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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가 5월 29일까지 꼭 해야 할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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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박현준 기자 중앙일보 기자
박현준 사회부 기자

박현준 사회부 기자

저녁 6시 무렵이면 전국 법원의 법정은 텅 빈다. 10년 전엔 어색한 풍경이었다. 밤 10시, 때로는 자정까지 야간 재판이 열리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판사건 검사건 쫓기듯 사건을 처리했다. 규정된 시한에 재판을 못 끝내고 구속된 피의자를 풀어주는 게 유행처럼 된 요즘과는 사뭇 다르다.

판사들에게 대법원 지침이 내려왔나 싶어서 알아보니 그건 아니라고 한다. “세상의 공기가 달라졌다”(중견 부장판사)고 한다. 판사에게도, 법원 직원에게도, 하다못해 증인에게도 대가없는 열정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게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재판이 늦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 됐다. 1심 선고까지 2017년에는 민사 합의 사건 9.8개월, 형사 합의 사건 5개월이 걸렸지만, 2022년에는 각 14개월과  6.8개월로 늘어났다(2023 사법연감).

지난달 2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대법원 시무식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이 법관 증원 필요성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대법원 시무식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이 법관 증원 필요성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판사 수를 늘려 재판 속도를 높이자는 건 이런 현실에서 나온 대안이다. 국민의힘도, 더불어민주당도 동의하고 있다. 3214명으로 고정해 놓은 판사 정원을 2027년까지 3584명으로 늘리는 내용의 법률개정안(판사정원법)도 2022년 12월 국회에 제출됐다.

그런데 개정안은 지난해 7월 이후 처리가 중단됐다. 국민의힘과 법무부가 2292명으로 묶인 검사 수를 판사 증원에 맞춰 늘리자는 검사정원법 개정안을 내놓으면서다. 발끈한 민주당은 “공수처 검사도 증원하자”고 역제안을 했다. “검사 증원과 별개로 판사 증원부터 하자”고 사법부가 설득했지만, 기싸움 중인 여야 의원들은 요지부동이다. 그러다 지금은 4월 총선을 앞두고 논의가 중단된 상태다.

다음 국회에서 처리하면 되지 않겠냐고 안일하게 생각할 상황은 아니다. 총선이 끝난 직후인 4월 말까지, 혹은 늦어도 21대 국회의원 임기 만료일인 5월 29일까지 판사정원법을 통과시키지 못하면 재판 지연 해소는 내후년에나 기대할 수 있다. 개정안을 22대 국회에 제출하고 법사위를 거치는 일정이 순조롭게 진행된다 해도 올해 10~11월 정도나 본회의에 오를 수 있는데, 그 때는 올해 공고한 신규 판사 임용이 이미 끝난 뒤다. 거기다 내년부터 신규 판사 임용시 필요한 법조경력이 기존 5년에서 7년으로 늘어나는 걸 고려하면 2년 간의 인력충원 기근이 불가피하다.

“판사가 더 일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야간 재판이 다반사이던 지난날의 열정이 아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주 4일 야근 판사’라는 별명이 있던 강상욱 서울고법 판사가 갑작스레 유명을 달리한 게 불과 한 달 전 일이다. 노력과 희생만 강조하던 낡은 시대는 이제 아니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