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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기시대로 돌려줘?"…빅테크 떨게한 후티 반군 '막장 도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바다 밑에 깔려 있는 해저 케이블 모습. 텔레지오그래피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세계 심해 약 140만 킬로미터에 달하는 곳에 529개 해저 케이블이 깔려 있거나 설치 중이다. 셔터스톡

바다 밑에 깔려 있는 해저 케이블 모습. 텔레지오그래피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세계 심해 약 140만 킬로미터에 달하는 곳에 529개 해저 케이블이 깔려 있거나 설치 중이다. 셔터스톡

홍해에서 예멘 후티 반군의 화물선 항행 방해 및 무인기(드론) 공격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다음 수순으로 해저 광케이블 공격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후티 반군이 장악한 바브엘만데브 해협엔 아시아까지 연결된 해저 케이블은 물론 구글 등 빅테크 기업의 해저 케이블이 집중 매설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빅테크 기업들은 통신 업체에 지출하던 비용을 줄이고 서비스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최근 몇 년 새 해저 케이블 설치에 공격적으로 투자해왔다. 이 때문에 후티 반군이 통신 마비 등을 노리고 공격에 나설 경우 인터넷 검색이 불가능해지는 등 대혼란이 벌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최근 후티 반군 내에서 "해저 케이블을 절단하겠다"는 발언도 흘러나왔다. 지난달 말 한 후티 반군 지도자가 바브엘만데브 해협의 해저 케이블 절단을 시사하면서 "서구를 석기 시대로 되돌릴 수 있다"고 말했다는 내용의 게시물이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급속히 퍼졌다.

예멘 외무부가 지난달 31일 성명을 통해 "(후티 반군이) 해협을 통과하는 해저 케이블에 공격을 가할 것이라는 항간의 얘기는 잘못됐다"고 반박하는 등 진화에 나섰지만, 이미 서방 빅테크 기업엔 비상이 걸렸다.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이란으로부터 군사적 지원을 받는 시아파 무장 정파인 후티 반군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후 중동에서 긴장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자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부턴 홍해를 지나는 화물선 등을 상대로 무차별 공격에 나서면서 국제물류가 큰 차질을 빚었다. 해저 케이블에 핵심 사업을 의지하고 있는 빅테크 기업들 입장에선 후티 반군의 메시지를 흘려들을 수 없는 상황인 셈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해저 케이블 손상 사건은 주로 끌낚시(trolling) 조업이나 선박 충돌 등으로 발생하지만, 적대 세력에 의한 사보타주(인프라 파괴 등의 비밀공작)도 원인의 3분의 1 정도를 차지한다. 저강도 도발이라 해도 인터넷 기반의 모든 서비스를 일시에 중단시킬 수 있는 만큼 치명적이란 평가다. 이코노미스트는 "(인공지능(AI) 붐 등으로 인한 데이터 트래픽 증가로) 해저 케이블은 이제 군사력에 비견될 만한 핵심 전략 자산이 됐다"고 짚었다.

앞서 지난해 10월 초 발트 해에 깔린 해저 케이블 2개와 가스관 1개가 정체불명의 세력의 공격으로 손상된 전례도 있다. 이후 지난달 초 에스토니아, 핀란드 등 발트해 인근 국가와 영국 등 유럽 10개국이 해저 케이블 파괴에 대비한 연합훈련을 갖는 등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지난해 10월 10일 발트해 해저 통신 케이블과 가스관이 훼손된 후 에스토니아 해군이 해저 통신 케이블을 점검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10월 10일 발트해 해저 통신 케이블과 가스관이 훼손된 후 에스토니아 해군이 해저 통신 케이블을 점검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데이터 업체인 텔레지오그래피에 따르면 전 세계 해저 케이블은 529개(12~16개 광섬유 케이블 포함, 지난해 기준)가 깔렸거나 설치 중이다. 케이블 길이만 140만㎞가 넘는다. 평균 수심 3600m의 해저를 가로지르는 이 케이블들이 인터넷 등 세계 디지털 통신량의 99.4%를 책임지고 있다.

바브엘만데브 해협은 16개 주요 해저 케이블이 지나는 요지다. 케이블 최대 길이를 줄이려면 이 해협과 홍해를 통과하는 게 가장 빠른 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곳 케이블의 70%는 구글·MS·아마존 등 빅테크 기업들이 직접 투자해 설치하거나 통신 업체로부터 임차해 쓰는 상황이다.

이미 구글의 경우 신규로 설치할 케이블은 홍해를 우회하는 노선을 택하는 등 리스크 관리에 들어갔다. 연내 완공될 '블루 해저 케이블'이 대표적이다. 홍해를 거쳐 지중해로 나가는 통상적인 노선이 아닌, 이스라엘에서 지중해를 거쳐 이탈리아·프랑스·그리스 등과 연결하는 해저 케이블이다. 알란 마울딘 텔레지오그래피 연구원은 "도발 가능성 등 지정학적 위기를 고려해 앞으로 (유럽과 중동을 잇는) 더 많은 케이블이 이스라엘을 거점으로 설치될 것"이라고 말했다.

해저 케이블은 대부분 공해(公海)에 있어 특정 국가가 고의로 파손하더라도 법적 책임을 묻는 게 어려운데, 동맹국을 통과하는 방식으로 설치한다면 상대적으로 위험 부담이 줄 수 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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