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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할 수 없는 아픔 느낀다"…순직 소방관 동료 배웅속 영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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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화재 출동 벨 소리에 한치의 망설임 없이 현장으로 뛰어갔던 두 반장님들. 아직도 저와 동료들은 두 분에게 일어난 일을 믿을 수 없습니다.”

3일 오전 경북 안동시 경북도청 동락관. 이곳에 고(故) 김수광(27) 소방장, 고 박수훈(35) 소방교의 영결식장이 마련됐다. 앞서 두 소방관은 지난달 31일 오후 7시47분쯤 경북 문경시 신기동 신기 제2일반산업단지 한 육가공업체 공장 화재 현장에서 인명 수색을 하다 건물이 무너지면서 순직했다.

3일 오전 경북 안동시 경북도청 동락관에서 고(故) 김수광 소방장과 고 박수훈 소방교의 영결식이 치러졌다. 김정석 기자

3일 오전 경북 안동시 경북도청 동락관에서 고(故) 김수광 소방장과 고 박수훈 소방교의 영결식이 치러졌다. 김정석 기자

동료들 거수경례하며 영웅 맞이해

이날 오전 9시50분쯤 영결식장 앞에 운구 행렬이 도착하자 정복을 입은 동료 소방관들이 도열한 채 거수경례하며 두 ‘영웅’을 맞았다. 위패와 영정을 앞세운 운구 행렬에는 관을 짊어진 동료 소방관들과 고인의 유족들이 뒤따랐다. 유가족은 장례식장에서 영결식장까지 향하는 내내 오열했다.

3일 오전 경북 안동시 경북도청 동락관에서 고(故) 김수광 소방장과 고 박수훈 소방교의 영결식이 치러졌다. 운구행렬이 영결식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김정석 기자

3일 오전 경북 안동시 경북도청 동락관에서 고(故) 김수광 소방장과 고 박수훈 소방교의 영결식이 치러졌다. 운구행렬이 영결식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김정석 기자

동료 소방관과 의용소방대, 유가족, 기관·단체장 등 1000여 명이 모인 영결식장에 태극기로 감싼 고인의 관이 들어서자 식장의 분위기는 더욱 침통하게 가라앉았다. 운구행렬과 함께 도착한 고인의 평소 근무복과 모자가 영정 앞에 놓이자 객석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높아졌다.

영결식은 개식사, 고인에 대한 묵념과 약력 보고, 1계급 특진·옥조근정훈장 추서, 윤석열 대통령 조전 낭독, 영결사, 조사, 고인께 올리는 글, 헌화와 분향, 조총 발사, 폐식사 순으로 진행됐다.

화재·구급 현장서 헌신했던 고인들

고인의 약력 보고로 영결식을 시작한 배종혁 문경소방서장은 “살신성인의 자세로 하늘의 빛나는 별이 돼 우리 곁을 떠난 고인의 명복을 빈다. 두 분의 숭고한 소방 정신을 이어가는 것이 남겨진 우리의 몫”이라고 말했다. 김 소방장은 5년여의 재직기간 동안 500여 차례, 박 소방교는 2년간 400여 차례 화재·구급 현장에서 인명 구조에 헌신했다고 배 서장은 설명했다.

3일 오전 경북 안동시 경북도청 동락관에서 고(故) 김수광 소방장과 고 박수훈 소방교의 영결식이 치러졌다. 운구행렬이 영결식장으로 들어서자 동료 소방관들이 거수경례하고 있다. 김정석 기자

3일 오전 경북 안동시 경북도청 동락관에서 고(故) 김수광 소방장과 고 박수훈 소방교의 영결식이 치러졌다. 운구행렬이 영결식장으로 들어서자 동료 소방관들이 거수경례하고 있다. 김정석 기자

경상북도청장(葬)으로 엄수된 이번 장례의 위원장을 맡은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영결사에서 “오늘 우리는 경상북도의 두 청춘 떠나보낸다”는 첫 마디를 꺼낸 뒤 한참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지사는 “두 대원은 문경 공장 화재 현장에서 혹시나 남아 있을 마지막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화마 속으로 뛰어들었다. 두려움이 왜 없었겠느냐. 소방관이기에 주저하지 않았던 것”이라며 “따스한 바람으로, 눈비로, 꽃으로 꼭 한 번 찾아와 모두의 슬픔을 달래주길 바란다. 두 영웅의 영면을 기원한다”고 했다.

