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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세컷칼럼

“화장장이 기피시설? 마을 발전 위한 절호의 기회”

중앙일보

입력

주정완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주민 공모로 장사시설 입지 선정한 양주시

 지난달 19일 오후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의 도락산 등산로 입구. 군부대의 기다란 담장 옆으로 난 도로를 따라 차를 달렸다. 잠시 후 산 중턱에 오르자 커다란 저수지가 보였다. 총저수량 1200t 규모로 주변 산업단지에 공업용수를 제공하는 광백 저수지다. 한겨울이라 물은 별로 없었지만 예전엔 제법 높은 곳까지 물이 찼던 흔적이 뚜렷했다.

저수지 근처에 차를 세우고 계곡을 따라 20분 정도 걸어 올라갔다. 나무가 없이 억새로 뒤덮여 비교적 평평하고 너른 땅이 나타났다.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형태로 조용하고 아늑한 느낌이 들었다. 기자를 안내한 정지석 방성1리 이장은 “이곳은 양주시가 선정한 종합 장사시설의 건립 예정지”라고 소개했다. 그는 “근처 부대에서 군인들이 사격 훈련 등을 하던 곳인데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 주변에 민가가 전혀 없고 산으로 가려져 외부에선 보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억새 사이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니 북쪽으로는 도락산, 남쪽으로는 불곡산 능선이 훤히 보였다.

경기 북부 화장장 부족 극심
예약 어렵고 사용료도 비싸

마을 발전기금 100억 놓고 경쟁
주민 72% 찬성 방성1리 최고점

“오랜 접경지 규제로 발전 막혀
장사시설 유치해 돌파구 마련”

장사시설 공모에 5개 마을 신청

 지난달 19일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방성1리의 정지석 이장이 손을 들어 장사시설 예정지를 가리키고 있다. 양주시는 지난해 말 주민 공모로 사업부지를 결정했다. 주정완 기자

지난달 19일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방성1리의 정지석 이장이 손을 들어 장사시설 예정지를 가리키고 있다. 양주시는 지난해 말 주민 공모로 사업부지를 결정했다. 주정완 기자

양주시 종합 장사시설(화장장 포함)은 2022년 7월 취임한 강수현 양주시장이 핵심 공약으로 내걸고 추진 중인 사업이다. 양주뿐 아니라 구리·남양주·의정부·동두천 등 경기 북동부 5개 시가 함께 하기로 손을 잡았다. 양주시는 지난해 12월 방성1리 산 75번지 일원을 사업부지로 확정했다. 민간 전문가와 주민 대표 등이 참여한 종합 장사시설 추진위원회에서 내린 결론이다. 주민 동의율 60% 이상인 후보지 세 곳이 경쟁을 벌인 결과 방성1리가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전체 사업부지는 83만㎡로 축구장(7100㎡) 약 117개 면적이다.

양주시는 지난해 8월부터 10월까지 주민 공모 사업으로 장사시설 후보지 신청을 받았다. 모두 다섯 곳이 유치 신청서를 냈다. 정지석 이장도 유치 경쟁에 뛰어들었다. 정 이장은 “우리 마을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발전에서 소외된 지역이었다. 접경지역 군사 보호시설로 인해 각종 규제나 제약을 워낙 심하게 받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마을 발전에 도움이 될 수만 있다면 화장장도 전혀 기피시설이나 혐오시설이 아니다. 오히려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양주시는 장사시설을 유치하는 지역에 최대 400억원의 사업비 지원을 약속했다. 물론 이 돈을 한 마을에만 몰아주는 건 아니다. 방성1리에는 최대 100억원, 반경 2㎞ 이내 주변 지역에는 최대 150억원을 지원한다. 방성1리가 속한 백석읍에도 최대 150억원을 제공한다. 장사시설을 유치한 마을 주민에겐 추가 혜택도 준다. 장사시설 내부 식당·매점·카페 등 수익시설 운영권(20년)과 지역주민 우선 고용권이다. 화장 수수료 수입금의 10%를 10년간 제공한다는 조건도 있다. 방성1리 주민자치회의 김동한 사무국장은 “앞으로 법인을 만들어 지원금 사용처 결정과 회계 관리 등 모든 면에서 투명하고 공정하게 관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방성1리에선 전체 753세대 중 540세대(72%)가 장사시설 유치에 찬성했다. 주민 찬성률이 70%가 넘는 마을은 방성1리가 유일했다. 주민들 사이에선 장사시설 유치가 마을 발전의 돌파구가 될 것이란 기대감이 작용했다. 김 국장은 “양주는 동부권과 서부권의 격차가 크다. 옥정·회천 신도시 등이 있는 동부권은 개발 사업이 활발하지만 우리 마을을 포함한 서부권은 여전히 개발 규제가 심하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일부 규제가 풀렸다고 하지만 여전히 재산권 행사 등에서 어려움이 많다”고 덧붙였다. 김형래 주민자치회 총무도 “이대로 가면 10년, 20년이 지나도 발전 없이 소외될지 모른다는 절박함이 있었다”고 소개했다.

