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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율 높으면 진보에 유리? 2022 대선 사전투표선 달랐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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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6호 05면

이준웅의 총선 레이더 ⑤ 투표율과 득표 상관관계

투표율이 갑자기 높아지면 진보 쪽 후보가 당선될 확률이 높아진다고 한다. 계층투표 행위가 고착된 서양에서 만든 투표이론에 따르면 그렇다. 안정적 생활양식을 갖춘 중산층과 여유로운 노년 유권자가 평소 투표에 참여할 확률이 높은 가운데, 갑자기 바쁘게 살던 노동계층이나 투표할 시간마저 아까운 듯 놀던 젊은이들이 투표장에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면 진보 정당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우리 공화국 총선에서 투표율은 2008년까지 경향적으로 감소하다가 이후 높아지는 특성을 보인다. 이 나라가 어쩐지 선진국이 되어 계층분화가 이루어졌고 또한 시민들도 이익을 따져 투표하는 유권자가 됐다면, 지난 15년간 치른 4차례 총선에서 대체로 진보 쪽이 유리했어야만 한다. 우리는 이게 사실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가까운 2022년 대선을 보자. 이는 2000년대 이래 기록적으로 투표율이 높았던 2017년 ‘탄핵 대선’과 같은 수준의 투표율을 기록했던 선거다. 전국 250개 시군구 투표율 자료를 갖고 분석해 보면 과연 투표율이 높은 지역에서 이재명 후보의 득표율도 높았다는 양(+)의 상관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얼핏 숫자만 보고 해석하자면 투표율이 높아서 이재명 후보 쪽이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아쉽게 패한 선거였다고 말할 수도 있을 법한 결과다.

그러나 상관관계의 양상을 보면 다른 사정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림 1〉은 전국 250개 시군구를 대상으로 사전투표율에 따른 윤석열 후보의 득표율을 도시한 것이다. 우하(右下) 영역에 쏠린 주로 호남 지역의 시군구들이 음(-)의 상관관계를 강제하지 않았다면, 나머지 시군구에서는 사전투표율이 높을수록 윤석열 후보의 득표율이 오히려 높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수도권 지역의 77개 시군구만 따로 떼어 분석하면 보다 뚜렷한 패턴이 나온다. 2022년 수도권에서 투표율이 높을수록 이재명이 아니라 윤석열이 표를 많이 얻었다.

그렇다면 누가 왜 윤석열에게 표를 주었을까. 일단 사전투표자들을 생각해 보자. 미리 투표를 결심하고 일정을 검토해서 시간을 내어 사전투표장으로 향했던 이들 말이다. 이들을 ‘바라는 자들’이라고 해 두자. 이들은 선거결과가 자신의 이익과 어떻게든 연결된다는 생각에 따라 시간과 정성을 투자하는 시민들이기에 그렇다.

난타전에 가까웠던 2022년 대통령 선거 캠페인을 보다가 투표날을 기다려 집을 나선 유권자는 왜 또 그랬을지 생각해 보자. 이들의 모든 의도와 동기를 파악할 수 있을 리 없지만, 최근 읽은 투표이론이 그럴듯해 소개하고자 한다. 이 이론은 거창한 시민적 의무감이나 정치적 윤리가 아니라 사소해 보이지만 분명히 작용하는 이웃 간의 분위기에 주목한다. 대통령 선거 당일에 주민센터 앞길이나 아파트 광장에서 시민들 간에 조심스럽게 교환하는 시선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투표란 낮은 비용으로 자신이 공적인 일에 소홀하지 않다는 사실을 이웃과 지인들에게 신호할 기회가 된다. 이들을 ‘보이는 자들’이라 부르자. 선거일을 기다려서 해야 할 일을 하는 모습을 서로 보여주고 확인하는 자들이기에 이렇게 이름을 붙였다.

지난 대선에서 20대와 50대 남자 중에 ‘바라는 자들’이 투표장에 등장하면서 윤석열 후보의 수도권 득표율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그림 2〉의 파란색이 정(+)의 상관관계를 의미하고 붉은빛은 부(-)의 상관관계를 나타낸다. 반면 ‘보이는 자들’의 행태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20대와 40대 남자 유권자 중 ‘보이는 자들’이 나온 수도권 시군구 지역에서 윤석열의 득표율은 오히려 낮았다. 이들의 대두는 이재명 후보 지지율과 양(+)의 상관관계를 보였다. 다만 선거일 투표장 근처에 60대 이상 남녀 ‘보이는 자들’이 눈에 띄는 경우에는 윤석열 득표율이 높았다.

결국 선거 캠페인이란 ‘바라는 자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 아니 무엇을 주겠다고 약속할 수 있을지 경쟁하는 일이다. 동시에 선거는 ‘보이는 자들’이 투표장에 얼굴을 비치는 행위가 자랑스럽거나 아니면 최소한 주변에 부끄럽지 않도록 핑계를 제공하는 공적인 행사이기도 하다. 역대급 분열에 파열음이 터지고, 막말과 폭로전이 난무하는 이번 총선에서 누가 무엇을 바라서 투표장에 나올 결심을 실천할 수 있을지 생각하면 할수록 걱정이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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