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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현 "위험천만한 도박하는 北, 쿠바의 선택 성찰해야" [중앙일보-CSIS 포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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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은 4일 중앙일보-CSIS 포럼 개회사에서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유리해진 국제 정세를 과신해 중·러에 밀착하고 주변국을 위협하는 행위를 “위험천만한 도박”이라고 우려했다. “핵을 가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미국이 두 개의 전쟁과 대선을 감당하느라 여력이 없는 허점을 노릴 것”이라는 진단과 함께다.

'중앙일보-CSIS 포럼 2024'가 4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 다이너스티홀에서 열렸다. 이날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중앙일보-CSIS 포럼 2024'가 4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 다이너스티홀에서 열렸다. 이날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이어 “북한이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는 중국이 원조를 줄이거나 중단하면 북한에게는 재앙이 될 것”이라며 “러시아의 대북 원조도 우크라이나 상황이 진정되면 중단될 수 있다”고 북한에 경고했다. 홍 회장은 또 “북한이 아무리 핵과 미사일로 무장해도 인민은 잘 먹고 잘 살 수 없다. 세습 독재 정권의 미래도 보장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최근 북한의 형제국 쿠바가 한국과 수교한 것을 거론하며 “북한은 쿠바가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를 성찰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 회장은 “대만해협의 긴장도 고조되고 있다”며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이 한반도에 초래할 위기 상황도 짚었다. “대만해협의 위기는 북한의 오판을 부를 수 있다”면서다. 이어 “대만을 둘러싼 미·중 충돌은 ‘일어날 것인지 아닌지’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의 문제이고 최초의 AI 전쟁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세계 도처에서 전쟁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우리는 칸트가 ‘전쟁은 악인을 제거하기 보다는 오히려 악인을 많이 만든다는 점에서 나쁘다’고 했던 말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하 개회사 전문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 개회사 전문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중앙일보-CSIS 포럼 2024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먼 길을 와 주신 존 햄리 CSIS 소장과 매트 포틴저 전 미 백악관 NSC 부보좌관, 빅터 차 CSIS 수석 부소장, 미라 랩-후퍼 미 NSC 동아시아-오세아니아 담당 선임보좌관, 앨리슨 후커 전 미 백악관 NSC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 등 미국 측 참석자들에게 따뜻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한국측의 한덕수 국무총리, 신원식 국방부 장관, 김성한 전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 윤영관·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 등 모든 참석자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지금 한반도 주변에서는 한국·미국·일본과 북한·중국·러시아 간의 대립이 날로 심화되는 장면이 포착되고 있습니다. 미·중, 미·러 대립의 격화 속에서 한반도 주변 정세는 그야말로 시계(視界) 제로입니다. 유럽과 중동의 전장에서는 포연(砲煙)이 하늘을 뒤덮고 있습니다. 리처드 하스 미국외교협회 명예회장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위험한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국제정치의 무정부적 성격을 감안하더라도 세계는 지금 복합위기(Polycrisis)의 수렁에 빠져있습니다.

올해는 선거의 해입니다. 미국 대선을 비롯해 러시아·우크라이나·인도·인도네시아·유럽의회 등 70여개국에서 20억 명 이상의 유권자가 참여하는 최대의 선거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국내 정치는 국경선에서 멈춰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정반대로 국제정치와 외교의 출발점이 되고 있습니다. 거대한 선거판이 전지구적 지정학의 지각을 뒤흔들 수 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미국이 북한 핵을 용인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한반도는 지구상 최악의 지정학적 화약고입니다. 역사적 근거도 있습니다. 미국과 소련은 체제와 이념이 달랐지만 2차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연합전선을 구축해 파시즘의 독일·이탈리아·일본과 싸웠습니다. 두 나라는 6500만 명 이상이 희생된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쟁을 1945년에 끝낸 주역이었습니다.

그러나 불과 5년 뒤인 1950년 소련은 중국·북한과 함께 미국과 싸웠습니다. 이 기막힌 사건이 한국전쟁입니다. 와다 하루키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는 “동북아 모든 나라를 끌어들인 ‘동북아시아 전쟁’”이라고 했습니다. 윌리엄 스툭 미국 조지아대 석좌교수는 “한국 전쟁은 제3차 세계대전의 대체물”이라고 했습니다. 한국전쟁은 전후 국제관계를 지배한 냉전의 이정표로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북·중·러가 또 다시 손잡는 불길한 장면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서방의 지원을 받는 우크라이나와 사투 중인 러시아는 북한으로부터 포탄을 지원받고 반대급부로 식량 등을 북한에 제공하고 있습니다. 푸틴 대통령의 방북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습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에 따른 대북 추가 제재는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부결됐습니다.

대만해협의 긴장도 고조되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대만을 둘러싼 미·중 충돌은 ‘일어날 것인지 아닌지’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의 문제이고 최초의 AI 전쟁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고(故) 키신저 전 미국 국무부 장관은 “현재의 미·중 관계는 1차 세계대전 이전 상황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고 한 바 있습니다. 대만해협의 위기는 북한의 오판을 부를 수 있습니다.