“군인 제외 실질 찬성률 80% 넘어”

유치에 찬성한다고 서명하지 않은 주민(28%)도 대부분 적극 반대는 아니었다고 정 이장은 전했다. 주변 부대에서 근무하며 방성1리에 주민등록을 한 군인이 108세대였다. 아무리 이장이라도 민간인이 군인을 상대로 서명을 받으러 돌아다닐 순 없었다고 한다. 정 이장은 “군인 세대는 아예 접촉이 허용되지 않았다. 군인을 제외한 실질적인 주민 찬성률은 80%가 넘는다”고 말했다.

10년 넘게 지지부진하다 극적 반전 

경기도는 전국 17개 시·도 중 인구(1360만 명)가 가장 많으면서 화장장 등 장사시설은 가장 부족한 지역이다. 경기도에서 화장으로 장례를 치르려면 다른 지역보다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의미다. 보건복지부의 장사업무 통계에 따르면 2022년 기준으로 경기도는 화장장 공급이 수요보다 25%나 부족했다. 서울(15%)·부산(11%)·대구(5%)도 화장장이 부족하긴 했지만 경기도만큼 심하진 않았다.

특히 경기 북부는 고질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 전국에서 62개 화장시설이 운영 중이다. 이 중 경기 남부에는 네 곳(수원·성남·용인·화성)이 있다. 하지만 경기 북부에는 고양시의 서울시립승화원(옛 벽제화장장) 한 곳뿐이다. 엄밀히 말하면 경기도가 아닌 서울시가 운영하는 시설이다. 서울·고양·파주 주민이 아니면 예약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린다. 요금도 서울·고양·파주는 12만원이지만 그 외 지역은 100만원으로 훨씬 비싸다.

양주시도 장사시설 입지 선정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2013년에는 주민 8187명이 서명한 경기 북동부 공동 장사시설 유치 청원서를 양주시의회에 냈다. 이들은 “혐오시설이란 이유로 반대가 예상되지만 현실을 고려하면 화장장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시의회는 이 청원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하지만 다른 주민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히면서 성과를 내지 못했다. 2016년에는 민간 업체가 양주시 천보산 일원에 공동 장사시설을 건립하는 사업을 제안했지만 인근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10년 넘게 지지부진하던 양주시의 장사시설 건립 사업은 결국 거액의 지원금을 내건 주민 공모 방식으로 가장 중요한 고비를 넘었다. 난제 중의 난제로 꼽히는 입지 선정을 마을 간 유치 경쟁으로 해결한 사례다. 양주시는 앞으로 타당성 조사 용역과 지방재정 투자심사 등 사전 행정절차를 거쳐 2028년 본격적인 공사를 시작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행정절차와 공사 진행에 큰 차질이 없으면 2029년이나 2030년에 장사시설을 개장할 전망이다.

강 시장은 “단순한 장사시설을 넘어 양주시의 랜드마크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냈다. 정 이장은 “사업 진행 과정에서 장사시설 주변에 숲길 탐방로와 야영장·수변공원·산림욕장 등 다양한 관광·레저시설을 함께 조성하도록 건의할 생각”이라며 “기피시설이란 편견을 깨고 훌륭한 관광·편의시설로 활용하도록 힘을 모으겠다”고 말했다.

글=주정완 논설위원 그림=이유정 인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