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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차이나 이도성의 본 차이나

"안경 안쓰는 사람 원함"…일요일 공원에 모인 中부모들,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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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1995년생 5월생. 베이징 출신 여성. 건강하고 화목한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음. 성실한 베이징 출신 남성을 찾음. 안경 안 쓰는 사람 원함.

이도성 베이징 특파원

이도성 베이징 특파원

춘제(음력 설) 연휴 마지막 날인 지난 18일 중국 베이징의 50대 남성은 딸을 소개하는 이런 종이를 들고 아침 일찍 중산공원(中山公園)에 나왔다. 사윗감을 찾기 위해서다. 5년 전 처음 이곳을 찾았다는 그는 "일찍 시작해야 결과도 일찍 맺을 수 있지 않겠냐(先入爲主)"면서 "아이를 낳고 기를 걸 생각하면 20대 후반인 내 딸도 이미 어린 나이는 아니다"고 말했다.

기자가 자금성 서쪽 담장에 붙어 있는 중산공원을 찾은 이날, 오전 11시부터 중년 남녀가 모여들었다. 두툼한 외투를 입고 보온병을 든 사람들이 방수 코팅된 소개서를 바닥에 깔았다. 사는 곳, 직업, 소득 등 '스펙'과 함께 원하는 상대방의 조건이 빼곡히 적었다. 소개서에 줄을 달아 목에 걸고 돌아다니는 사람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지난 18일 중국 베이징 중산공원에서 열린 '샹친자오'에 모인 사람들이 자기소개서 목록을 보고 있다. 이도성 베이징특파원.

지난 18일 중국 베이징 중산공원에서 열린 '샹친자오'에 모인 사람들이 자기소개서 목록을 보고 있다. 이도성 베이징특파원.

'소개팅 모퉁이' 모인 부모들

이곳을 중국인들은 샹친자오(相親角)라고 부른다. '샹친(相親)'은 선을 본다는 뜻이고, ‘자오(角)'는 '모퉁이'·'구석'을 의미한다. 자녀를 결혼시키고 싶은 부모들이 모이는 ‘소개팅 모퉁이’인 셈이다. 오후 2시엔 공원 북측에 자리한 200m 남짓 되는 거리가 수백 명의 사람들로 가득 찼다. 한 참가자는 "매주 목요일과 일요일마다 샹친자오가 열린다"며 "오늘은 명절이라 평소보단 사람이 적은 편"이라고 귀띔했다.

샹친자오는 2004년 베이징시 룽탄(龍潭)공원에서 처음 시작된 걸로 알려져 있다. 이젠 전국 곳곳으로 퍼졌다. 쓰촨성 청두시 한 공원에는 남성은 파란색, 여성은 분홍색으로 구분한 소개서가 수백장 내걸렸고, 장쑤성 난징시 한 쇼핑몰에서도 '사랑을 조우하세요(遇見愛情)' 라는 게시판에 종이 한 장으로 정의된 청춘 남녀가 몰렸다.

지난 18일 중국 베이징 중산공원에서 열린 '샹친자오'에 중년 남녀들이 몰려 있다. 이도성 베이징특파원.

지난 18일 중국 베이징 중산공원에서 열린 '샹친자오'에 중년 남녀들이 몰려 있다. 이도성 베이징특파원.

'조급한' 부모와 '느긋한' 자녀의 결혼관에 대한 온도차가 만들어낸 풍경이다. 샹친자오를 찾은 부모들은 대부분 1980년대 가족계획생육정책 이후 아이를 낳았다.'한 자녀 정책'이라 불리는 산아제한책을 겪은 세대다. 부모 입장에선 '아이를 갖는 기쁨'을 모르는 자녀들이 야속하기만 하다. 기자가 만난 한 중년 여성은 "내 딸은 베이징 호적과 차량을 가진 일등신붓감”이라며 "30살이 넘도록 결혼할 생각이 없어보여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샹친자오에서 부모들은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는다. 프로스포츠 구단이 선수를 트레이드하듯 원하는 조건을 제시하고 상대방이 가진 정보를 캐낸다. 연령과 직업, 학력 등이 ‘문턱’을 넘은 뒤에야 소개서를 보여주는 사람도 있었다. 마음에 든다 싶으면 휴대전화를 꺼내 자녀 사진을 공개하고 연락처를 교환했다. 해외 거주자를 위한 공간도 있었다. 영국에 거주하는 30대 딸을 둔 한 60대 남성은 "해외에선 중국 남성을 만나기 어렵다"면서 "이곳에서 인연을 찾아 딸에게 소개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중국 베이징 중산공원에서 열린 '샹친자오'에 깔린 미혼 남녀 소개서. 이도성 베이징특파원.

