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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 5시간 이상 볶고 30가지 향신료 조합...카레 오마카세 [쿠킹]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한 끼 식사를 위해서 몇 달을 기다려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한 식당을 예약하기 위해 800통이 넘는 전화를 걸고, 10개월이 넘는 오랜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기도 하는, 누구보다 먹고 마시는 것에 진심인 푸드 콘텐트 에디터 김성현의 〈Find 다이닝〉을 시작합니다. 혀끝까지 행복하게 만드는 다이닝을 찾는(Find), 그가 추천하는 괜찮은(Fine) 식당을 소개할게요. 읽기만 해도 배가 부를 정도로 생생하고 맛있게 쓰여진 맛집을 만나보세요.

김성현의 Find 다이닝 ⑲ 키마라야

“카레는 3분이면 충분? 7시간 정성으로 빚어낸 깊고 진한 카레의 근본”

'키마라야' 가게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 향신료들. 장식용이 아닌 직접 사용하는 것들이다. 사진 김성현

'키마라야' 가게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 향신료들. 장식용이 아닌 직접 사용하는 것들이다. 사진 김성현

“많은 사람이 요리에서 향신료를 그저 조연이나 엑스트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엑스트라들이 모여서 어마어마한 맛의 무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향신료에 꿈과 노력을 불어넣어서 한국에서 그간 보기 어려웠던 정말 건강한 카레를 내놓고 싶습니다.”

일본 현지에서의 요리 경력만 20년. 야키니쿠(구운 고기)를 시작으로 일본의 다양한 식문화를 경험했지만 윤원재(51) 셰프의 마음을 빼앗은 음식은 단연코 ‘카레’였다. 언제 어디서 먹어도 예측 가능한 맛. 천편일률적인 한국의 카레와 달리, 수십 종류의 향신료로 독특한 풍미를 낸 ‘스파이스 카레’는 그에게 맛의 신세계나 다름없었다.

틈만 나면 수십 종의 향신료를 혼합해 자신만의 카레를 만든 지 십수 년. 단순히 카레 마니아에 머물고 싶지 않았던 윤 셰프는 2022년 일본 요코하마 카레 뮤지엄(현재는 문을 닫았다)의 원장 이노우에 타카히사(井上たかひさ)가 운영하는 ‘카레대학’의 수료증 취득 시험에 도전장을 냈다.

카레의 정의는 물론 카레의 인문학과 카레의 사회학, 조리학과 상품학까지. 카레와 관련된 모든 분야를 총망라한 문제만 50문항으로, 주어진 제한 시간은 단 10분. 12초 만에 한 문제를 풀며 80점을 넘겨야 통과해야 하는 높은 난도에, 그는 첫 시험에서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절치부심하여 두 번째 도전 만에 96점으로 합격했다. 그리고 마침내 일본에서 인정하는 ‘카레 전도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누구보다 카레를 사랑하는 자타공인 카레 전문가 반열에 오른 그는 그해 7월 서울시 서초구 방배동에 터를 잡고 자신의 혼을 담은 카레 전문점 ‘스파이스 키마카레 키마라야’의 문을 열었다. 이곳의 상징적인 메뉴는 ‘키마카레’. 키마카레란 소·닭고기 등 주재료를 다진 뒤 수십 종류의 강렬한 향신료를 넣어 물기가 많지 않게 만든 카레의 한 종류다. 이 키마카레는 재료 본연의 맛과 어울리는 독특한 풍미로 색다른 경험을 선사하는데, 윤 셰프는 향신료 1g의 차이에서 오는 미세한 변화와 적절한 비율을 알아내기 위해 매일 같이 ‘카레 일기’를 쓰며 보다 완벽한 카레를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인다.

“양파 하나도 기본적으로 5시간 정도를 볶아야 하는데 이 또한 재료의 상태에 따라서 조금씩 변합니다. 재료에 따라 그날 쓰이는 향신료의 양도 미세하게 차이가 나고요. 기성품이 아니라 살아있고 변화하는 재료들이다 보니 수분, 농도, 맛, 향을 잡기 위해서는 매일 새롭게 작업을 해야 해요. 재료와 향신료의 균형을 잘 맞출 수 있어야 맛있는 카레를 선보일 수 있죠.”

먹거리에도 쉽고 빠른 간편식이 넘쳐나는 요즘, 0부터 100까지 손수 자신의 손을 거쳐 ‘세상에 없던’ 카레를 만들어내는 윤 셰프의 꿈은 보다 많은 사람이 독특한 향신료로 만든 새로운 카레의 세계를 맛보게 하는 것이다. 그는 “처음에는 향이 다소 낯설 수 있지만, 밀가루가 들어가지 않고 향신료만으로 만든 스파이스 카레야말로 잘 끓인 약재와 다름없다”라고 강조하며 더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카레 맛에 눈을 뜨길 바란다는 희망을 함께 전했다.

