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처럼 보건복지부에 구제해달라고 애걸복걸하는 난처한 상황은 없을 겁니다.”
최근 의대생 사이에 온라인으로 공유되는 글의 일부다. 제목은 ‘동맹휴학이 리스크 없는 이유.’ 의대생으로 추정되는 글쓴이는 “단체로만 행동하면 유급될 일이 없으니 걱정하지 말고 동맹휴학을 해도 된다”며 “투쟁이 끝나더라도 구제 주체는 복지부가 아닌 여러분의 스승인 의대 교수들”이라고 적었다.
이 글은 최근 동맹휴학을 결의한 일부 의대생들의 인식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정부는 의대생들의 동맹휴학에 연일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지만, 일부 학생들은 “손해 볼 것 없는 투쟁”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의대생들은 휴학이나 유급으로 인한 피해가 본인들보다는 대학병원과 교수들에게 더 클 것이라고 본다는 얘기다.
정부 경고에도…동맹휴학 강행하는 의대생들
19일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의대를 둔 40개 대학 총장들과 긴급 영상회의를 열고 “법과 원칙에 따른 학사관리에 힘써달라”고 말했다. 학과장 승인 등의 절차를 지키지 않거나 정당한 휴학 사유가 없는 휴학계는 승인하지 말라는 취지다. 박성민 교육부 대변인 겸 기획조정실장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휴학 등에 관한 학칙을 제대로 운영하지 않은 대학은 시정명령 등 관련 법령에 따라 조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날 160명이 휴학을 신청했던 원광대 의대생들은 이날 휴학 신청을 취소했지만, 다시 휴학을 재개할 방침이다. 한 의과대학의 동맹휴학 TF위원장은 학생들에게 원광대 소식을 전하며 “타 의과대학과 일정을 통일해 원광대도 다시 휴학을 재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의대생들은 자체적으로 언론을 향한 입단속을 하며 ‘전열’을 가다듬는 분위기다. 각 대학의 의대생들이 모인 단체대화방에선 “어떠한 경로로든 언론이나 기자의 인터뷰 요청이 왔을 때 무대응으로 일관해달라”며 “우리 학생들이 당장 할 수 있는 적극적 행동은 외부 유출 엄금임을 인지해달라”는 글이 공유되고 있다.
“집단 유급, 제적에 힘든 건 대학병원”
각 대학이 휴학계를 승인해주지 않으면 학생들은 출석 일수 부족으로 유급 처리될 수 있다. 유급처리를 세 번 받으면 제적 처리된다. 하지만, 의대생들 사이에선 집단 유급, 제적 문제가 대학병원 운영과 직결돼 처분이 현실화하지는 않을 것이란 인식이 퍼져 있다고 한다.
유급에 대한 부담감이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심각하지 않다는 것이다. 대다수의 의과대학은 F학점을 받은 과목이 있거나 학년 평점 평균이 2.0 미만일 경우 유급 처리된다. 서울성모병원의 한 전공의는 “의대 입학생의 10~20%는 같이 졸업을 못 한다. 그만큼 유급이 많다는 얘기”라며 “유급하면 한 해 더 공부하면 된다는 인식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대학 커뮤니티에는 “1년 쉬는 거 쫄지 마라. 유급생들도 학교 잘 다닌다. (동맹휴학을 하면) 다 같이 놀아서 부담도 없어 생각보다 꿀이다”라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국시 재응시 허용 전례도
의대생들이 단체행동에 부담을 느끼지 않는 원인 중 하나로 2020년 의사 파업 때 의사국가시험(국시) 재응시를 허용했던 전례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당시 주요 대학병원장들은 국시를 거부한 2700여 명의 졸업생을 구제하기 위해 정부서울청사에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하고 고개를 숙였다. 결국 정부는 이듬해 재응시를 허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