고 있다. 당장 아시아와 유럽, 중동을 연결하는 인터넷을 포함한 통신망의 4분의 1 가량이 홍해 지역을 우회해 경로를 변경해야 하는 상황이다.

4일(현지시간) 홍콩의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 허치슨글로벌커뮤니케이션스(HGC)는 이날 중동 지역 4개 주요 통신사의 해저 케이블이 크게 손상돼 홍해를 지나는 아시아·중동·유럽의 통신망 중 25% 가량이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번에 훼손된 케이블엔 유럽과 인도를 잇는 ‘아시아-아프리카-유럽 1’ 회선이 포함됐다. HGC는 "남아프리카공화국 통신업체 시콤(Seacom)과 TGN-걸프가 운영하는 케이블도 피해를 입었다"고 전했다.

지난해 2월 남아프리카공화국 아만짐토티의 한 해변에서 해저케이블 설치 작업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2월 남아프리카공화국 아만짐토티의 한 해변에서 해저케이블 설치 작업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번 사태로 인도, 파키스탄과 동아프리카 일부 지역의 연결이 불안정해졌다. 다만 인터넷이 완전히 끊기진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시콤 측은 CNN에 “초기 점검 결과 영향을 받은 부분이 홍해 남부의 예멘 내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일부 서비스가 중단됐으나 가능한 트래픽을 우회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복구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시콤은 “현지 당국에 (케이블) 복구 작업에 대한 허가를 받는 데 시간이 걸린다”며 “최소 한 달은 지나야 수리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예멘은 이란의 군사적 지원을 받는 후티가 수도 사나를 비롯한 서부를,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예멘 정부가 동부를 각각 장악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지역에 해저 케이블을 설치하려는 사업자들은 양쪽 당국의 허가를 모두 받아야 한다.

케이블이 훼손된 원인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HGC는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통신망 트래픽 경로를 변경하고 피해를 입은 기업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고 밝히면서도 케이블의 훼손 경위와 주체 등에 관해선 밝히지 않았다.

이스라엘 언론 등에선 "후티가 해저 케이블을 의도적으로 훼손했다"고 보도했다. 앞서 예멘 정부도 "지난달 초 후티가 케이블을 파괴하겠다는 위협을 했다"고 경고했었다.

그러나 후티는 자신들의 소행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그러면서 미국과 영국을 배후로 지목했다. 후티 측은 이날 “영국과 미국 해군의 예멘에 대한 적대 행위로 인해 홍해의 해저 케이블이 절단됐으며 국제 통신망 안전과 정보 흐름이 위태로워졌다”고 주장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지난달 18일 후티 반군에 공격당한 뒤 침몰한 화물선 루비마르호를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시컴 역시 "루비마르호에서 내린 닻으로 인한 손상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이동통신 시장조사기관 텔레지오그래피에 따르면 홍해는 전 세계 인터넷 트래픽의 약 17%(2022년 기준)가 지나는 글로벌 통신 요충지다. 현재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광케이블망 21개가 이곳에 설치돼 있을 정도다. 케이블 최대 길이를 줄이려면 홍해를 통과하는 게 가장 빠른 길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곳 케이블의 상당수는 구글·마이크로소프트(MS)·아마존 등 빅테크 기업들이 직접 투자해 설치하거나 통신 업체로부터 임차해 쓰고 있다.

CNN은 “해저 케이블은 인터넷을 연결하는 핵심 도구로 빅테크 기업들이 최근 몇 년 사이 망을 유지하기 위한 자금 지원을 해왔다”며 “케이블이 손상되면 2006년 대만 지진 때처럼 광범위한 인터넷 접속 중단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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