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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장혜수의 카운터어택

히딩크 효과, 차범근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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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장혜수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장혜수 콘텐트제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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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의 불안감은 조금씩 잊혔다. 한국이 2024 카타르 아시안컵 축구대회 조별리그 1차전에서 바레인에 3-1로 이기면서다. 심지어 ‘이러다가 정말 우승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했다. 거슬러가면 지난해 10월 국가대표팀 평가전에서 베트남을 6-0, 튀니지를 4-0으로 연파했을 때부터 얼마쯤 확신이 생겼던 것도 같다. ‘홈 평가전 10골’에 따른 미몽이었다. 그 꿈에서 깨기 시작한 건 2-2로 비긴 조별리그 2차전 요르단전부터다. 3-3으로 비긴 조별리그 3차전 말레이시아전은 알려줬다. ‘저 감독, 정말 아니다’라는 것을. 16강전에서 호주를, 8강전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연장승부 끝에 이겼는데도 찝찝했다. 유효슈팅 없이 요르단에 0-2로 진 준결승전 ‘덕분’에 현실을 직시하게 됐다.

페루에 0-1로 진 지난해 6월 평가전 때 클린스만 감독. 부임 초부터 말이 많았지만 그때는 대놓고 문제삼지 못했다. [뉴스1]

페루에 0-1로 진 지난해 6월 평가전 때 클린스만 감독. 부임 초부터 말이 많았지만 그때는 대놓고 문제삼지 못했다. [뉴스1]

손흥민과 이강인의 다툼이 묻혔다면, 그간의 문제가 유야무야 넘어가 클린스만 체제가 유지됐다면. 한국 축구는 ‘오만 쇼크’(2003년 아시안컵 예선에서 오만에 1-3 패배)나 ‘몰디브 참사’(2004년 월드컵 예선에서 몰디브와 0-0 무승부)를 재현할지 모를 일이다. 클린스만 감독 영입의 진실은 새로운 국회가 청문회나 국정감사에서 다룰 가능성이 크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증인석에 앉기 전에 진실이 드러날 수도 있다. 최근 독일 슈피겔지의 클린스만 인터뷰가 그 서곡으로 들린다.

정말 중요한 일은 차기 감독 선임 등 앞으로다. 클린스만 감독 선임 때도 우려 목소리가 없지 않았다. 다만 미미했다. 클린스만 감독의 부임 초반 평가전과 훈련 과정도 매끄럽지 못했다. 왜 그때는 대놓고 문제를 문제 삼지 못했을까. 두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고 본다. ‘히딩크 효과’와 ‘차범근 교훈’이다.

거스 히딩크 전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은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로 영웅이 됐지만, 준비 과정에는 잡음이 컸다. 심지어 월드컵 개막을 불과 넉 달여 앞두고 “더 늦기 전에 감독을 바꾸라”는 여론이 들끓었다. 결국 한국은 월드컵 4강에 올랐고, “감독 경질”을 외쳤던 이들은 통렬한 자기 반성에 들어가야 했다.

이후 외국인 감독 중도 퇴진 주장은 일종의 금기가 됐다. ‘히딩크 효과’다. 1998 프랑스월드컵 조별리그 2차전에서 한국은 네덜란드에 0-5로 졌다. 이미 1차전에서 멕시코에 1-3으로 진 뒤였다. 여론의 뭇매를 맞은 대한축구협회는 차범근 당시 대표팀 감독을 대회 중간에 경질했다. 이를 주도한 조중연 당시 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은 두고두고 뒷말을 들었다. 이후 감독 관련 일에는 좀처럼 나서는 이가 없다. ‘차범근 교훈’이다.

과거에서 배우는 건 중요하다. 하지만 모든 일이 같을 수는 없다. 따라서 배운 것을 적용할 때는 선택적이어야 한다. 클린스만은 ‘히딩크 효과’와 ‘차범근 교훈’이 더는 한국 축구의 금과옥조가 돼서는 안된다는 걸 알려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