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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 이상 다운 받은 AI명상 앱…"공황 발작" 부작용 논란 터졌다

중앙일보

입력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해 명상 앱이 속속 출시되면서 미국·호주 등 세계 각국에서 스마트폰을 통해 명상에 입문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에 이어 전쟁·인플레이션이 이어지면서 불안과 우울에 시달린 이들이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 명상앱을 찾고 있다고 외신들은 분석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AI 기술이 아직 인간 정신에 근접할 만큼 성숙하진 않았다며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명상이나 복식 호흡이 불면증을 줄여준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면서 명상이 대중화되고 있다. 중앙포토

명상이나 복식 호흡이 불면증을 줄여준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면서 명상이 대중화되고 있다. 중앙포토

최근 포브스·파이낸셜타임스(FT)·워싱턴포스트(WP) 등 외신들은 명상의 유행에 주목한 보도를 쏟아냈다. 매체들에 따르면 지난해 명상 앱 시장 규모는 2022년 9760만 달러(약 1300억 원) 규모로, 2030년엔 3억710만 달러(약 4100억원)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출시된 명상 앱 중 가장 인기가 높은 캄(CALM)과 헤드스페이스(Headspace)는 전 세계에게 각각 1억5000만 건, 7000만 건 이상 다운로드됐다. 미국의 VOX는 “명상 앱이 인기를 끌면서 최근 명상하는 미국인 수가 3배 이상 급증했다”고 전했다.

명상앱 보편화로 명상 저변 확대

이들 명상 앱은 초보자도 스마트폰만 있으면 대면 상담·수업·코칭 없이 명상을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사생활 유출에 대한 걱정 없이 AI와 내밀한 상담을 할 수 있고, 원하는 시간에 짧은 수련도 가능하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명상 앱은 대부분 AI 기술을 접목해 사용자의 개별 특성에 맞춰 최적화된다. 다른 사용자와 연결해 명상 경험을 공유하는 소셜 기능도 갖춰 소속감을 형성하는 한편 다른 이용자들로부터 응원과 지지를 받을 수 있다.

명상앱 '캄'의 화면. [사진 캄 캡처]

명상앱 '캄'의 화면. [사진 캄 캡처]

명상 앱의 대표 격인 캄은 ‘수면’ ‘휴식’ ‘불안 완화’ ‘깊은 집중’ 등 상황에 맞는 영상과 음악을 제공하는데, 사용자가 30초에서 30분까지 필요한 명상 콘텐트를 선택해 이용한다. 매일 다른 주제로 10분 명상하는 '데일리 캄 세션'과 잠들기용 낭독 서비스인 '수면 스토리'가 가장 인기 있는 콘텐트다.

또 다른 유명 명상 앱인 젠베이스는 암호 화폐를 통한 보상을 연동한다. 사용자가 긴 시간 동안 명상하도록 장려하고, 목표를 달성하면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이를 두고 포브스는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자의 충성도를 높여 충성고객으로 만들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팬데믹 절정기와 정신적 고통 비슷

명상앱의 유행에 대해 호주 매체 더컨버세이션은 전쟁, 경제 불황, 실직 위기, 정치 극단화 등 불안과 공포로 가득 찬 환경을 꼽았다. 매체는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대재난, 현실 정치의 분열·편협함에 환멸을 느낀 사람들이 고대 동양철학에서 유래한 명상에 눈을 돌려, 내면 성찰·연민·감사를 키우는 방식으로 해결책을 찾고 있다”고 전했다.

사람들이 겪는 정신 고통은 코로나19가 최고조에 달했던 2021년 이후 지속되는 추세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해 미국 전체 성인 중 번아웃(탈진)·불안장애·우울증 등 정신 질환을 앓는 경우는 4명 중 1명으로, 2021년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전했다. 더컨버세이션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에서 3억명 정도가 불안 장애에 시달리고 있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기업들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직원의 정신적 고통은 생산성 저하로 의미하기 때문이다. 갤럽은 '번아웃'으로 인한 직원들의 낮은 업무 참여도로 인해 세계 경제에 연간 8조8000억 달러(약 1경1700조원)의 손실이 발생한다고 추정했다. WHO는 직원들의 우울증과 불안으로 발생하는 기업 손실을 연간 1조 달러(약 1340조원)로 추산했다. 

