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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승욱의 시시각각

김종필의 정치, AI의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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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서승욱 기자 중앙일보 정치국제외교안보디렉터
   서승욱 정치국제외교안보디렉터

서승욱 정치국제외교안보디렉터

 #1 "이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 일이었는데 참으로 못할 짓을 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용서를 구한다고 해서 원상회복될 일은 아니었다. 다만 그의 솔직하고 예의 바른 어투에 내 마음이 누그러졌다. 나는 "이것도 도도히 흘러가는 시대의 역사"라고 말해 줬다. 그리고 2인자로서의 처신을 충고했다. "절대로 1인자를 넘겨다보지 말아라. 비굴할 정도는 안 되겠지만 품격을 유지하면서 고개를 숙여야 한다. 이때도 2인자다운 논리가 서야 한다. 조금도 의심받을 만한 일은 하지 말아라. 때가 올 때까지 1인자를 잘 보좌해야 한다. 억울한 일이 있어도 참아야 한다. 진정한 인내는 참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참을 수 없는 것을 참는 것이다."

1990년 노태우 대통령(오른쪽)과 공화당의 김종필 총재가 청와대에서 회담을 했다. [중앙포토]

1990년 노태우 대통령(오른쪽)과 공화당의 김종필 총재가 청와대에서 회담을 했다. [중앙포토]

#2 싸울 땐 치열하게 싸우더라도 인간미 흐르는 정치를 하고 싶었다. 상대방은 나를 자극하는 경쟁자일 뿐 죽기살기로 싸워 없애야 할 적은 아니다. 나는 '양김(金)'씨에게 붓으로 쓴 편지를 보냈다. 전화나 사람을 보낼 수도 있었지만 편지를 선택했다. 평소 쓰던 전용 메모지를 세로로 세워 붓으로 정성과 품격을 담았다.

JP 증언록에 독자들 다시 열광  
절제와 품격 담긴 선 굵은 정치
한동훈·이재명의 현실과 대비

더중앙플러스(중앙일보 유료 구독 서비스) 콘텐트 중 '김종필(JP) 증언록'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이 특히 뜨겁다. #1은 1980년 8월 하순 신군부 2인자 노태우와 마주한 JP다. 46일간의 구금, 부정축재 자백 강요와 공직 사퇴 압박 등 신군부에 큰 고초를 겪은 직후였다. 그런데도 둘의 대화엔 절제와 존중이 흐른다. 가해자에게 전수하는 피해자 JP의 2인자론은 그 백미다. #2는 '1노3김' 4당 체제를 낳은 1988년 4월 13대 총선 직후다. 제4당 총재 JP는 김영삼(YS)·김대중(DJ)에게 회동을 제안하며 야 3당 공조에 나섰다. 예의와 격조를 갖춘 JP의 손편지에 양김이 화답하며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 무르익는다.

정치 9단들의 감수성과 상상력 충만한 선 굵은 스토리, 9년 전 연재됐던 고전에 독자들이 다시 열광하는 건 팍팍하고 참담한 현실 정치와의 대비 때문이리라.

JP의 2인자론엔 정말 소름이 돋는다. 박정희 대통령과의 관계 속에 체득된 삶의 응축이다. 넘지 말아야 할 선과 함께 자존감까지 지켜야 하는 2인자의 아슬아슬한 숙명이다. 여권의 넘버 1, 2가 맞붙었던 윤석열-한동훈 충돌에선 없었던 무게감과 절제, 품격이 담겼다. 검사 출신 초보 정치인 두 사람의 이번 윤-한 충돌은 전혀 달랐다. 형·아우도 없는 특수부 검사들의 언론 플레이, 뜬금없는 90도 인사와 맥락 없는 봉합 오찬 등 가벼운 처신과 잔기술, '발연기'가 지배했다.

JP가 말한 "싸울 땐 치열하게 싸우더라도 인간미 흐르는 정치" 역시 현실엔 없다. 붓으로 쓴 편지를 주고받기는커녕 존중과 배려의 기본적 마지노선까지 무너진 지 오래다. 대통령은 야당 대표와는 눈조차 마주치지 않으려 한다. 야당은 '기승전-대통령 부인'으로만 재미를 보려 한다. 정치 9단들의 그 시절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눈앞에 펼쳐지는 총선전의 수준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사석에서 만난 원로 정치인은 "한동훈, 이재명, 이준석 모두 두뇌 회전이 너무 빠른 천재들이라 머리로만 정치를 하는 것 같다. 혼(魂)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AI가 준 정답을 실행하듯 기계적으로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 비판에만 올인한다. 인기 없는 대통령의 존재감을 지우고 '한동훈-이재명' 구도로 선거를 치르겠다는 의도는 알겠다. 하지만 그런다고 철학과 비전의 결핍, 감수성과 진정성 부재가 감춰지진 않는다. 한 위원장이 AI라면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고장난 AI처럼 폭주하고 있다. '총선 승리보다 이재명당 만들기가 살길'이라는 잘못된 지령에 사로잡혀 '친명횡재, 비명횡사' 기조에 목을 맨다. 왜 이 시점에 JP증언록이 다시 뜨는지, 답은 현실을 헤매는 정치 초단들이 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