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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림 인수 물 건너간 HMM의 운명…새 주인 후보는 누구

중앙일보

입력

네덜란드 로테르담항에서 화물을 선적하는 HMM 그단스크호. 사진 HMM

네덜란드 로테르담항에서 화물을 선적하는 HMM 그단스크호. 사진 HMM

“새우(하림)는 결국 고래(HMM)를 삼키지 못했다-.”

국내 유일의 원양 컨테이너 선사 HMM의 운명이 다시 불투명해졌다. KDB산업은행·해양진흥공사(매각 측)는 7일 새벽 “일부 사항에 대한 이견으로 협상은 최종 결렬됐다”고 밝혔다.

하림그룹은 자회사 팬오션과 재무적 투자자(FI)인 사모펀드 JKL파트너스 등으로 컨소시엄을 구성해 HMM 인수를 추진해왔다. 당초 협상 마감 기한은 지난달 23일이었지만, 양측이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해 지난 6일까지 기한을 연장하고 협상을 계속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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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펀드 지분매각 5→3년 단축’ 이견 못 좁혀

핵심 쟁점은 FI로 참여한 JKL파트너스의 ‘지분 매각 기한에 예외를 적용할 것인가’였다. 이익 실현이 중요한 사모펀드 특성상 주식 보유 의무기간을 줄여, 조기에 엑시트(투자금 회수)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게 하림 측 주장이었다. 협상 과정에서 5년→3년으로 단축하는 중재안도 나왔지만, 규정에 예외를 둘 수 없다는 정부 입장이 강경했다고 한다.

협상 과정에서 하림 측은 기존 요구를 상당수 철회했다. 산은·해진공이 보유한 1조6800억원 규모의 영구채 문제가 대표적. 산은·해진공은 올해와 내년 콜옵션(조기상환청구권) 행사 시점에 맞춰 영구채를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데, 이럴 경우 산은·해진공 지분은 0%에서 32.8%까지 다시 오르고, 하림은 인수 시 확보한 57.9%에서 38.9%로 떨어진다. 하림이 받을 배당금도 2800억원 이상 줄게 된다. 이 때문에 하림은 그동안 영구채 전환을 유예해달라고 요구했었다.

협상이 결렬된 이 날 오전 하림은 입장문을 내고 “실질적인 경영권을 담보해 주지 않고 최대주주 지위만 갖도록 하는 거래는 어떤 민간 기업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정근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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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림은 HMM 인수가로 6조4000억원을 적어내며 지난해 12월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됐지만, 자금 조달 능력에 의심을 받아왔다. 현금성 자산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하림은 최대 3조원 규모의 팬오션 유상증자, 2조원 이상의 인수금융, 자산 유동화와 영구채 발행, JKL파트너스 지원 등으로 인수자금을 마련할 계획이었다. 한 재계 관계자는 “하림의 자금 여력이 충분했다면 지분매각 기한 단축 등에서 이견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HMM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해운업계는 산은·해진공 측이 당분간 HMM을 관리 운영하다가 적정한 시기에 재매각을 추진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재매각 시점이나 절차를 이야기하긴 아직 어렵다”고 밝혔다.

정근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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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관 채권단 관리…추후 재매각 추진할 듯

문제는 지난해와 달리 해운업황의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점이다. 먼저 세계 2위 선사인 머스크와 5위인 하파그로이드가 새 운항동맹(얼라이언스) ‘제미니’를 결성했다. HMM과 함께 ‘디얼라이언스’ 소속이던 하파그로이드가 빠져나가며 HMM 소속 운항 동맹은 경쟁력을 잃게 됐다.

운항동맹은 해운사들이 특정 항로의 과잉 경쟁을 막기 위해 운임·영업조건 등을 약속한 일종의 카르텔이다. 자사 선박이 다니지 않는 항로는 동맹 선사를 활용하는 식으로 화물 최적화가 가능하다. 또 불황 땐 다른 선사의 영업망을 활용하거나 운임 방어도 할 수 있어 소속 동맹이 해운사 경쟁력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이밖에도 홍해 선박 공격, 에너지 가격 상승 등도 불확실성을 가중시키는 요인이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해상법) 교수는 “해운업은 호황·불황 격차가 큰 산업이라 매각 측도 고민이 클 것”이라며 “새 주인은 HMM 소속 동맹 문제까지 해결해야 하므로 자본력에 더해 전문성까지 중요해진 상황”이라고 짚었다.

HMM 한울호에 컨테이너가 선적되고 있다. 뉴스1

HMM 한울호에 컨테이너가 선적되고 있다. 뉴스1

해운업 불확실성↑…“자금력에 전문성도 갖춰야”

누가 HMM의 새 주인이 될 것인지로 관심이 모인다. 자금 동원력이 풍부한 대기업이 나서야 한다는 게 중론이지만, 잔여 영구채 문제 등이 해결되지 않으면 이들이 참여할 가능성은 작다.

그간 후보로 거론돼온 현대차·포스코·한화·HD현대 등은 가능성을 부인하면서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HMM의 전신이 현대상선과 뿌리가 같고, 현대글로비스를 통해 물류·유통·해운사업을 하고 있다. 포스코는 물류량이 많아 해운사 인수 시 시너지를 낼 수 있고, 한화오션(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한 한화그룹이나 과거 현대상선의 최대주주였던 HD현대그룹도 HMM 인수로 조선업과의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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