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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소방과 결혼"...끝까지 화마와 싸우다 스러진 두 영웅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달 31일 오후 경북 문경시 한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순직한 두 소방관이 평소 남다른 사명감으로 신망이 높았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주변의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화재를 진압하다 순직한 두 소방관은 경북 문경소방서 119구조구급센터 소속 김수광(27) 소방교와 박수훈(35) 소방사다. 이들은 화재가 발생한 건물에 고립된 공장 근로자가 있을 수 있다는 얘기를 다른 근로자로부터 전해 듣고 내부 확인이 필요하다고 판단, 4인 1조로 수색에 나섰다가 변을 당했다. 이 모습은 공장 내부 폐쇄회로TV(CCTV)에도 고스란히 찍혔다.

1일 오전 경북 문경시 신기동의 한 육가공업체 공장 화재 현장에서 소방대원들이 구조활동 도중 고립됐다가 숨진 구조대원을 발견하자 고개를 숙이고 있다.   전날 오후 7시47분쯤 이 공장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 나 현장에 투입된 구조대원 2명이 순직했다. 뉴스1

1일 오전 경북 문경시 신기동의 한 육가공업체 공장 화재 현장에서 소방대원들이 구조활동 도중 고립됐다가 숨진 구조대원을 발견하자 고개를 숙이고 있다. 전날 오후 7시47분쯤 이 공장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 나 현장에 투입된 구조대원 2명이 순직했다. 뉴스1

김수광 소방교, 지난해 구조대 자원

수색 작업을 하던 중 불이 급격하게 번지면서 두 소방관은 건물에 고립됐고 이어 건물이 무너지면서 변을 당했다. 고립된 소방대원 2명 중 1명은 1일 0시21분쯤 건물 3층에서 숨진 채 발견돼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 다른 소방대원 시신은 오전 3시54분쯤 같은 층에서 발견됐다.

1일 오전 경북 문경시 신기동 신기 제2일반산업단지 한 육가공업체 공장 화재 현장에서 고립된 소방대원에 대한 수색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김정석 기자

1일 오전 경북 문경시 신기동 신기 제2일반산업단지 한 육가공업체 공장 화재 현장에서 고립된 소방대원에 대한 수색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김정석 기자

김 소방교는 2019년 공개경쟁채용으로 임용됐다. 재난 현장에서 위기에 처한 국민을 구하겠다는 투철한 사명감을 갖고 화재대응 능력을 높이는 등 꾸준히 역량을 키워왔다고 한다. 지난해에는 소방공무원 사이에서도 취득하기가 어렵기로 소문난 인명구조사 시험에 합격해 구조대에 자원했다.

박수훈 소방사, 특전사→소방관 전직

박 소방사는 특전사에서 근무하던 중 ‘사람을 구하는 일이 지금보다 큰 보람을 느낄 수 있겠다’는 마음으로 2022년 구조분야 경력경쟁채용에 지원해 임용됐다. 미혼인 박 소방사는 평소에 ‘나는 소방과 결혼했다’고 이야기할 만큼 조직을 사랑했다고 한다.

또 두 사람 모두 지난해 7월 경북 북부 지역을 강타한 집중호우 때 실종자를 찾기 위해 68일 동안 수색 활동에 참여했다. 이들 노력으로 일부 실종자를 찾는 데 성공했다.

하룻밤 새 두 대원을 잃은 배종혁 문경소방서장은 화재 현장 브리핑에서 이들의 사망 소식을 전하며 울먹였다. 배 서장은 “희생한 대원들은 인명 수색과 화재 진압에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1일 오전 경북 문경시 신기동 신기 제2일반산업단지 한 육가공업체 공장 화재 현장. 김정석 기자

1일 오전 경북 문경시 신기동 신기 제2일반산업단지 한 육가공업체 공장 화재 현장. 김정석 기자

소방당국은 합동감식을 통해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하는 한편 발견된 소방대원 유전자(DNA) 검사를 진행하고 정해진 절차에 따라 장례도 치를 계획이다.

순직 소방공무원 예우 갖춰 장례 방침

경북소방본부는 ‘경상북도 순직 소방공무원 등 장례 지원에 관한 조례’에 따른 장례와 국립현충원 안장, 1계급 특진, 옥조근정훈장 추서 등을 추진할 방침이다.

경북도 역시 순직 소방관 희생을 기리기 위해 장례를 경상북도청장(葬)으로 치르기로 했다. 영결식은 오는 3일 거행할 예정이며 장소는 유가족과 협의 후 결정하기로 했다. 이와 별개로 분향소는 1일부터 5일까지 경북도청 동락관과 문경·구미·상주소방서에서 닷새간 운영할 계획이다.

이날 오후 문경시 산양면에 차려진 빈소에도 추모객 발길이 이어졌다. 빈소에 온 유족들은 충격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부축받으며 들어가기도 했고 고인의 이름을 부르며 부둥켜안기도 했다. 동료 소방관도 침통한 표정을 지으며 “너무 안타깝다”고 입을 모았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등 정치권 인사들도 조문을 이어갔고 윤석열 대통령 이름이 새겨진 된 조화도 눈에 띄었다.

1일 경북 문경시의 한 장례식장에서 순직한 소방관들의 빈소가 차려지고 있다. 연합뉴스

1일 경북 문경시의 한 장례식장에서 순직한 소방관들의 빈소가 차려지고 있다. 연합뉴스

화재 원인 등 수사도 본격화했다. 경북경찰청은 지방청 강력범죄수사대 2개팀, 과학수사대, 문경경찰서 형사팀 등 총 30명 규모로 수사전담팀을 꾸렸다. 경북경찰청 형사과장을 팀장으로 두고 현장 CCTV 분석과 관계자 조사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30명 규모 전담수사팀 구성…수사 본격화

경북소방본부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관계기관과 함께 진행할 합동감식은 건물 안전진단을 마치는 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불이 꺼진 건물 내외부에서 추가 붕괴 가능성이 커 당장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어서다. 안전진단을 마치고 위험 요소까지 모두 제거한 뒤 관계기관이 조율을 거쳐 합동감식을 진행할 예정이다.

1일 오전 4시30분쯤 경북 문경시 신기동 신기 제2일반산업단지 한 육가공업체 공장 화재 현장에서 배종혁 경북 문경소방서장이 현장 브리핑을 열고 설명을 하고 있다. 김정석 기자

1일 오전 4시30분쯤 경북 문경시 신기동 신기 제2일반산업단지 한 육가공업체 공장 화재 현장에서 배종혁 경북 문경소방서장이 현장 브리핑을 열고 설명을 하고 있다. 김정석 기자

이와 관련, 경북소방본부는 이날 현장에서 진행한 브리핑에서 “불이 난 공장은 4층 규모이며, 3층의 튀김기에서 최초 발화가 시작된 것으로 추정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김수광 소방교, 박수훈 소방사 두 소방 영웅의 희생 앞에 옷깃을 여미고 삼가 명복을 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김수경 대통령실 대변인 서면 브리핑을 통해 “비보를 듣고 가슴이 아파 잠을 이룰 수 없었다”며 “유족 여러분께도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공동체를 위한 희생은 고귀하다”며 “이 때문에 두 소방 영웅의 안타까운 희생을 우리 모두 잊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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