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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소병 아이가 먹고난 뒤" 미쉐린 3스타 셰프 펑펑 울린 후기 [쿠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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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끼 식사를 위해서 몇 달을 기다려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한 식당을 예약하기 위해 800통이 넘는 전화를 걸고, 10개월이 넘는 오랜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기도 하는, 누구보다 먹고 마시는 것에 진심인 푸드 콘텐트 에디터 김성현의 〈Find 다이닝〉을 시작합니다. 혀끝까지 행복하게 만드는 다이닝을 찾는(Find), 그가 추천하는 괜찮은(Fine) 식당을 소개할게요. 읽기만 해도 배가 부를 정도로 생생하고 맛있게 쓰여진 맛집을 만나보세요.

김성현의 Find 다이닝 ⑯ 베카프리미엄델리샵

“간단하게 한 끼 때우는 샌드위치? 풍미와 건강 모두 잡은 든든한 요리”

베카프리미엄델리샵의 대표 메뉴인 파슬리 치킨 샌드위치. 사진 김성현

베카프리미엄델리샵의 대표 메뉴인 파슬리 치킨 샌드위치. 사진 김성현

미국 보스턴의 자랑으로 불리던 레스팔리에(L'espalier)를 시작으로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인 스페인의 엘 불리(El Bulli), 미국 시카고의 알리니아(Alinea)와 덴마크 코펜하겐의 노마(Noma)까지. 황선진(45) 셰프는 요리사에게 꿈의 무대로 불리는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세 곳에서 차례로 경험을 쌓으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왔다.

세 레스토랑을 더하면 미쉐린 별만 무려 9개다. 세계를 대표하는 레스토랑에서 분자 요리와 발효 요리 등 한 끼에 수십만 원 하는 최고급 요리를 했다. 하지만 2020년 11월 황 셰프는 누구보다 화려한 삶을 뒤로하고 대표적인 대중 음식인 샌드위치를 전문으로 하는 ‘베카프리미엄델리샵’의 문을 연다.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에서만 일하던 시절에는 콧대가 하늘을 찔렀어요. 명품을 입고 반짝거리는 보석을 걸치고 요리하는 기분이랄까요? 모든 게 제 능력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오만했죠.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게 아니더라고요. 소박한 음식이라도 가족을 위해 만드는 것처럼 따뜻한 마음을 담아 건강하게 요리하는 것. 지금 저에게 행복을 주는 건 그런 요리예요.”

손님들이 보내준 응원과 감사 메시지를 모아놓고 원동력을 얻는다는 황선진 셰프. 사진 김성현

손님들이 보내준 응원과 감사 메시지를 모아놓고 원동력을 얻는다는 황선진 셰프. 사진 김성현

건강 체질과는 거리가 멀어 화학조미료나 인공첨가물에 누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한다는 그는 ‘나처럼 몸이 약하고 예민한 사람이 먹어도 탈이 나지 않는 속이 편안한 음식을 만들자’라는 다짐을 베카프리미엄델리샵의 운영 모토로 삼고 있다. 실제로 병원 환자들이나 건강이 좋지 않은 이들이 이곳의 샌드위치를 즐겨 찾고 감사 편지를 보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아이가 희소병을 앓고 있는데 먹을 수 있을 만한 메뉴가 있냐는 문의가 왔었어요. 마침 여유가 있을 때라 인터넷으로 관련 정보를 찾아가며 그 아이에게 맞춰서 화학조미료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음식을 만들어서 보냈어요. ‘음식을 먹고 너무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라는 후기를 보내주셨는데 그때 정말 펑펑 울었어요.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아요”

무엇보다 건강한 음식을 목표로 하지만 맛의 밸런스 역시 놓치지 않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특히 샌드위치는 고기부터 야채, 탄수화물까지 다양한 재료가 들어가는 만큼 그는 향, 산도, 식감, 지방감 등 각 재료가 만나 빚어내는 맛의 조합을 가장 중요시한다고 강조했다.

