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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샹차이(香菜), 서역 오랑캐 채소의 탈바꿈

중앙일보

입력

한국의 깻잎처럼 중국인들이 즐겨 먹는 채소가 우리말로는 고수라고 부르는 샹차이(香菜)다.

한국의 깻잎처럼 중국인들이 즐겨 먹는 채소가 우리말로는 고수라고 부르는 샹차이(香菜)다.

한국의 깻잎처럼 중국인들이 즐겨 먹는 채소가 우리말로는 고수라고 부르는 샹차이다. 향기가 강하다는 점에서 깻잎과 비교하지만 중국에서 샹차이는 깻잎 이상이다. 한국 음식에 들어가는 고추처럼 국수를 비롯해 갖가지 음식에 골고루 들어간다. 그만큼 중국에서 폭넓게 사랑받는다.

반면 한국인한테는 호불호가 극명하게 엇갈린다. 좋아하는 사람도 많지만 샹차이 들어간 중국 음식은 아예 먹지 못한다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래서 중국 여행할 때 “샹차이 빼주세요(不要香菜)”라는 말을 배우기도 한다.

이런 샹차이를 중국인들은 왜 그토록 좋아하는 것일까? 샹차이는 어떤 채소이고 중국에서는 언제부터 먹었을까?

다른 나라 음식문화를 놓고 뜬금없이 별걸 다 궁금해한다 싶지만 샹차이가 중국인의 식탁에 어떻게 오르게 됐는지를 알면 재미있는 역사와 함께 중국을 이해하는 데 나름 도움도 된다.

먼저 샹차이는 중국 토종 채소는 아니다. 외국에서 전해졌는데 흔히 기원전 1~2세기 한나라 무제 때 서역에 사신으로 갔던 장건이10년 만에 귀국할 때 종자를 가져와 퍼트렸다고 한다. 물론 확실치는 않다. 문헌에 실린 기록으로 보면 3세기 무렵인 한나라 말에 전해졌다고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어쨌든 전래시기가 최소 1,700년 이상이니 재배역사는 꽤 오래됐다. 참고로 샹차이 관련 기록이 실린 3세기 문헌에는 향기로운 채소라는 뜻의 샹차이(香菜) 대신 오랑캐 호(胡)자를 써서 후차이(胡菜)라고 나온다.

그런데 서역 오랑캐 채소라는 뜻의 후차이가 지금은 왜 향기로운 채소, 맛있는 채소라는 샹차이로 이름이 바뀌었을까?

사연이 있다. 4세기 남북조 시대, 후조(後趙)를 건국한 황제 석륵은 흉노 출신이다. 그 때문에 자신의 조상을 가리키는 서역 오랑캐라는 뜻의 호(胡)라는 한자를 무척 싫어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글자가 들어가는 단어를 일절 쓰지 못하게 했기에 서역과 관련된 수많은 낱말이 이름을 바꿔야 했고후차이도 이때부터 샹차이가 됐다는 것이다.

후조 황제 석륵이 실제 자신의 조상을 부끄럽게 여겼기 때문인지 혹은 일부 한족의 비뚤어진 우월감 아니면 열등의식으로 만들어진 스토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송나라 때의 사전인 『광운(廣韻)』을 비롯한 중국 역사 문헌에는 그렇게 나온다.

하지만 석륵이 설령 흉노의 후손임을 부정하고 싶었다고 해도 입맛만큼은 어찌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서역 오랑캐 호(胡)자 대신 향기롭다, 맛있다는 뜻의 향(香)자를 쓴 것을 보면 샹차이를 꽤 좋아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 사람 중에는 싫어하는 사람도 많지만 샹차이는 사실 중앙아시아와 중동 등의 고대 서역과 고대 서양에서는 향기로운 채소라는 이름에 걸맞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채소였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향신료이자 약초로 꼽을 정도다.

원산지는 지중해, 그중에서도 고대 그리스 문명이 발달했던 에게해연안 지역으로 추정한다. 영어 이름인코린더(coriander)에서도 확인할 수 있으니 어원이 고대 그리스어 코리스에서 비롯됐다.

코리스는 흔히 빈대(bed bug)로 번역해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지만 실은 냄새나는 벌레라는 뜻으로 샹차이, 즉 고수 풀의 향기가 이 벌레 냄새와 비슷했던 모양이다.

독특한 향기 때문에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는 이미 향신료로 널리 쓰였고 뿐만 아니라 감기몸살로 앓을 때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약으로도 사용했다. 중동 지역의 설화를 모은 아라비안나이트에서도샹차이는 춘약(春藥), 그러니까 일종의 성적 자극제로 그려져 있다.

이렇듯 고대 서양에서 약초로, 향신료로 널리 쓰였던 샹차이였지만 실크로드를 따라 중원에 전해졌을 때 처음부터 환영받지는 못했다고 한다. 3세기 무렵 들어와 13세기 원나라 때 중국 전역에 퍼졌으니 약 1,000년의 세월이 걸렸던 셈이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는데 독특한 향기와 맛으로 인해 남북조 시대 서역과 북방민족의 영향이 컸던 북조에서는 인기가 있었지만 한족이 중심인 남조에서는 특유의 냄새를 몹시 싫어했다.

특히 이 시대에 전해진 불교와 전통 도교에서는 수행자를 중심으로 샹차이 식용을 막았을 정도다. 샹차이를 먹으면 마음이 흩어져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지옥에서 헤어나지 못한다고도 했다.

불교에서 금하는 오신채 중의 하나로 보았던 것인데 뒤집어 보면 몸과 마음, 입맛을 유혹할 만큼 자극성 강한 향신성 채소로 속세에 사는 중생에게는 그 맛과 향에 익숙해지면 더없이 맛있는 향신료가 된다. 그래서인지 원나라 학자 왕세정이 쓴 『농서』에는 잎과 씨를 모두 먹을 수 있는데 생으로도 먹고 익혀서도 먹으니 세상에 이롭다고 했다.

중국 음식에서 빼놓을 수 없는 향신 채소 샹차이에는 이렇듯 역사적으로 중국이 두려워하고 지우려 했던 고대 흉노를 비롯한 서역의 흔적이 배어 있다.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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