EAT

녹두, 치킨, 고등어가 한 접시에 모두 모인 '육해공' 카레. 사진 김성현

녹두, 치킨, 고등어가 한 접시에 모두 모인 '육해공' 카레. 사진 김성현

마늘, 후추, 생강, 파프리카, 사프란, 시나몬, 고수 분말, 월계수, 쯔란 등 익숙하고 대중적인 향신료부터 터메릭, 니겔라, 페누그릭, 타마린 등 낯설고 생경한 것까지. 30종류의 향신료가 적절한 조화를 이뤄 짙은 색채를 뿜어내지만, 결코 자극적이지 않은 것이 ‘스파이스 키마카레 키마라야’의 특징이다.

잠시 향신료의 마냥 강한 풍미가 재료의 맛을 덮진 않을지 염려도 했다. 하지만 기우였다. 이곳만의 노하우로 섬세하게 배합된 향신료들은 개성을 주장하기보다 재료와의 조화로움을 한층 더 강조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간 음식에서 엑스트라에 그쳤던 향신료들이 전면에 나서 새로운 풍미를 주도하는 것이다.

“고수 분말인 코리앤더는 은은한 오렌지 향이 나면서도 모든 향신료가 가진 풍미를 더욱 조화롭게 만들어줍니다. 씹으면 특유의 매운맛과 쓴맛이 나지만 향에서는 독특하게 초콜릿을 느낄 수 있는 글로브도 빠질 수 없죠. 같은 향신료라도 씨, 열매, 줄기, 껍질 어떤 부분을 쓰는지에 따라서 맛과 색이 달라집니다.”

이처럼 수많은 향신료로 만들어진 독특한 카레들이 대거 포진해 있는 만큼, 한 번에 다채로운 카레를 오마카세 형식으로 한 번에 경험할 수 있는 ‘카레카세’는 이곳을 대표하는 메뉴다. 그뿐만 아니다. 매콤하고 산미가 있어 마치 한국식 부대찌개를 연상케 하는 인도식 스프카레인 ‘랏사무’부터 65개의 향신료로 만들었다는 유래의 인도식 양념치킨. 20가지 향신료 베이스 소스에 찍어 먹는 쯔케멘(냉우동) 등 카레를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음식들이 줄줄이 눈과 입을 사로잡는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치킨 버터 카레와 고등어 카레, 녹두 카레를 한 접시에 모두 담은 ‘육해공 카레’다. 치킨버터카레는 이곳의 최고 인기 메뉴답게 대중적이지만 부드럽고 크리미하며 고소한 치킨을 씹는 맛이 일품이다. 반면 양옆에 자리한 카레들은 뚜렷한 개성을 자랑한다.

녹두의 질감이 재미있는 녹두 카레는 매우 담백한 맛이지만 묘한 중독성이 있어 계속해서 손이 간다. 가장 탄탄한 마니아층을 지닌 고등어 카레는 어디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카레를 보여준다. 고등어를 익히고 손수 뼈를 바른 뒤 가장 많은 향신료를 배합해 비린 맛을 모두 잡아냈다. 언뜻 고추 참치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격렬하고 깊은 향신료가 입 안 가득 퍼지며 카레의 신세계로 인도한다.

키마라야의 이달의 신 메뉴인 모차렐라 치즈를 올린 '화이트 카레'. 사진 김성현

키마라야의 이달의 신 메뉴인 모차렐라 치즈를 올린 '화이트 카레'. 사진 김성현

이외에도 윤원재 셰프는 직원으로 함께 일하는 아내 이윤희(50) 씨의 조언을 받아 매달 새로운 카레를 만들어 내놓는다. 일본과 인도 그리고 영국의 어디쯤에서 그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카레를 추구한다는 그가 요즘 새롭게 선보인 메뉴는 ‘화이트 카레’다. 붉은 키마카레를 하얀색 모차렐라 치즈로 덮고 계란 노른자로 부드러움을 한층 더 끌어올린 카레다. 일본 하라주쿠의 한 카레 전문점에서 선보이는 카레를 이곳만의 방식으로 새롭게 구현한 이 메뉴는 카레가 노랗고 자극적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며 부드럽고 고소한 맛으로 많은 이들에게 ‘베스트 메뉴’로 선택받아 또 하나의 대표 메뉴로 떠오르고 있다.

김성현 cook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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