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한·러 거친 설전…전문가 “러, 한국의 우크라 살상무기 지원 막으려 과잉 대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북한 정권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핵 선제 사용을 법제화한 비이성적 집단”이라고 비판한 것과 관련해 한국과 러시아 외교 당국이 거친 설전을 주고받았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1일 공식 논평에서 “북한이 ‘선제적 핵 공격’을 법제화한 세계 유일 국가라 주장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은 노골적으로 편향됐다”며 “한국·일본 등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뻔뻔한 정책으로 한반도 및 주변에 긴장과 갈등이 계속 증가하는 상황에서 (윤 대통령의 발언은) 혐오스러워 보인다”고 비난했다.

‘혐오스럽다’ 등 원색적 단어는 외교적 수사의 범위를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외교가에선 “러시아 측이 상대국 국가수반의 발언을 외교부 대변인 수준에서 비판한 것 자체가 심각한 외교적 결례”라는 지적이 나왔다.

외교부는 지난 3일 러시아 외교부 대변인의 논평에 대해 “일국의 외교부 대변인의 발언으로는 수준 이하로 무례하고 무지하며 편향돼 있다”며 “북한의 수사와 무력 도발이 한반도와 역내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는 명백하고도 객관적인 현실을 도외시한 것으로서, 국제사회의 규범을 성실하게 준수하는 국가의 기준에 비춰 볼 때 혐오스러운 궤변”이라고 비판했다.

정병원 외교부 차관보는 이날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주한 러시아 대사를 외교부로 초치해 항의했다. 외교부는 정 차관보가 “러시아 측이 진실을 외면한 채 무조건 북한을 감싸면서 일국 정상의 발언을 심히 무례한 언어로 비난한 것은 한·러 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라는 점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러시아 외무부는 4일 “러시아 측은 이 지역의 긴장이 급격히 고조되는 것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며 “러시아는 역내 평화와 안정을 증진하기 위해 국제법 규범에 따라 북한과 호혜적 협력을 발전시키겠다는 의향을 한국에 표명했다”고 밝혔다.

외교가에선 러시아의 대응을 두고 북한과의 군사적 밀착을 ‘정상적인 외교’로 포장하려는 의도로 풀이했다. 또 한·러 관계의 ‘레드라인’으로 삼는 한국의 우크라이나 살상 무기 지원을 막기 위해 러시아가 과잉 대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러시아의 날 선 태도는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최근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을 언급한 이후 나왔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전술적 호흡 고르기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해 이해득실을 철저히 계산하고 긴 호흡으로 접근하는 시각도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