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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이민정책은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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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조윤제 서강대 명예교수·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조윤제 서강대 명예교수·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이민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이기도 하다. 보다 많은 먹거리, 살기 좋은 땅을 찾아 인류가 이동, 정착해 온 것이 지금의 번성을 이루게 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이민은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기도 하다. 지난주 돌아본 유럽국가들에서는 이민문제가 큰 정치, 사회적 문제로 대두해 있었다. 이민자 집계방식은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나 서유럽의 경우 2000년 이후 이민자가 인구구성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늘어나 거의 20%에 가까워지고 있다. 불법체류자까지 합치면 그 비중은 더욱 높을 것이다. 1990년대만 해도 이 비중은 10%도 되지 않았다. 최근 독일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독일 인구의 25%가 이민자 출신들이다. 스웨덴도 20%를 넘고 있다. 영연방국가 주민들에게 개방적 이민정책을 취했던 영국에서는 오늘날 런던주민 중 백인 영국인은 과반수도 되지 않는다.

외국인 노동자 확대 불가피하나
선제적 준비로 사회갈등 줄여야
준비없는 이민 확대 경계할 필요
장래 높은 사회적 비용 치를 수도

출산율 저하와 고령화로 유럽국가들에서는 노동력 부족 현상이 일어나면서 외국 노동자들을 적극 수용하기 시작했다. 당시 이러한 경제적 수요는 인도주의와 문화의 다양성 추구라는 가치와 함께 포장되면서 이민자들에게 개방적인 정치, 사회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과 정서는 오늘날 크게 달라졌다. 이는 몇 해 전 국내에서도 출간된 더글러스 머리의 『유럽의 죽음 (The Strange Death of Europe)』이라는 책에도 잘 기술되어 있다. 프랑크푸르트에는 이민자와 난민들이 늘면서 교통질서, 운전문화가 거칠어졌고, 스웨덴에서는 이민자들이 불법 마약 거래를 주도하며 도시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고 우려한다. 이민자들이 자국 저소득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잠식해 소득분배를 악화시키고, 이들의 주거 수요로 집값과 임대료가 오르며, 사회복지제도가 혼란을 겪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민증가에 대한 불만은 인도주의 입장에서 공적인 비판이 자제되어 왔고 지금도 그런 면이 많으나, 표출되지 못한 불만은 투표의 예상치 못한 결과로 나타나기도 한다. 2016년 영국의 브렉시트, 트럼프 대통령 당선 배경에는 이민정책에 대한 불만과 불안이 짙게 깔려있었다. 최근 유럽에서는 이민에 반대하는 강경우파 정당들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다. 스웨덴 정부는 최근 국립연구소에 이민의 경제, 사회적 효과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도록 요청해 놓고 있다. 연구소 관계자들에 의하면 노동공급 증가와 성장률 기여 같은 경제적 이득은 계량화가 가능하고, 이는 또한 그동안 이민확대 정책에 중요한 논거로 사용되어 왔지만, 사회적 갈등 심화와 범죄율 증가, 사회불안 등으로 인한 장기적 잠재성장률 저하와 같은 부정적 효과 등은 계량화가 매우 힘들다는 애로점을 토로하였다.

우리나라도 외국인 이주민이 빠르게 늘고 있다. 2006년 총인구대비 1.1%에서 2022년에는 4.4%로 16년 사이에 4배가 늘어났다. 정부는 금년도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하며 외국인력 유입 규모를 전년 대비 크게 확대하고 기업별 외국인 고용 한도도 2배로 늘이겠다고 했다. 법무부는 이민청 설립을 주요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초저출산율, 빠른 고령화를 맞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외국인 인력수용은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불가피한 면이 있다. 이미 건설현장과 소위 3D업종이라는 작업장들은 외국인노동자들이 많이 채워주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체류가 길어지면 한국에 정착할 가능성이 커지고, 이들의 상대적 높은 출산율을 고려하면 이민자 비중이 빠르게 늘 수 있다. 2021년 기준 우리나라 초중고 전체 학생 수는 10년 전보다 22% 감소했지만, 다문화 학생 수는 3.6배 증가했다. 반면 이들의 고교 학업 중단율은 일반학생들보다 훨씬 높고 대학진학률은 전체평균 71%에 비해 40%로 낮다. 이 수치도 아직 부모 한쪽이 한국인인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그렇다. 사교육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대학입시에 이들의 적응력은 낮을 수밖에 없다. 이들이 사회에 진출해 온전한 직업을 구하고, 정상적 생활을 영위할 가능성은 일반 국민에 비해 낮다. 한국사회는 유럽사회보다 외국인들에 대해 더 배타적 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이민 증가로 인한 사회적 갈등과 범죄율 증가를 가져올 잠재력 역시 더 크다.

지구촌의 통합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며, 우리의 사정상 외국인 근로자 유입 확대도 불가피하다. 그러나 이것이 큰 사회적 갈등과 비용을 유발하지 않도록 선제적 준비를 해 나갈 필요가 있다. 우선 외국인 체류자 정책과 이민정책을 분리해서 정립해 나갈 필요가 있다. 불법체류자에 대한 대책, 3D업종 생산 현장의 문제 등 외국인 체류자 정책 관련 대책들을 사전적으로 정립해 놓을 필요가 있다. 여성인력, 고령층 인력의 보다 적극적 활용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만약 이러한 준비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다면 당장의 경제적 비용을 감수하더라도 이민정책에 대해 보다 신중하게 접근해 나가는 것이 미래의 사회비용을 줄이는 방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조윤제 서강대 명예교수·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