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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 민영화” vs “포스코 모델로”…HMM 재매각 장기화 조짐

중앙일보

입력

서울 여의도 HMM 본사에 설치된 스크린에서 홍보 영상이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여의도 HMM 본사에 설치된 스크린에서 홍보 영상이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민간 매각이 결렬된 HMM에 대한 정부의 새 주인 찾기 작업이 장기화 수순을 밟을 전망이다. 해양수산부와 한국해양진흥공사 등 정부 당국은 설 연휴를 앞둔 지난 8일 “급하게 새 매수자를 찾는 것보다 HMM 내실 강화에 집중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업계에선 일러도 내년 중반쯤 민영화 작업이 다시 시작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의 이 같은 방침은 매각 불확실성 요인으로 꼽힌 HMM 채권의 지분 전환 문제가 우선 해소돼야 한다는 데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는 1조6800억원 규모의 HMM 채권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 채권은 내년까지 순차적으로 HMM 주식으로 전환된다. 이 때문에 하림이 HMM의 새 대주주가 되더라도 정부가 지분 32%를 갖는 2대 주주가 되는 상황이었다. 이 부분이 하림과 정부 간 매각 협상의 핵심 쟁점 중 하나였고, 합의점을 찾지 못해 최종 결렬로 마무리됐다. 하림은 결렬 발표 뒤 “실질적인 경영권을 담보해 주지 않고 최대주주 지위만 갖도록 하는 거래는 어떤 민간 기업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이 때문에 HMM 채권→지분 전환 절차를 끝내, 핵심 협상 쟁점을 해소한 상태에서 재매각을 시도한다는 게 정부 내부의 분위기다. 해수부 정책자문위원인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해운사들이 코로나19와 후티 반군의 홍해 사태로 일시적 호황기를 맞았을 뿐 이 같은 외부 요인이 사라지면 HMM은 다시 위기를 맞을 수 있다”며 “다수의 새 인수 희망자가 나타나게끔 안정적 수익 구조를 만드는 게 앞으로의 정부 역할”이라고 짚었다.

8위 HMM, 대만은 3개사가 톱10

문제는 사실상 국영 체제에서 HMM이 선박량 확대, 친환경 선박 도입 등 단기 지출액이 큰 투자를 감행할 수 있느냐다. HMM은 세계 8위 해운사지만 점유율은 3.3%에 그친다. 에버그린 등 글로벌 톱10 선사 3곳을 보유한 대만의 총 점유율(9.9%)의 3분의 1 수준이다. 세계 5위 해운사인 독일 하파그로이드와의 동맹도 내년 종료 예정이어서, 유럽발 화물 확보에도 비상이 걸린 상태다.

HMM의 미주 노선 선박이 화물을 싣고 있다. 연합뉴스

HMM의 미주 노선 선박이 화물을 싣고 있다. 연합뉴스

이밖에 국제 협약에 따른 친환경 선박 운항 비율도 순차적으로 늘려야 한다. 해운컨설턴트인 성양기 영국변호사는 “성장하기 위한 손실을 감내할 정도로 과감한 투자 의지가 있는 민간 회사가 HMM을 맡아야 하는데, 미래 불확실성을 감안했을 때 인수 가격이 너무 높아진 상태여서 내년이 된다고 해도 새 인수자가 나타날지 의문”이라며 “결국 새 동력을 얻게 될 시간이 지체되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하림은 6조원대를 인수 가격으로 제시했었지만 정부 지분율이 상승한 뒤의 인수가는 8조원대에 이를 거라는 게 업계 관측이다.

HMM 노동조합에선 국영 상태로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기호 전국사무금융노조 HMM 지부장은 “포스코와 같은 국민 기업 형태로의 발전도 염두에 두고 공청회 등을 열 계획”이라며 “세계 상위 해운 회사들처럼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형태로 발전을 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노조는 민영화 자체를 반대하는 건 아니라는 입장이다.

한편 정부가 파격적인 매각 조건을 내 민영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법무부 해상법개정 특별위원을 지낸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개별 투자 규모에서 짐작할 수 있듯 정부가 끌고 가기엔 이미 HMM의 덩치가 너무 크다”며 “정권 교체 뒤 헐값 매각 시비 같은 정치적 공격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해운업 발전에 기여할 민간 사업자가 있다면 인수자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넘기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오래 끌수록 해운 경쟁력 확보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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