핵으로 무장한 북한은 도발의 수위를 높이고 있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남한을 초토화하겠다고 했고, 서해 NLL에 포격을 했습니다. 선대의 유훈인 통일을 버렸습니다. 북한의 전쟁 위협은 주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내부용이기도 합니다. 체제 유지를 위해 핵개발에 올인했는데 거꾸로 경제가 망가지고 민심이 이반하는 역설적 상황에 직면했기 때문입니다.

김 위원장이 올해 초 최고인민회의에서 경제 문제 해결을 위해 향후 10년간 매년 20개의 공장을 건설하겠다고 한 것도 불안한 현실을 반영한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전쟁 위협은 한반도의 불안정성을 증폭시킬 수 있는 위험한 언사입니다.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은 평화와 통일을 포기하고 영구적 대결의 길로 들어서는 최악의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핵을 가진 김 위원장은 미국이 두 개의 전쟁과 대선을 감당하느라 여력이 없는 허점을 노릴 것입니다. 하지만 유리해진 국제 정세를 과신해 중·러에 밀착하고 남을 위협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도박입니다. 북한이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는 중국이 원조를 줄이거나 중단하면 북한에게는 재앙이 될 것입니다. 러시아의 대북 원조도 우크라이나 상황이 진정되면 중단될 수 있습니다.

김 위원장이 냉전으로 회귀하고 있지만 북한의 형제국인 쿠바는 완전히 다른 경로를 선택했습니다. 북한이 ‘교전중인 제1의 적대국’으로 규정한 한국과 수교한 것입니다. 북한이 아무리 핵과 미사일로 무장해도 인민은 잘 먹고 잘 살 수 없습니다. 세습 독재 정권의 미래도 보장되지 않습니다. 북한은 쿠바가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를 성찰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도 강대강 만으로는 안보와 평화를 지킬 수 없습니다. 국방부 장관이 북의 도발에 대해 “즉시, 강력히, 끝까지 응징하라”고 한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지금 국민들은 전쟁이 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합니다. 외교부와 통일부가 각각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모두가 강대강 일색이어서는 곤란합니다. 국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은 꼭 필요할 때가 아니면 신중하고 안정적인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국내 일각의 핵무장론은 시기상조입니다. 우리는 비핵평화라는 국가적 목표를 포기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외교부는 비핵평화를 위한 외교적 유연성을 발휘해야 합니다. 북한이 남북을 아예 적대적인 두 나라라고 선언했는데 이는 하나의 민족으로서 통일을 지향해온 기존의 원칙과 충돌합니다. 통일부와 외교부를 비롯한 정부의 지혜로운 역할과 대응이 긴요합니다.

1991년 채택된 남북기본합의서는 남과 북 쌍방의 관계를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로 규정했습니다. 체제와 이념이 다른 적대 세력이지만 같은 민족으로서 분단을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든 손을 잡으려는 간절한 고뇌의 흔적이 역력합니다.

북이 복잡한 내부 사정 때문에 퇴행적으로 나올수록 우리는 더 지혜롭고 원숙하게 대응해야 합니다. 영구 분단은 우리 스스로가 약해지고 정체성과 꿈을 모두 잃어버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한목소리로 평화통일과 비핵평화를 주창해야 합니다. 동시에 한·미·일 공조와 확장억제의 실천적 전략을 고도화하는 것이 우리의 당면 과제입니다.

독일의 계몽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1795년 저서 『영구평화론』에서 국제연맹을 제안한 선구자입니다. 국제연맹은 1919년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에 의해 탄생했고, 1945년 국제연합(UN)이 바톤을 이어받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유엔은 무력합니다. 다른 나라도 아닌 안보리 상임이사국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습니다.

이제 세계 도처에서 전쟁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우리는 칸트가 “전쟁은 악인을 제거하기 보다는 오히려 악인을 많이 만드는 점에서 나쁘다”고 했던 말을 기억해야 합니다. 올해는 한국 안보와 번영의 초석을 놓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발효된 지 70년이 되는 해입니다. 혈맹인 한·미는 일본과 함께 북·중·러의 도발 가능성에 철저히 대비해야 합니다. 동시에 평화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실질적인 해법을 치열하게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한반도에서 비핵평화를 달성하는 것은 고난도의 복합방정식을 푸는 힘겨운 과정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 숨쉬는 바로 이곳 한반도에서 평화가 정착된다면 18세기 말 칸트가 꿈꿨던 전세계의 영구평화가 실현될 것으로 믿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복합위기의 시대를 헤쳐나갈 탁월한 지혜를 도출해 줄 것을 기대합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중앙일보-CSIS 포럼

2011년부터 중앙일보와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공동 주최하는 국제 포럼. 한국과 미국의 전·현직 대외 정책 입안자들을 비롯한 양국의 대표적인 외교·안보 전문가들이 동북아 정세와 미래 아시아 평화의 해법을 제시하는 자리다. 1962년 설립된 CSIS는 미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국제적인 싱크탱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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