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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핵폭탄이었다" 칠레 삼킨 역대급 산불…최소 99명 사망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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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칠레의 중부 지역을 휩쓴 산불로 최소 99명이 숨지고 수백명이 실종됐다. 화재가 아직 완전히 진압되지 않은 가운데, 가브리엘 보리치 대통령은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4일(현지시간) 로이터·AP통신과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지난 2일 오후 중부 발파라이소주(州)의 페뉴엘라 호수 보호구역 인근에서 처음 신고된 산불이 건조한 날씨와 강풍을 타고 삽시간에 해안으로 확산되더니 거주 지역을 초토화했다.

 4일(현지시간) 칠레 비냐델마르에서 발생한 산불로 이 지역 식물원이 90% 이상 소실됐다. AFP=연합뉴스

4일(현지시간) 칠레 비냐델마르에서 발생한 산불로 이 지역 식물원이 90% 이상 소실됐다. AFP=연합뉴스

대표적인 휴양도시, 화재로 초토화

외들은 불길이 시속 60㎞의 건조한 강풍을 타고 순식간에 민가를 덮쳤다고 전했다. 칠레의 대표적인 휴양지인 비냐델마르, 킬푸에, 비야알레마나, 리마셰 등에 피해가 집중됐다.

수천채의 가옥이 파손되고 도로는 불에 탄 자동차 잔해로 뒤덮였다. 발레리아 멜리필란 킬푸에 시장은 이 지역에서만 1400채의 가옥이 소실됐다고 CNN에 전했다. 1931년 설립된 비냐델마르의 식물원도 화염으로 90% 이상 소실됐다.

인구 33만의 도시인 비냐델마르의 엘올리바르 지역 주민인 오마르 카스트로 바스케스는 “이건 화재가 아니라, 핵폭탄이었다”면서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다”고 NYT에 말했다.

마카레나 리파몬티 비냐델마르 시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전날 밤 기준 비냐델마르에서 372명이 실종됐다고 밝혔다. 그는 “그들은 우리의 이웃이자 가족이고, 친구”라면서 “이들의 시신을 최대한 빨리 수습하겠다”고 약속했다.

4일(현지시간) 칠레 비냐델마르 킬푸에의 도로에 산불에 타버린 자동차 잔해들로 가득하다. AFP=연합뉴스

4일(현지시간) 칠레 비냐델마르 킬푸에의 도로에 산불에 타버린 자동차 잔해들로 가득하다. AFP=연합뉴스

불길은 공단 지역인 엘살토로도 번졌다. 이 지역 페인트 공장이 화염에 휩싸이면서 내부의 인화성 물질로 인한 폭발도 발생했다.

아직까지 화재가 완전히 진압되지 않은 상태로, 인명 피해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칠레 법률의료서비스(SML)에 따르면, 사망자 99명 중 32명의 신원이 확인됐다.

알바로 호르마사발 국가재난예방대응청장은 지난 일주일 동안 전국적으로 161건의 화재가 발생했고, 이중 102건은 진압했다고 전했다. 19건은 관찰 중이며, 40건의 화재는 진압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칠레 재해예방대응청은 1300명에 달하는 소방관과 군인이 화재 진압에 애쓰고 있다고 밝혔으나 현재 여름인 칠레에 35도를 넘나드는 폭염이 지속되며 산불이 더 큰 범위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4일(4일) 칠레 발파라이소 지역 빌라인디펜덴시아에서 한 부부가 산불로 소실된 집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4일(4일) 칠레 발파라이소 지역 빌라인디펜덴시아에서 한 부부가 산불로 소실된 집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보리치 대통령 "사망자 크게 늘 것"…비상사태 선포

보리치 대통령은 4일 피해 지역을 방문했다. 그는 “사망자 수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며, 5일과 6일을 화재 희생자를 위한 국가 애도의 날로 선포했다. 또 해당 지역에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며 “우리는 모두 함께 비상사태에 맞서 싸우고 있다. 우선순위는 생명을 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대국민 메시지를 통해 규모 8.8의 대지진과 쓰나미로 525명의 사상자가 났던 2010년 참사를 언급하며 “의심할 여지없이 2010년 이후 가장 큰 비극”이라고 말했다.

가브리엘 보릭 칠레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가브리엘 보릭 칠레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일부 주민들은 초기 대피 명령이 잘못돼 사상자가 늘어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비냐델마르 외곽의 민가인 빌라인데펜덴시아에 거주하는 레지나 피게로아(53)는 지난 2일 불길이 이미 집 앞에 다가왔을 때에야 휴대전화에 대피 알람이 떴다면서 “경보를 받고 거리로 뛰쳐나가자, 이미 불길이 집앞 모퉁이에 와 있었고 하늘이 새카맸다”고 NYT에 말했다.

엘올리바르의 주민 안드레스 칼데론(40)은 대피 알림을 받고 차에 올랐는데 이미 연기가 심해 헤드라이트를 켜야 했다고 전했다. 그는 “아무 것도 볼 수 없었고, 바람이 심해 도로에서 차가 거의 날아갈 뻔했다”면서 “마치 지옥에 들어가는 느낌이었지만, 계속 운전만 했다”고 했다.

현재 칠레 당국은 이번 사건이 의도적 방화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칠레 경찰은 현재까지 산불 방화 혐의로 남성 1명을 구금한 상태다. 그는 칠레 중부 탈카시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용접 작업을 하던 중 우연히 화재가 발생해 인근 초원으로 불길이 번졌다면서 혐의를 부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 남성을 기소할 방침이다.

4일(현지시간) 칠레 비냐델마르에서 한 여성이 불타버린 집 잔해 가운데 서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4일(현지시간) 칠레 비냐델마르에서 한 여성이 불타버린 집 잔해 가운데 서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NYT는 남미 지역에 엘리뇨로 인해 가뭄과 고온이 지속되면서, 다른 국가들도 산불과 고군분투 중이라고 전했다. 콜롬비아에서는 건조한 날씨로 인해 수도 보고타 주변을 포함한 인근 도시에 최근 몇 주 동안 수십 건의 화재가 발생했다. 에콰도르‧베네수엘라‧아르헨티나에서도 산불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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