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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암 환자 수술 중 상체 세웠다…그 의사 ‘기행’의 속내 [닥터후 II]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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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유방암 명의 이은숙

닥터후Ⅱ(Dr. WhoⅡ)

몸의 병이 마음의 병으로 ‘전이’되는 것까지 막아주는 의사들. 환자단체가 뽑은 명의를 소개하는 ‘닥터후Ⅱ’, 이번엔 유방암 명의입니다. 질병은 환자 개인의 일이 절대 아니죠. 유방암 진단을 받고서도 손주 돌보는 일 때문에 자식 눈치를 보는 할머니들이 있답니다. 그럴 때 단호하게 환자 가족들에까지 ‘행동지침’을 전해주는 이은숙 전 국립암센터 원장 이야기입니다.

‘유방암 명의’이은숙 리리유의원 원장. 장진영 기자

‘유방암 명의’이은숙 리리유의원 원장. 장진영 기자

이은숙(61) 전 국립암센터 원장(현 리리유의원 원장) 진료실 책상 위에는 ‘유방암의 진단 및 치료’라는 한장짜리 그림이 있다. 이 원장은 얼마 전 이 그림 한쪽 메모난에 5가지 행동요령(①가족회의를 소집한다 ②오늘 유방암 3기 진단을 받았다 ③당장 항암제 치료 시작한다 ④당분간 손자 돌보기가 불가능하다 ⑤2주 후 치료 시작하니 대책을 세워라)을 적어 고령의 유방암 환자에게 건넸다. 70대 이상 여성의 취약한 상황을 꿰뚫어 보고 해결책을 제시한 것이다.

유방암 환자는 말 못할 여성만의 고민이 많다. 항암제 중 폐경을 앞당기는 게 있다. 질이 마르거나 성적 욕구가 완전히 없어지기도 한다. 그런데도 남편이 달라붙으면 귀찮고 힘들다. 이 원장은 “약을 쉬어라” “산부인과 의사와 상의해라” 등을 조언한다. 유방암 환자는 감정 조절이 쉽지 않다. 엄마가 중심을 못 잡으니 가정이 평안하지 않다. 이 원장은 “가만히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환자의 고통이) 배출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가슴 속 응어리를 묵묵히 받아준다. 한국유방암환우회가 이 원장을 유방암 명의로 선정한 이유다. 이 원장은 2019년 국립암센터 원장 때 노조와 강하게 맞섰다. 하지만 진료실에서는 세심한 ‘큰 언니’다. “(외과 의사인) 남편이 ‘환자한테 하듯 나한테 하면 현모양처가 됐을 텐데’라고 하죠.”

이은숙 원장이 환자에게 건네는 ‘유방암의 진단 및 치료’라는 제목의 그림. 한쪽 메모난에 5가지 행동요령을 담았다. [사진 리리유의원]

이은숙 원장이 환자에게 건네는 ‘유방암의 진단 및 치료’라는 제목의 그림. 한쪽 메모난에 5가지 행동요령을 담았다. [사진 리리유의원]

유방암이 증가하나.
“많이 증가하기도, 찾아내기도 한다. 결혼이 늦어지고 불임이 많아 배란유도제를 많이 쓴다. 여성호르몬 노출 기간이 늘면서 유방암이 증가한다. 출산 후 6개월 정도 모유 수유를 하는 게 예방에 좋다.”
유방암이 위험한가.
“치료와 경과가 좋은 암이다. 5년 생존율(93.8%)이 높다. 갑상샘암 다음으로 예후가 좋은 암이다.”
재발률은.
“다른 암보다 높은 편이 아니다. 재발해도 40%가 생존한다. 한쪽이 나은 후 반대쪽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치료제는 좋아졌나.
“면역(관문)치료제가 유방암 치료율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있다. ‘키트루다’가 대표적이다. 유방암에 세 가지 타입이 있는데, 진행된 3중 음성 타입(유방암의 18~20%)에 쓴다. 암세포 크기가 2㎝ 이상이거나 림프절로 전이된 경우에 쓴다. 환자가 약값을 부담하고 합법적으로 비급여로 쓸 수 있다.”
항체 약물 접합체라는 획기적인 약이 나왔다는데.
“허투(HER2) 양성의 일부 환자에게 ‘엔허투’라는 약을 쓰기 시작했다. 게임체인저가 될 만한 약이다. 이 약도 환자가 약값을 부담하되 합법적으로 비급여로 쓸 수 있다.”
술이 유방암 발병에 영향이 있다는데, 기준은.
“전에는 일주일에 5잔 이하를 권고했는데, 점점 줄고 있다. 일주일에 5잔 넘게 폭음했다면 일주일간 금주하는 게 좋다.”
비만은 어떤가.
“비만 여성이 암에 잘 걸리고 재발률이 높다. 췌장암에도 영향을 미친다.”
어떤 걸 먹어야 하나.
“자연 음식 중에서 먹으면 안 되는 건 없다. 골고루 먹고 적정 체중을 유지하고 운동하는 게 중요하다.”

이 원장은 자가진단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검사에서 안 나온 암을 손으로 잡아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미국 배우 앤젤리나 졸리는 2007년 유방암으로 사망한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브라카(BRCA)1 유전자로 인한 위험성을 줄이기 위해 가슴을 절제했다.

브라카 유전자가 나오면 절제해야 하나.
“0기, 1기 같은 조기 유방암이고 브라카1 유전자가 나오면 반대쪽에 암이 생길 위험이 80~90%이다. 미리 발견한다는 보장이 없으면 의사와 충분히 상의해서 예방적으로 자르라고 권유한다. 그러나 유방암이 많이 진행된 상태에서 발견된 경우에는 진행된 쪽에 집중하는 게 좋다.”
요즘은 복원 수술을 많이 하나.
“거의 다 한다고 보면 된다. 건강보험이 적용된 이후 대부분 복원한다.”

이 원장은 “한국 의료 사정상 대형병원에서 수술 후 케어 서비스까지는 못 받는다. 우리 같은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가벼운 합병증 치료, 보형물 교체, 유방의 양성 질환 수술 등 대형병원이 커버하지 못하는 서비스를 담당한다”며 “‘환자 바로 옆 최고 전문가’를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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