고인들과 함께 문경소방서 119구조구급센터에서 근무했던 윤인규 소방사는 조사에서 “뜨거운 화마가 삼키고 간 현장에서 결국 구조대원들의 손에 들려 나오는 반장님들의 모습을 보며 저희 모두는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을 느끼고 또 느꼈다”며 “같이 먹고 자며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했는데, 내일이면 반갑게 웃으며 인사하며 만날 것 같은데, 아직 함께할 일들이 너무도 많은데 하늘은 뭐가 그리 급해서 두 분을 빨리 데려가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아파했다.

3일 오전 경북 안동시 경북도청 동락관에서 고(故) 김수광 소방장과 고 박수훈 소방교의 영결식이 치러졌다. 고인들과 함께 근무했던 경북 문경소방서 119구조구급센터 소속 윤인규 소방사가 거수경례하고 있다. 김정석 기자

3일 오전 경북 안동시 경북도청 동락관에서 고(故) 김수광 소방장과 고 박수훈 소방교의 영결식이 치러졌다. 고인들과 함께 근무했던 경북 문경소방서 119구조구급센터 소속 윤인규 소방사가 거수경례하고 있다. 김정석 기자

그러면서 “반장님들이 그러했듯이 내일부터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도움이 필요한 모든 사람에게 달려가 최선을 다해 그들의 생명을 지켜낼 것”이라며 “남겨진 가족은 저희에게 맡기시고 떠나간 그곳에서 편안하게 영면하시길 바란다”고 인사를 전했다.

동료들 “표현할 수 없는 아픔 느껴”

김 소방장의 20년 지기인 전남 광양소방서 소속 김동현 소방관은 “사랑하는 내 20년지기 친구 수광아, 함께 소방관이라는 꿈을 꾸며 어둡고 좁은 독서실에서 너와 붙어 지냈던 시간이 생각이 나는구나”라며 “너의 가족과 가족 같은 우리 친구들이 항상 널 사랑하고 기억할게. 자랑스럽고 고맙다”고 고인을 기렸다.

박 소방교의 친한 동생인 송현수씨는 “10여년 전 먼저 결혼하는 사람에게 100만원 축의금을 하자며 장난처럼 약속했던 말들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얼마 남지 않은 저의 결혼식에 이 약속을 지키기 싫어 빨리 간 것이냐”며 “함께 술마시며 밤을 샌 날이 많았는데 앞으로 그렇게 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슬퍼했다.

지난달 31일 경북 문경 육가공 제조공장 화재 현장에서 순직한 문경소방서 119구조구급센터 고(故) 김수광 소방장(27, 왼쪽)과 박수훈 소방교(35)의 모습.   사진 경북소방본부

지난달 31일 경북 문경 육가공 제조공장 화재 현장에서 순직한 문경소방서 119구조구급센터 고(故) 김수광 소방장(27, 왼쪽)과 박수훈 소방교(35)의 모습. 사진 경북소방본부

윤석열 대통령은 이관섭 비서실장이 대독한 조전에서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두 소방관을 화마 속에서 잃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며 “공동체와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긴박하고 위험한 화재 현장에 뛰어든 고인들의 희생과 헌신을 국가는 절대 잊지 않겠다”고 밝혔다.

영결식 후 두 소방관은 문경 지역 화장장인 예송원에서 화장을 거친 뒤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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