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밀려드는 환자 안 받을 수 없고…" 현장 의료진 번아웃 호소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879호 03면

정부·의료계 강대강 대치

한덕수 국무총리(오른쪽)가 1일 오전 전공의 근무지 이탈에 따른 비상 진료 체계 준비 상황 점검을 위해 중앙보훈병원에 들어서고 있다. [뉴스1]

한덕수 국무총리(오른쪽)가 1일 오전 전공의 근무지 이탈에 따른 비상 진료 체계 준비 상황 점검을 위해 중앙보훈병원에 들어서고 있다. [뉴스1]

집단 이탈한 전공의 대부분이 정부가 제시한 2월 말 시한을 넘겨서도 현장에 복귀하지 않으면서 ‘3월 의료대란’에 대한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1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달 29일까지 전국의 100개 수련병원에서 복귀한 전공의는 565명으로 이탈자의 6% 수준에 머물렀다. 여전히 전공의 중 71.8%(8945명)가 이탈한 상태다. 정부가 연휴 기간(1~3일) 복귀한 전공의에 대해서는 정상 참작을 한다고 가정하더라도 양측이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상태여서 정상화 가능성은 크지 않은 상황이다. 의사 커뮤니티에서는 “의업을 포기하겠다”는 전공의들의 목소리도 이어지고 있다.

현장에 남아 있는 의료진들도 ‘번아웃’을 호소하고 있다. 조용수 전남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SNS에 올린 글에서 “부디 이 사태를 좀 끝내 달라. 온몸이 녹아내리는 기분”이라며 “이러다 사직이 아니라 순직하게 생겼다”고 토로했다. 수도권 상급종합병원의 한 교수는 “다들 번아웃을 호소하고 있다”며 “그나마 외과의 경우 수술 등 업무 로드를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지만 내과는 밀려드는 환자를 안 받을 수도 없으니 교수들이 당직을 서가면서 세 개 병동을 커버하고 있다. 너무 힘든 상황”이라고 전했다.

관련기사

상급종합병원으로 가야 할 중증 환자들이 다른 중소병원으로 몰리면서 이곳 의료진들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경기도의 한 2차 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원래 다섯 개 병원에서 중증 환자를 나눠서 봐왔는데 3차 병원 세 곳의 진료 능력이 50%로 떨어진 상태”라며 “우리 병원 등 두 곳에서 중증 외상 등 중증도가 높은 환자도 어쩔 수 없이 받고 있는데 환자가 잘못될까 공포가 크다”고 말했다. 이 전문의는 “이런 상황에서 응급실에서 일하는 게 위험하다는 생각에 당초 들어오기로 했다가 채용을 취소한 사례도 있고, 이번 일을 계기로 조용한 사직을 택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도 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게다가 2월 말 3월 초는 전공의들의 계약 기간이다. 의과대학 졸업생들이 수련병원 인턴으로 임용되고 수련을 마친 전공의들은 전임의 계약을 맺는다. 이 같은 시기에 인턴은 임용을 포기하고 고연차 전공의는 전임의 계약을 맺지 않은 채 병원을 떠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 예비 인턴은 “임용 포기서를 제출했다. 내년 3월 군의관으로 입대할 것”이라며 “정부 정책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시점에서 그냥 수련을 받지 않고 군대에 먼저 다녀오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수도권의 한 상급종합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의 경우 원래는 인턴 두 명을 포함해 전공의 13명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는 전무한 상태다. 이 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는 “오늘 병원에 나왔는데 근무자는 인턴 한 명뿐”이라며 “응급수술은 최대한 실시하고 있지만 수술한 뒤의 환자를 수십 명씩 볼 수가 없어서 심장 수술은 평소보다 5분의 1수준으로 줄인 상태”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심장판막과 관상동맥우회술 등 정규 수술도 어쩔 수 없이 한 달 미뤘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계약 연장이 필요한 전임의 상당수가 정부 방침에 반발해 재계약 포기 의사를 굽히지 않고 있어 위기감은 날로 확산되고 있는 모습이다.

이런 상황에서 연휴 직후 정부가 미복귀 전공의에 대해 행정·사법절차 수순을 밟게 될 경우 사태는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게 현장의 우려다. 현재 전공의 업무 공백을 메우며 최후 저지선 역할을 하는 교수들마저 “전공의들을 보호하겠다”며 대정부 투쟁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분당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가 지난달 28일 실시한 교수 대상 설문조사에서도 ‘전공의들이 면허정지·구속·면허취소 등 실제로 사법 조치를 당한다면 교수들도 전공의와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겸직해제와 사직서 제출 등 집단행동이 필요하다’는 데 84.6%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겸직해제는 의대생을 가르치며 병원에 파견돼 진료하는 의대 교수가 학교 강의만 하고 진료는 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주수호 대한의사협회 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도 “후배들의 부당한 피해를 참을 수 없는 개원의·교수 등 모든 선배 의사들도 의업을 포기하며 그들과 함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 가운데 주요 수련병원장들은 이날도 전공의들의 복귀를 호소했다. 이화성 가톨릭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은 “그동안 지켜왔던 우리의 소명과 우리를 믿고 의지해 왔던 환자분들을 생각해 속히 의료 현장으로 복귀해 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박승일 서울아산병원장도 “여러분을 의지하고 있는 환자를 고민의 최우선에 두기를 간곡히 부탁한다. 하루속히 환자 곁으로 돌아와 달라”는 메시지를 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