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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판타지 속 판타지를 찾아서 73화. 샤먼

중앙일보

입력

한국의 무당과 서양 마녀의 공통점은

유라시아 대륙 동쪽 끝, 추운 땅 시베리아에는 북극해를 향해 흘러가는 거대한 강, 레나가 있습니다. 지구에서 가장 추운 곳, 긴 겨울이 이어지는 이곳에는 5월 말이 되어야 봄이 찾아온다고 해요. 얼음이 녹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강으로 향하여 나뭇조각으로 만든 작은 배를 강물에 띄웁니다. 그들의 삶을 책임지는 생명의 물길, 레나강의 신에게 강을 이용하는 많은 이의 안전을 부탁하기 위해서죠. 혹한의 세계, 얼음의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바람이 담긴 오랜 의식입니다.

레나 강의 야쿠츠족은 자연의 뜻에 순종하며 살았지만 샤먼은 다가가서 대화를 나누고, 변화를 살피며 사람들을 인도했다.

레나 강의 야쿠츠족은 자연의 뜻에 순종하며 살았지만 샤먼은 다가가서 대화를 나누고, 변화를 살피며 사람들을 인도했다.

오랜 옛날, 이곳에 처음 발을 디딘 사람들에게 자연은 너무도 가혹하고 무서운 존재였어요. 일 년의 반 가까이 겨울이 계속되는 이곳은 따뜻한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인류에게는 너무나도 춥고 위험한 곳이었죠. 겨울이면 기온은 영하 40도 이하로 떨어지고, 모든 것이 얼어붙어 강물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밀려오는 눈보라로 인해 때때로 능숙한 사냥꾼도 길을 잃고 죽을 수 있죠. 이처럼 추운 기후에도 적응할 수 있게 인류가 진화했어도 겨울의 위험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따뜻한 모피옷을 입고 나무로 불을 피워도 추위가 사라지지는 않았죠.

자연에 맞서면 안 된다고 여긴 사람들은 자연의 뜻에 순종하기로 합니다. 사방을 뒤덮은 안개로 길을 잃었을 때 무리하게 찾아 나서는 것은 죽음을 부르는 법. 추위로부터 몸을 지키며, 자연의 신이 마음을 열어주길 기다리는 게 제일이었죠. 하지만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변덕스럽고 위험한 존재라도 무조건 따르기보다는 다가가서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고 여긴 사람들이었죠. 자연의 변화를 살피고 그 신비를 이해하며, 다양한 지혜로서 사람들을 인도한 이들. 사람들은 그들을 샤먼(Shaman)이라고 불렀습니다.

샤먼은 자연의 신을 숭배하며 자연의 모든 존재에 영혼이 있다고 믿고 그들의 영혼과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추운 땅에서 살아남으려면 사슴이나 순록 같은 동물을 사냥해야만 하죠. 하지만 영혼을 지닌 동물을 죽이면, 자연의 분노를 가져올 수도 있었어요. 그들의 분노를 막기 위해서는 우선 사슴의 영혼과 말을 나누어야 했습니다. 재미나 장난으로 그들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살아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라고 설득할 필요가 있었죠.

그래서 사람들은 나무를 이용해 사슴의 모양을 본뜬 인형을 만들었습니다. 나무로 된 사슴의 뿔을 통해 영혼을 불러올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죠. 영혼의 그릇인 나무 인형을 통해 먼저 사슴의 영혼을 사로잡고, 자연의 모양을 빌린 인형에 영혼을 담아 대화를 나누고자 한 거예요. 그렇게 닮은 모양을 통한 영적 의식이 태어납니다. 판타지 속 마법 이야기에서 사람의 모습을 닮은 인형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죠.

사람 모습을 닮은 인형은 사람들에게 다가올 불행을 막아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누군가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의식을 치를 수 있는 샤먼은 두려운 존재로 여겨지기도 했죠. 세계 각지에서 마녀사냥이 일어난 것도 이러한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동시에, 자연과 대화를 나누며 설득할 수 있는 샤먼은 존경의 대상이기도 했어요. 그래서 부족의 현자이자 지도자로서 사람들을 인도하기도 했죠.

자연의 영혼과 교류할 수 있는 샤먼은 때때로 신의 힘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영혼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을 자기 몸에 불러들이는 것인데, 이를 신내림이라고 하죠. 신내림은 보통 춤이나 노래 같은 의식을 통해서 진행되는데, 이 과정에서 샤먼은 종종 신의 모습을 빌리기도 합니다. 신의 모습을 빌린 가면을 쓰고, 신에 어울리는 옷을 입고 의식을 하여 더욱 효과를 높이는 것이죠. 세계 각지에 있는 다양한 가면은 단지 장식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이처럼 영혼을 불러오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자연의 영혼과 대화를 나누고 신비한 힘을 발휘하는 샤먼, 그들은 놀라운 능력을 지닌 주술사의 모습으로 다양한 작품에서 등장해요. 고대나 중세 시대를 무대로 한 여러 판타지 작품뿐 아니라,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영화 ‘아바타’처럼 외계 행성을 무대로 한 SF 작품에서도 샤먼과 같은 이들을 만날 수 있죠. 자연을 흐르는 생명의 기운인 포스를 느끼며 사용하는 ‘스타워즈’ 시리즈의 제다이도 샤먼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샤먼에게 중요한 것은 힘이 아니에요. ‘샤먼’이라는 이름은 시베리아의 퉁구스어로 ‘알다’라는 단어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샤먼에게 중요한 것은 힘이 아니라 세상을, 자연을 알고 이해하는 것, 바로 지혜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죠.

세계 각지에는 다양한 샤먼이 있습니다. 한국의 박수나 무당도 샤먼이고, 서양의 마녀(witch)도 샤먼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들의 공통점은 신비한 힘이 아니라, 그 지혜입니다. 마치 ‘해리포터’의 마법사들이 우리가 모르는 마법 세계를 알고 있듯이,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세계를 이해하고 있는 것이죠. 미신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추운 시베리아의 자연에서도 굴하지 않고 살아가는 샤먼의 모습에선 지금도 배울 만한 게 있습니다.

전홍식 SF&판타지도서관장

전홍식 SF&판타지도서관장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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