소박해 보일지라도 안전하고 건강한 음식, 누가 먹어도 속이 편안하고 든든한 음식을 만드는 것이 현재 셰프로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지향점이라고 황셰프는 말한다. 두 개의 빵 사이에 사용할 수 있는 재료와 조합에 따라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는 그는 한국의 문화는 물론, 샌드위치를 통해 세계 여행을 간접 체험할 수 있도록 새로운 메뉴도 꾸준히 선보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EAT

베카프리미엄델리샙의 모든 샌드위치는 주문 즉시 그릴링해 따뜻하게 제공된다. 사진 김성현

베카프리미엄델리샙의 모든 샌드위치는 주문 즉시 그릴링해 따뜻하게 제공된다. 사진 김성현

‘베카프리미엄델리샵’은 세 가지의 프리미엄 라인과 두 가지의 기본 라인, 총 다섯 가지의 샌드위치를 선보이고 있다. 이 중 압도적으로 많은 인기와 재주문율을 자랑하는 것은 ‘파슬리 치킨 샌드위치’라고. 호밀빵 사이에 닭가슴살, 볶은 버섯과 체다치즈, 토마토와 루콜라가 들어간 이 메뉴의 진짜 매력은 ‘파슬리 아이올리 소스’다. 지중해를 대표하는 소스인 아이올리에 파슬리를 더해 독특한 풍미를 끌어올린 것이 특징이다.

파슬리 아이올리 역시 황 셰프가 노마에서 근무하던 당시 굴과 파슬리를 갈아 마요네즈처럼 활용하던 조리법에서 영감을 얻어 개발한 소스다. 파슬리의 산지와 조리법에 따라 그 풍미가 확연히 달라지는 만큼 황 셰프는 닭고기에 잘 어울리는 조합을 고민하다 파슬리를 데쳐서 사용했다고. 그는 파슬리가 품은 은은한 바다향과 풀 내음 등이 닭고기의 지방을 한층 더 맛있게 만들어 준다고 설명했다.

식감의 재미를 더하는 버섯 볶음과 소량의 트러플 오일은 코끝을 맴돌며 고급스러운 뉘앙스를 더하고 삼키는 순간까지 먹는 재미를 놓치지 않게 해준다. 여기에 토마토로 상큼함을, 루콜라로 쌉싸름함을 더해 그야말로 샌드위치는 빈틈없이 꽉 찬 맛의 균형감을 보여준다. 무엇 하나 뾰족하거나 눈에 띄게 튀기보다는 각 재료가 제 몫을 다하며 점잖게 조화를 이루는 모양새다.

 퀄리티 유지를 위해 하루에 단 9개만 판매하는 스모크드 제주 흑돼지 샌드위치. 사진 김성현

퀄리티 유지를 위해 하루에 단 9개만 판매하는 스모크드 제주 흑돼지 샌드위치. 사진 김성현

하루에 단 9개만 판매하는 ‘스모크드 제주 흑돼지 샌드위치’ 역시 단골들만 아는 비밀 메뉴다. 겉은 마치 튀김처럼 빠삭하지만 속은 폭신폭신 부드러운 바게트 사이에 황 셰프가 직접 훈연한 제주 흑돼지가 듬뿍 올라가는 것이 핵심이다. 이 역시 노마에서 요리하며 북유럽 특유의 훈연 재료들을 떠올리며 만들었다고. 셰프가 매일 직접 훈연해 고기에서 어디서도 쉽게 맛볼 수 없는 스모키한 뉘앙스가 강렬하게 느껴진다. 덕분에 지방이 많은 부위를 사용해도 느끼함보다는 기분 좋은 구수함과 포만감이 먼저 다가온다. 여기에 양파 피클과 루꼴라가 자칫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고기와 어울려 한 차례 균형감을 맞추고, 할라피뇨가 작지만 강력하게 제 역할을 해내며 은은하게 매콤한 맛으로 마지막 밸런스를 완성한다.

이외에도 계절을 고려해 특정 기간에만 선보이거나 셰프가 창의성을 발휘해 기간 한정으로 선보이는 메뉴가 있으니, 운이 좋다면 샌드위치 외에 다른 음식도 맛볼 수 있다. 현재 선보이고 있는 라자냐 역시 베카에서 샌드위치만큼이나 뜨거운 인기를 자랑하는 히든 메뉴다. 잘게 간 소고기가 듬뿍 들어가 포만감이 가득 느껴지는 것은 물론 당근으로 단맛을 뽑아낸 진한 토마토소스는 입 안에서 끊임없이 감칠맛을 터뜨린다. 여기에 베샤멜 소스에는 잘게 자른 대파를 넣어 기존 라자냐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식감과 풍미를 더 했다. 재료 손질부터 완성까지 최소 3~4일이 걸릴 정도로 손이 많이 가는 메뉴인 만큼, 라자냐가 메뉴판에 보인다는 무조건 먹어볼 것을 추천한다.

김성현 cook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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