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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일 없이 빙빙 돈다"더니…北 위성의 반전, 고도 5번 올렸다

중앙일보

입력

군 당국이 군사적 효용성이 없다고 평가 절하했던 북한의 첫 군사정찰위성 만리경-1호가 고도를 조정하면서 우주 궤도를 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두고 북한이 만리경-1호를 통해 위성 운용에 대한 노하우를 쌓고 있다는 추정이 나오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월 1일 만경대학생소년궁전에서 열린 '2024년 설맞이 공연' 관람에 앞서 한 학생이 '만리경1호' 글귀를 붓글씨로 쓰는 모습을 보고 있다. 조선중앙TV 화면=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월 1일 만경대학생소년궁전에서 열린 '2024년 설맞이 공연' 관람에 앞서 한 학생이 '만리경1호' 글귀를 붓글씨로 쓰는 모습을 보고 있다. 조선중앙TV 화면=연합뉴스

5단계 의도적 고도 조정…타원형에서 원형 궤도로

네덜란드 델프트 공대의 위성 전문가 마르코 랑브룩 박사가 미군 주도의 다국적 연합우주작전센터(CSpOC)의 데이터를 토대로 만리경-1호의 움직임을 분석한 결과 최근 의도적인 고도 변경이 포착됐다.

랑브룩 박사는 지난달 27일 올린 블로그에서 만리경-1호의 근지점(궤도상에서 지구와 가장 가까워지는 고도)이 같은 달 19일부터 24일까지 488㎞에서 497㎞로 5차례에 걸쳐 단계적인 상승 추세를 띄었다고 밝혔다. 원지점(궤도상에서 지구와 가장 멀어지는 고도)의 경우 궤도 진입 초기인 지난해 11월 512㎞였지만 현재는 508㎞로 다소 하강한 상태다.

이같은 고도 조정은 북한이 위성에 실린 연료를 이용해 궤도를 타원형에서 원형에 가까운 모양으로 조정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랑브룩 박사는 “북한이 위성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네덜란드 델프트 공대의 위성 전문가 마르코 랑브룩 박사가 연합우주작전센터(CSpOC)의 데이터를 토대로 만리경-1호의 고도를 분석한 그래프. 초기 원지점과 근지점이 512·493㎞를 기록했다가 현재 508·497㎞를 기록하고 있다. 마르코 랑브룩 박사 블로그

네덜란드 델프트 공대의 위성 전문가 마르코 랑브룩 박사가 연합우주작전센터(CSpOC)의 데이터를 토대로 만리경-1호의 고도를 분석한 그래프. 초기 원지점과 근지점이 512·493㎞를 기록했다가 현재 508·497㎞를 기록하고 있다. 마르코 랑브룩 박사 블로그

軍 “위성 궤도 돌지만 유의미한 정찰 활동은 하지 않아”

군 당국은 만리경-1호가 궤도를 돌고 있지만 정상적인 정찰 임무를 수행할 능력은 갖추지 못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군 당국은 지난해 5월 1차 발사 때 추락한 잔해물 분석 등을 토대로 만리경-1호에 일본제 상용 카메라가 탑재됐다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일반적으로 군사정찰위성의 카메라 해상도는 가로·세로 1m 이하 범위를 위성 사진에서 하나의 점으로 나타내는 '서브 미터급'은 돼야 군사적 실효성을 인정 받는다. 반면 만리경-1호 해상도는 1~5m 수준으로 추정된다.

앞서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26일 기자간담회에서 만리경-1호를 두고 “하는 일 없이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있다”고 평했다. 랑브룩 박사의 분석에 군 당국의 평가를 더하면 만리경-1호는 북한의 통제에 따라 움직이긴 하나 유의미한 영상 정보는 보내지 못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광학 장비의 수준이 떨어질 뿐 아니라 영상 정보 송·수신 체계 역시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군 당국이 북한 군사정찰위성 만리경-1호를 실은 우주발사체 '천리마-1형' 잔해물을 지난해 6월 16일 서해에서 인양하고 있다. 연합뉴스

군 당국이 북한 군사정찰위성 만리경-1호를 실은 우주발사체 '천리마-1형' 잔해물을 지난해 6월 16일 서해에서 인양하고 있다. 연합뉴스

“위성 움직임 통제 능력, 예상 못해”

하지만 북한이 처음으로 위성 궤도의 조정 능력이 있음을 입증했다는 점을 주시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과거 북한은 2012년과 2016년에도 각각 광명성-3호와 4호를 궤도에 올렸지만 내부 추진 시스템이 탑재되지 않아 ‘죽은 위성’으로 분류되다 자연 소멸 수순을 밟았다.

랑브룩 박사도 “만리경-1호에 추진 시스템이 실려 궤도 상승 기동을 한 건 다소 놀랍다”며 “상당수 전문가들이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북한은 지난해 11월 22일 전날 밤 발사한 군사정찰위성 1호기 '만리경-1호'의 발사가 성공적으로 이뤄졌다고 밝혔다. 조선중앙통신

북한은 지난해 11월 22일 전날 밤 발사한 군사정찰위성 1호기 '만리경-1호'의 발사가 성공적으로 이뤄졌다고 밝혔다. 조선중앙통신

이처럼 고도를 조정한다면 일단 위성의 수명을 늘릴 수 있다. 위성에 남은 연료로 근지점을 높여 지구 중력의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면 위성의 대기권 재진입 시기를 지연시키는 게 가능하다.

원형에 가깝게 궤도를 조정한다는 건 운용 안정성 향상과도 연관된다. 권용수 국방대 명예교수는 “고도 변화의 폭이 큰 타원형 궤도 때보다 원형 궤도는 일정한 통신, 일정한 관측 능력 등을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위성 통제 능력 놓고 본격 시험하고 있을 가능성

정찰 위성의 임무 유연성을 강화할 수 있다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위성이 정해진 고도와 궤도로 돌지 않는다면 특정 지점에 대한 정찰 시간을 예측하는 건 보다 까다로워질 수밖에 없다. 자연히 적 위성의 정찰을 피해 군사적 동향을 숨기는 작업에 부담이 커지게 된다. 권 교수는 “위성이 고도와 궤도를 적절히 바꿀 수 있다면 우주 공간의 잔해를 피해 움직이는 것 역시 용이해진다”며 “위성을 통한 우주전 기술에도 활용이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일각에선 북한의 만리경-1호 발사가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북한이 1차적으로 위성에 대한 통제 능력을 이번에 본격 시험하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만리경-1호를 평가하기 위해선 카메라 같은 광학 장비 외에 발사체시스템, 위성운영시스템, 지상관제시스템 등을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며 “북한이 앞으로 추가 위성 발사를 대비해 기술 축적에 의미를 뒀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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