중국 베이징 중산공원에서 열린 '샹친자오'에 깔린 미혼 남녀 소개서. 이도성 베이징특파원.

경제적 부담에 '공혼족' 유행어

“왜 결혼을 안 하느냐”는 기성세대 물음에 젊은이들도 할 말은 있다. 이날 중산공원에서 만난 30대 남성은 “짝을 찾고 싶어 샹친자오에 나왔다”면서 “결혼까지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웨이란 성만 밝힌 그는 미국 대학을 졸업한 뒤 베이징의 한 인공지능 회사에 다니고 있다. 또래와 비교하면 벌이가 적진 않지만 결혼 비용은 부담된다며 한숨 쉬었다. 한 데이터업체가 발표한 2021년 중국 평균 결혼식 비용은 17만 4000위안(약 3234만 원)이었다. 신랑이 신부 측에 보내는 ‘차이리(彩禮·지참금)’도 결혼을 망설이게 하는 이유 중 하나다. 경제적 부담에 결혼을 두려워하는 ‘공혼(恐婚)족’이라는 단어도 유행한다.

중국 국가통계국 자료에 따르면 중국의 결혼 건수는 2013년 1347만 건에서 2022년 683만 건으로 반 토막 났다. 통계 작성을 시작한 1986년 이후 역대 최저치다. 초혼 연령도 2010년 24.89세에서 2020년 28.67세로 높아졌다. 일부 전문가들은 최근 평균 초혼 연령이 이미 30세 안팎까지 높아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나 혼자 산다’는 청년이 늘어나면서 아기 울음소리도 잦아든다. 중국 인구는 지난해 14억 970만 명이었다. 전년보다 208만 명 줄었다. 2년 연속 감소세다. 세계 1위 인구 대국 자리는 인도에 내줬다. 출생률은 지난해 인구 1000명당 6.39명으로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진 이래 최저 수준이다.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 수도 2000년 1.63명에서 2022년 1.09명으로 줄었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1위 인구 대국' 빼앗긴 중국

향후 전망은 더 어둡다. 지난해 말 중국 국무원 산하 싱크탱크는 앞으로 신생아 수가 10년마다 100만 명씩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호주 연구팀 분석을 인용해 “2100년이면 중국 인구가 5억 8700만 명으로 급감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인구감소는 부동산침체, 디플레이션과 더불어 중국 경제에 드리운 먹구름이다. 장기적인 성장 동력과도 직결된 문제다. 경제학자인 쭤쉐진 전 상하이 사회과학원 부원장 겸 경제연구소장은 지난해 11월 한 심포지엄에서 “경제 성장 둔화와 공급망 충격 등 문제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2024 시진핑 중국국가주석의 신년사

2024 시진핑 중국국가주석의 신년사

불 보듯 뻔한 미래가 다가오고 있지만 묘안은 없는 상태다. 대기근이 강타한 1961년 이후 처음 인구가 줄어든 지난해 시진핑 국가주석이 직접 대책 수립을 주문했다. 시 주석은 “인구 발전은 중화민족 부흥의 대사(大事)”라며 "고품질 인구 발전으로 중국식 현대화를 뒷받침해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신년사 땐 새로운 가족사진도 공개했다. 전통적인 가족의 가치를 강조하고 출산과 육아를 장려했다. 올해 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최대 정치행사 양회(兩會·전국 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도 결혼과 출산 관련 정책이 화두에 오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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