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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선2035

출산은 초미안함과의 사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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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박태인 기자 중앙일보 정치부 기자
박태인 정치부 기자

박태인 정치부 기자

대한민국의 특이점이 온 것 같다. 웬만한 단어에 초(超)가 붙지 않으면 주변 현상을 설명하기가 버거울 지경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청와대 직원에게 선물했던 저서 『90년생이 온다』로 화제를 모았던 작가 임홍택이 지난해 11월 펴낸 『2000년생이 온다』에서도 초는 요긴하게 쓰인다. 회사 상사에게 “월급에 비례해 일하자”라거나 “회식에 참석하지 않은 만큼 회의비를 달라”는 2000년대생들을 저자는 ‘초합리·초개인·초자율’이란 키워드로 설명한다. 그리고 이 세 가지 특징이 상호작용을 하며 국가소멸 수준인 0.6명대 합계출산율이라는 초저출산을 발생시킨 것이라 분석한다.

지난해 12월 서울 공공산후조리원 신생아실 요람이 비어있는 모습. 통계청은 올해 합계출산율을 0.68명으로 추산했다.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서울 공공산후조리원 신생아실 요람이 비어있는 모습. 통계청은 올해 합계출산율을 0.68명으로 추산했다. [연합뉴스]

그런 시대에 아내와 나는 기꺼이 아들을 낳았다. 오늘은 출산휴가를 마치고 업무에 복귀한 첫 번째 날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후배가 없던 입장에서, 그 말의 뜻이 무엇인지 이제는 헤아릴 수 있다. 출근의 두려움도 아이를 보면 눈 녹듯 사라진다. 이를 초사랑이라 부르면 적절할까. 현재 갖춰져있는 국가 지원 시스템의 실태와 한계도 체감했다. 1년간 매달 110만원의 부모·아동 수당이 지급된다. 자녀 1명당 1억씩 준다는 대기업도 있다지만, 출산 그 자체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꽤 파격적이었다. 출산에 따라 내야하는 병원비는 병실비뿐이었고, 아이가 집중치료실에 입원했으나 영수증에 찍힌 치료비는 14만원이 전부였다.

그러나 “둘째를 낳겠느냐”고 묻는다면, 혹은 “다른 이에게도 출산을 권유하겠느냐”고 묻는다면 답하기는 쉽지 않다. 당장 우리 가족부터 둘째와 ‘영끌 자가’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처지다. 소득에 따라 올라가는 출산율을 두고 ‘유전자녀, 무전무자녀(정재훈 서울여대 교수)’라는 표현까지 등장한 세상 아닌가. 출산 이후의 삶은 여전히 막막하다.

아이를 낳고 보니 대한민국에서의 출산은 ‘초미안함’과의 사투라는 생각도 들었다. 여성 대비 남성의 육아휴직율이 현저히 떨어지는 상황에서, 남편보다 많은 월급을 받던, 커리어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육아휴직을 쓴 아내에 대한 미안함부터, 내 출산휴가로 업무가 가중됐던 선후배에 대한 송구함, 여전히 주 40시간이 아닌 52시간 근로제가 기준인 노동 현실에서, 양육을 도와주시는 양가 부모님에 대한 죄송함과 매일 아빠와 짧은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을 내 아이에 대한 죄책감까지. 비교와 과시가 일상이 된 초경쟁사회에서 자라날 아들의 미래까지 걱정하는 건 사치라 느껴진다. 이런 수많은 미안함을 “아이를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선언적 주장만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차라리 부모의 일상에서 미안할 일을 하나라도 제대로 줄여주겠다는 게 어떨까. 2000년대생도 90년대생도 아닌 80년대생 부부였기에 아이를 낳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초합리와 초개인, 초자율주의로 무장한 앞으로의 세대는 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