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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고정애의 시시각각

○○조국당, 조국○○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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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고정애 중앙SUNDAY 편집국장대리

고정애 중앙SUNDAY 편집국장대리

청와대 민정수석은 격무다. 건치 몇 개를 임플란트로 바꿀 정도가 돼야 나올 수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개인 책’을 낸 이가 있으니 2018년 8월 조국 당시 수석이었다. 그의 설명은 이랬다.

 “2017년 5월 민정수석으로 임명되면서 연구활동을 전면 중단하게 됐다. 그런데 2006년 미국 민권운동가 타라나 버크가 최초로 제창한 ‘미투운동’이 2017년 미국에서 폭발적으로 전개되고 2018년 한국에서도 전개되는 양상을 접하면서 전면 개정판을 발간하게 됐다.”(『형사법의 性 편향』)

 대통령 발의 개헌안까지 관장하던 시기였다. ‘다행히 주말에 짬’을 냈다? 놀랐다. 260여 쪽을 넘기다 마지막 부분에서 이 문장을 발견하곤 더 놀랐다.

 “‘여성에게 조국은 없다’고 외치며 거리에 나온 여성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

기존 팬덤, 기성 정당 공략해 장악
'조국신당'은 팬덤이 아예 창당
나빠진 정치 더 나빠지게 할 수도

 자신의 제안 수용을 바라며 한 말인데, 정작 안희정 전 지사에 대한 1심 무죄 규탄대회의 명칭은 ‘여성에게 국가는 없다’였다. 뜬금없이 ‘조국이 없다’니. 조국(祖國)은 ‘조상 때부터 대대로 살던 나라’란 의미가 강하다. 민족주의적이다. 국가는 공권력을 독점한 단체를 칭한다. 여성들이 요구할 대상은 조국 아닌 국가일 수밖에 없다. 오용한 건 그였다. 그의 이름이 조국(曺國)이 아니어도 그랬을까. 놀라운 자기애의 발현이라고 생각했다.

 26일 조국신당(가칭) 창당준비위와 중앙선관위 사이에 오간 문답을 보며 당시 기억이 떠올랐다. 창준위가 14개의 당명 후보를 보냈고, 선관위는 하나만 불허했다. 길지만 모두 쓰면 이렇다.

가칭 '조국신당' 인재영입위원장을 맡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25일 오전 서울 동작구의 한 영화관에서 열린 '조국신당 창당준비위원회 인재영입 발표식'에서 1호 영입인사로 선정된 신장식 변호사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가칭 '조국신당' 인재영입위원장을 맡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25일 오전 서울 동작구의 한 영화관에서 열린 '조국신당 창당준비위원회 인재영입 발표식'에서 1호 영입인사로 선정된 신장식 변호사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국신당, 조국(의)민주개혁(당), 조국(의)민주개혁행동(당), 조국민주행동(당), 조국을 위한 시민행동(당), 조국시민행동(당), 조국민주당, 조국민주당(祖國民主黨), 민주조국당, 민주조국당(民主祖國黨), 조국개혁당, 조국개혁당(祖國改革黨), 조국혁신당, 조국혁신당(祖國革新黨).

 이 중 조국신당만 안 됐다. 2020년 ‘안철수 신당’을 금지한 것과 같은 논리일 것이다. 한자어를 병기한 걸 뺀 나머지도 의도적으로 祖國·曺國을 뒤섞은 게 아닌가 싶다. 특히 ‘조국(의)민주개혁(당)’이나 ‘조국(의)민주개혁행동(당)’ 속 조국이 祖國이기만 하겠는가. 선관위가 과거 ‘친박연대’를 허용했기에 이번에도 그리 판단했을 텐데 대단히 아쉽다. 특정인을 위한 정당이란 게 헌법상 허용돼야 하는지 의심스럽다.

 많은 이가 총선 과정을 보며 ‘최악’이란 단어를 떠올릴 것이다. 위성정당은 더 나빠졌다. 한쪽은 ‘부하 정당’을 만들고, 한쪽은 대한민국을 인정하지 않는 세력의 여의도행 배지(培地)가 되고 있다. 단지 “50% 가산점을 주는 것만으론 신인엔 도움이 안 된다”던 직전 공관위원장의 고언을 망각한 무감동의 국민의힘은 안타깝고, 친노·친문이 반대파를 날리기 위해 활용했던 ‘시스템 공천’을 더욱 가공할 무기로 업그레이드해 반대파들을 발본색원하는 반민주적 민주당과 그 대표엔 경악하게 된다.

 조국신당의 문제도 못지 않다고 여긴다. 그가 지난 7일 2심에서도 자녀 입시 비리와 감찰 무마 혐의로 징역 2년형을 받은 내로남불의 ‘범죄자’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누군가 “감옥 갈 확률 99%”의 창당이라고 표현했던데, 국회를 범죄자 도피소로 만들기 때문만도 아니다. 팬덤 정치가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여서다. 그간 팬덤은 기존 정당의 인물을 발견해 리더로 삼곤 했다. 그러고는 기성 정당을 압박하고 대체했다. 그 결과 민주당은 10여 년 만에 뿌리를 잊었다.

 조국신당은 아예 정당을 차린 경우다. 태생 자체가 팬덤 정당이다. 10석 정도 기대한다는데 여론조사만 보면 불가능해 보이지만도 않는다. 장차 이들이 여의도에서 보일 ‘반정치’가 두렵다. 소수라 괜찮다고? 불타협의 과격한 소수가 때론 가공할 변화를 만들어내곤 했다. 기우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