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웅의 총선 레이더 ④ 여론조사와 신뢰도
최초의 선거 여론조사는 장기집권 끝에 분열하던 미국의 민주공화당에서 4명의 대통령 후보가 난립했던 1824년 미국 대선 중에 나왔다. 비록 주먹구구식으로 ‘밀짚을 날려 풍향을 알아보자는 방식’으로 조사(straw poll)했지만, 적어도 결과는 앤드루 잭슨 후보가 대중적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짚었다. 잭슨 후보는 일반투표에서 1위를 했지만, 선거인단 과반을 확보하지 못했으며 따라서 당권파 후보들 간 밀약이 이루어진 하원투표를 거쳐 존 애덤스에게 제6대 대통령 자리를 내주어야만 했다. 이 사태 이후로 미국 정당은 우리가 알고 있는 민주당과 공화당으로 갈라섰다.
최초의 선거 여론조사를 둘러싼 당대 논쟁을 복원하면 놀라울 정도로 익숙한 모습이 등장한다. 당파적 집단들이 여론몰이하기 위해 ‘밀짚조사’를 기획하고, 편향적으로 결과를 보도하는 양태가 그렇다. 서로 변화하는 민심을 대변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같은 주장을 펴는 상대방의 속셈과 방법을 비난한다. 민심을 확인하기 위해서 하는 조사하겠다는 게 아니라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민심을 만들어내 보자는 의도가 노골적이다.
우리나라에서 근대적 여론 개념은 독립신문 1899년 1월 10일자에 실린 ‘언권자유’란 제목의 사설에서도 확연하다. “언론을 창개하여 여론을 채용하는 나라는 성하고 입을 틀어막아 시비를 못 하게 하는 나라는 위태하다”는 경고가 아직도 유효하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이 땅에서 이루어진 최초의 정치여론조사는 해방정국에서 도심의 집회참석자나 보행자를 대상으로 한 가두여론조사, 즉 ‘밀짚조사’였다. 1946년 7월 23일자 동아일보는 한국여론협회가 17일 종로와 남대문을 통행하는 6671명에게 초대 대통령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이승만 29%, 김구 11%, 김규식과 여운형 각 10%라는 결과를 얻었다고 보도했다. 모르겠다는 응답이 2476명에 달했다는 기록도 함께 보인다. 조사를 수행한 한국여론협회는 1946년 대중계몽운동을 목적으로 설립한 우익적인 단체로서, 이후 단독정부수립 논쟁을 두고 대립하기 전까지 동아일보와 협력하는 사이였다. 좌우대립이 극한으로 치닫던 해방정국에서 여론조사는 이념투쟁의 도구로 작동했다. 1947년 7월 9일자 동아일보의 ‘부정확한 가두여론’이란 기사는 조선신문기자회라는 좌익단체가 수행한 여론조사에 관한 대한독립청년단과 서북청년회의 비판을 인용해서 보도했다. 논란의 요체는 두 우익단체에 속한 500명 이상의 응답자가 조사에 참여해서 남로당의 활동에 대해서 반대 의사를 밝혔는데 실제 조사 결과를 보니 그렇게 응답했다는 자가 174명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조사과정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결과가 조작됐다고 의심을 제기하는 기사였다.
해방정국의 사람들이 선진적인 여론조사 내용과 기법에 무지했다고 볼 수 없다. 1947년 5월 8일자 동아일보는 갤럽 여론조사를 인용하여 소련이 과연 민주정인지에 대한 7개국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해서 차분하게 보도했다. 또한 트루먼 대 듀이 간 혈전으로 치러진 1948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예측하는 조사결과를 연속해서 인용함으로써, 토머스 듀이의 당선이 유력하다는 역대급 예측실패에 동참했다. 또한 당시 미군정은 공보국 여론조사과를 설치하여 신탁통치 선호국가나 토지개혁 방식 등에 대한 여론조사를 체계적으로 실시해서 공보에 활용했는데, 우리 언론은 미군정이 실시한 여론조사를 인용해서 보도하기도 했다.
100년 전 언급된 여론에 대한 담론과 70년 전 정치여론조사 결과를 보고 있는데, 왜 이리 친숙한지 알 수 없다. 과거에 비해 여론조사는 분명 더 많아지고 정교해지고 있다는 데 정말 그런지 실감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혹시 여론조사 결과에 대한 불신은 오히려 커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이런 의심에 합리적 근거가 있다. 지난 2021년 대통령 선거여론조사 자료를 분석한 백영민 교수의 평가에 따르면 우리나라 여론조사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고 있다. 2016년 대선과 비교해서 2021년 대선에서 응답률이 낮은 자동응답기(ARS)를 사용한 조사는 횟수도 증가하고 응답자 규모도 증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앙일간지 정치면의 여론조사 보도 기사를 보면, 조사방법론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부실하다. 총체적 반성이 필요한 국면이라고 본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