때문에 명상 훈련, 명상앱 등을 도입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기업문화 코칭 업체인 마인드짐은 지난해 세계적으로 기업이 명상앱 등 정신 건강에 투입한 금액이 500억 달러(약 67조 원)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학교도 명상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있다. 미국 뉴욕시는 올 가을부터 관내 모든 유치원부터 고등학교에 하루 2~5분 ‘명상 훈련’ 시간을 도입할 예정이다. 로스앤젤레스 카운티에서는 지난해부터 유치원~고등학교에 가상 정신건강 서비스를 무료 제공하고 있다. 일리노이주에서는 학기 당 최대 5일까지 ‘정신 건강 휴학’을 할 수 있다.

번아웃, 우울, 불안 등 정신적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의 숫자가 코로나19 절정기였던 2021년과 비슷하다. 사진=고대구로병원

번아웃, 우울, 불안 등 정신적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의 숫자가 코로나19 절정기였던 2021년과 비슷하다. 사진=고대구로병원

명상 효과, 항우울제 처방과 비슷

최근 들어 명상은 정신 건강에 도움을 준다는 연구가 나오고 있다. 지난 2022년 말 자마(JAMA) 정신의학엔 208명에게 8주간 명상 훈련을 받게 하자 항우울 치료제인 렉사프로(lexapro)의 에스시탈로프람을 처방받은 사람과 동일한 수준의 불안 감소 효과를 보였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앞서 2021년엔 명상을 통한 심리 개선 효과가 인지 행동 치료 또는 항우울제 복용과 동일한 수준이란 보고도 나왔다. 하버드 의과대학 부교수인 사라 라자르는 “걱정‧불안이 많은 사람은 뇌의 ‘기본 모드 네트워크’ 부분이 과도하게 활성화돼 있다”면서 “명상은 이 부분을 꺼줌으로써 부정적인 생각이나 불안‧초조에서 벗어나게 만들어준다”고 WP에 설명했다.

명상을 하면 걱정과 불안을 느끼게 하는 뇌의 특정 부분의 활성화 정도를 낮춰 스트레스를 줄여준다. 게티이미지

명상을 하면 걱정과 불안을 느끼게 하는 뇌의 특정 부분의 활성화 정도를 낮춰 스트레스를 줄여준다. 게티이미지

전문가 도움 없는 AI 명상, 부작용 논란도

그러나 일각에선 전문가의 도움 없이 AI의 지시에 따라 명상하도록 유도하는 앱을 남용하다가 부작용을 겪을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캐나다 맥길대의 심리연구소는 초보자가 혼자 명상하다 공황 발작, 외상성 회상, 이인화, 방향 감각 상실, 정신병 등을 경험할 수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낸 적 있다.

FT는 아직 인간의 심리와 정신에 접근할 정도로 성숙하지 않은 AI 기술을 명상에 적용하는 건 시기상조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일부 AI 명상앱은 사용자가 털어놓은 망상을 사실로 착각하거나, 이용자의 낮은 자존감을 당연시하는 반응을 보여 논란이 됐다. 지난해 벨기에의 30대 남성은 AI 상담 챗봇으로부터 지속해서 자살을 종용받고 이용 6주 만에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했다.

전문가의 지도에 따라 명상을 하며 누적된 피로와 스트레스를 풀고 있는 모습. [사진 연세대 글로벌교육원]

전문가의 지도에 따라 명상을 하며 누적된 피로와 스트레스를 풀고 있는 모습. [사진 연세대 글로벌교육원]

전문가들은 명상 앱의 효과에 대한 명확한 연구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맥길대 심리연구소는 보고서에서 “명상앱의 효과는 독서‧산책 등 유사한 스트레스 해소 활동과 별 차이가 없고, 잠재적인 피해에 대해선 알려지지 않았다”며 “명상앱의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선 다년간의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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