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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 토론회, ‘토론회’ 맞습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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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김기환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기환 경제부 기자

김기환 경제부 기자

주최자는 새롭다는데, 신선하지가 않다. 윤석열 대통령이 연초부터 잇달아 주재한 ‘민생 토론회’ 얘기다. 정부 부처가 대통령을 상대로 하는 신년 업무보고를 대체한 행사다. 대통령실은 “민생과 밀접한 주제를 놓고 국민과 대통령, 공무원이 심도 있게 토론하는 ‘타운 홀 미팅’”이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형식부터 생생한 토론과 거리가 멀었다. ‘짜여진 각본’에 가까워서다. 기업 대표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달라”고 하면 공무원이 “불 꺼지지 않는 정부가 되겠다”고 답하는 식의 감동 없는 문답이 오갔다. 토론회를 준비한 정부부처 한 공무원은 “중립성·대표성을 띈 국민을 성별·나이·지역에 따라 참석자로 섭외했다. 생방송이라 돌발 사고가 나지 않도록 준비했다”고 말했다. 덕분에 대통령 발언만 선명하게 남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3일 부산시청에서 열린 민생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3일 부산시청에서 열린 민생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힘들어서 안 되겠다고 호소하면,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정부가 돼야 한다.”(1월 4일 경기도 용인 중소기업인력개발원, 발언 직후 서민·소상공인 대출 연체기록을 삭제하는 ‘신용 사면’ 추진)

“상속세가 과도하다는 데 국민적인 공감대가 필요하다. 과도한 세제를 개혁해야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1월 17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부산이 글로벌 허브 남부권 거점으로 자리 잡기 위해 가덕도 신공항은 꼭 완수해야 할 현안 사업이다.”(2월 13일 부산시청)

하나하나 깊이 있게 토론해야 할 주제가 대통령의 입을 통해 정리됐다. 부족한 세수(稅收)를 확보할 대책, 국회 협조를 구할 방법 등 구체적인 실행 방안은 빠졌다. 주최자가 하고 싶은 얘기만 하는 건 토론회가 아니다. 토론회를 생중계한 유튜브에는 ‘뻔한 질문만 나온다’ ‘이게 무슨 토론이냐’는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무엇보다 ‘추가 질문’ 없는 토론회라 맥이 빠졌다. 진짜 토론회라면 아래와 같은 추가 질문이 이어졌어야 한다.

“신용 사면은 어려운 사정에도 불구하고 제때 빚을 갚은 사람에 대한 역차별 아닐까요.”

“상속세를 내린다고 대기업 총수 일가가 소수 지분으로 전체 계열사를 지배하고, 총수 이익을 위해 다수 주주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하는 후진적 기업 지배구조가 바뀔까요.”

“전국 공항 15곳 중 인천·김포·김해·제주공항을 제외한 11곳이 적자 신세인데 공항을 더 지어야 하나요.”

대통령의 실력은 껄끄러운 추가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드러난다. 연중 계속된다는 민생 토론회가 이름에 걸맞게 바뀌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