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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양성희의 시시각각

콘텐트 강국의 이상한 풍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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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 풍경 1. K팝 종주국에 대형 공연장이 없다? 최근 국내외 대형 가수들의 공연장 잡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4만5000석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이 2026년 말까지 리모델링 중이라서다. 잠실보조경기장(2만5000), 고척돔(2만)도 공사 중이다. 지난해 잼버리 대회 폐막식, K팝 공연을 축구 팬들의 ‘잔디 훼손’ 원성을 사면서까지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연 배경이다. 현재 국내에서 1만 명 이상 수용 가능한 곳은 케이에스포돔(구 체조경기장) 1곳. 이달 초 도쿄돔(5만) 4회 공연을 마친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에 대해 ‘코리아 패싱’ 논란이 나오지만 정작 그를 세울 무대가 없는 게 현실이다. 일본은 1만 명 이상 들어가는 공연장이 40개고, 해외에서는 손흥민이 소속된 영국 토트넘 홋스퍼 구장(6만) 등 스포츠 구장을 음악 공연장으로 적극 활용한다.

K팝 스타도 공연장 잡기 별 따기
제작사 인수 무리한 수사 논란에
문산법도 시끌…K컬처 강국 맞나

번듯한 대중음악 공연장에 대한 요구는 업계의 숙원이었다. 지난해 개관한 인천 영종도의 1호 아레나(1만5000)에 이어 서울 창동, 경기도 고양 등에 1만~2만 석 아레나 건설이 추진 중이지만 시간이 걸린다. 한마디로 K팝 강국이라는 위상에 맞지 않는 인프라 부족이다. 관광 등과 연계하며 날로 커지는 글로벌 공연시장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지난해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전 세계 라이브 티켓 판매액은 30조3000억원에 달했다.

# 풍경 2. 창작자 보호법이 창작자의 발목을 잡는다? 지난해 만화 ‘검정고무신’ 작가의 비극적 죽음을 계기로 문체부와 국회가 마련한 ‘문화산업공정유통법’(문산법)도 논란이다. 문화산업 전반의 불공정 행위 10개 조항 규제를 골자로 하는데, 중복규제·과잉입법 논란으로 국회 법사위를 넘지 못했다. 취지에는 공감하나 현장과 맞지 않고, 특히 디지털 콘텐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령 ‘작가에게 판촉비 전가 금지’ 조항은 창작자를 보호하는 것 같으나 웹툰·웹소설 초기 일부 회차를 무료로 공개해 독자를 모으는 프로모션 관행이 무명 작가의 등용문이 돼 온 현실과 충돌한다. 플랫폼·출판사가 부담을 지면서 신인에게 기회를 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창작자 단체까지 부정적 입장을 내놓자 문체부는 하위 법령으로 보완하며 업계 의견을 수렴·반영하겠다고 밝혔다.

# 풍경 3. 미래가치를 본 제작사 인수가 범죄다? 최근 법원은 열악한 드라마 제작사(바람픽쳐스)를 고가로 인수해 배임(400억원) 혐의를 받는 카카오엔터테인먼트 김성수 대표와 이준호 투자전략부문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검찰은 김 대표 등이 인수대금을 부풀려 바람픽쳐스에 시세차익을 몰아줬다고 봤으나, 법원은 “범죄의 성립 여부와 손해액 등에서 다툴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간 김 대표 측은 “‘미생’ ‘나의 아저씨’의 김원석 PD, 김은희·박혜련 작가 등 유명 감독·작가들과 다수의 작품을 준비하며 성장 잠재력을 갖춘 유망한 제작사에 대한 투자”라고 항변해 왔다.

물론 하필 바람픽쳐스 대주주인 탤런트 윤정희씨가 이 부문장의 아내라는 점은 여전히 미심쩍지만, 콘텐트 제작사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수사라는 비판이 많다. 작품 라인업, 감독·작가 등 무형의 자산을 보고 미래가치에 투자한 것을 성급하게 배임과 등치시켰다는 얘기다. 회계장부에 나오지는 않지만, IP(지식재산) 보유 여부만으로도 얼마든지 몸값이 올라가는 게 제작사다. 망해 가는 제작사를 왜 비싸게 샀느냐는 의심이지만, 당장 실적은 없어도 잠재력 있는 제작사가 투자를 받아 좋은 작품을 내는 건실한 회사로 기사회생한 모범사례로도 볼 수 있다. 바람픽쳐스는 지난해 tvN ‘무인도의 디바’, OTT 디즈니+ ‘최악의 악’ 등 히트작을 연이어 내놓았고, 400억원의 연매출을 올렸다.

일단 수사에는 제동이 걸렸지만, 콘텐트 산업의 주요 동력의 하나인 M&A 시장에 찬물을 끼얹을 뻔한 사례다. 모두 세계 4대 콘텐트 강국을 지향한다는 나라의 이상한 풍경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