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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소방관 10명 중 4명 심리 장애, 우리 사회가 지켜줘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지난달 31일 경북 문경 육가공 제조공장 화재 현장에서 순직한 문경소방서 119구조구급센터 고 김수광 소방장(27, 왼쪽)과 박수훈 소방교(35)의 모습. [뉴스1]

지난달 31일 경북 문경 육가공 제조공장 화재 현장에서 순직한 문경소방서 119구조구급센터 고 김수광 소방장(27, 왼쪽)과 박수훈 소방교(35)의 모습. [뉴스1]

고 김수광·박수훈 소방관 희생 헛되이 말아야

정신적 고통 시달리는 동료 심리 지원도 시급

지난 3일 치러진 경북 문경소방서 소속 고 김수광(27) 소방장과 박수훈(35) 소방교의 영결식에서 동료 윤인규 소방사의 조사가 참석자들을 숙연하게 했다. 윤 소방사는 “결국 구조대원들의 손에 들려 나오는 반장님들의 모습을 보며 저희 모두는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을 느끼고 또 느꼈다”고 말했다.

지난달 31일 한 공장 화재 현장에서 사람을 구하려고 불길로 뛰어들었다가 건물이 무너져 순직한 두 소방관은 그들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서 일하고 있는지를 절감케 했다. 김 소방장은 극한 훈련을 극복해야 하는 인명구조사 시험에 합격했고, 박 소방교는 태권도 5단의 특전사 출신이다. 이렇게 강인한 소방관조차 순식간에 목숨을 잃을 정도다. 최근 10년간 현장에서 숨진 소방관이 40명에 이른다.

소방관은 남들이 살기 위해 뛰쳐나오는 불길 속으로 스스로 들어간다. 지난해 12월 제주도에서 순직한 고 임성철 소방장은 80대 노부부를 구하려다 무너지는 콘크리트 더미에 희생을 당했다. 3월엔 전북 김제에서 70대 노인을 살리려고 화염에 휩싸인 주택에 진입한 고 성공일 소방교가 목숨을 잃었다.

화재 현장의 위험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들이기에 더 안타깝다. 시민을 위한 숭고한 희생에 합당한 대우를 해야 하나 반짝 관심에만 그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해에 1000명 넘는 소방관이 심각한 상처를 입어 입원해도 턱없이 부족한 간병비로 고통받는 실정이다. 이번 문경 화재 직후 윤석열 대통령은 “고인들의 희생과 헌신을 국가는 절대 잊지 않겠다”고 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눈물로 애도했다. 과거 참사 때마다 반복됐던 지원 약속이 이번만큼은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살아남은 사람의 고통 또한 극심하다. 소방청과 분당서울대병원 공공진료사업단이 지난해 소방공무원 5만28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우울 증상 등 심리 질환에 시달리는 위험군이 43.9%(2만3060명)에 이른다. 동료의 비극을 목격한 소방관의 충격을 짐작하게 한다. 이미 2014년 전국 소방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전수조사에서 심리적 장애를 가진 직원이 38%나 된다는 사실이 드러났지만, 실효성 있는 대책이 따르지 않았다.

성숙한 사회일수록 제복 입은 희생자를 잊지 않는다. 미국 뉴욕 시민들은 매년 110층 계단을 오르며 9·11 테러 때 사지로 달려간 순직 소방관을 기리고 있다. 시민을 구하기 위해 불길로 기꺼이 향하는 소방관의 희생을 완벽하게 막기는 어렵다. 그러나 남은 동료의 안전을 확보하고 부상자를 치유하려는 우리 사회의 노력이 김수광 소방장과 박수훈 소방교에 대한 보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