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김성탁의 시선

‘약속 대련’이든 아니든 흥행 성공, 민주당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김성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성탁 기획취재2국장

김성탁 기획취재2국장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그제 용산 대통령실에서 오찬을 함께 하며 2시간 30분가량 만났다. 충남 서천특화시장 화재 현장을 함께 방문한 지 6일 만이었는데, 이 자리에 이관섭 대통령 비서실장이 배석했다. 이 실장이 한 위원장에게 사퇴를 요구했다고 알려졌던 터라 이날의 화기애애한 오찬 간담회 장면은 ‘당정 갈등’이 해소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전망을 낳았다.

 여권의 당정 갈등은 총선을 앞두고 단연 이목을 끈 사건이었다. 임기가 3년이나 남은 대통령에게 ‘20년 측근’인 한 위원장이 일종의 반기를 들었다는데, 화제가 안 되면 그게 이상한 일이다. 대통령 비서실장이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한 한 위원장의 대응에 섭섭함을 표했다는 단독 보도가 나오고, 한 위원장이 ‘국민 보고 나선 길, 할 일 하겠다’는 입장문을 내는 등 드라마틱한 서사까지 갖췄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민의힘 지도부와 오찬회동을 하고 있다. 윤 대통령부터 시계방향으로 이관섭 비서실장, 한오섭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사진제공=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민의힘 지도부와 오찬회동을 하고 있다. 윤 대통령부터 시계방향으로 이관섭 비서실장, 한오섭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사진제공=대통령실]

 일련의 전개를 놓고 정치권 안팎에서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실시간으로 반응했던 ‘약속 대련’에서부터 ‘궁정 쿠데타’(신평 변호사)까지 스펙트럼도 다양했다. 대통령과 여당 비대위원장의 마찰이 일종의 기획이었든 실제였든, 여권발 이슈가 흥행에 성공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한동훈 '尹 아바타' 탈피 효과
명품백 의혹 극복 플랜 준비중
오히려 민주당이 숙제 떠안아

 여권 사정을 잘 아는 인사에게 전말을 물었더니 전후 설명 대신 여권이 거둔 효과부터 거론했다. 한 위원장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이 ‘윤석열 아바타’라는 시각이었는데, 여당의 총선 승리를 위해선 그 고리부터 끊는 게 우선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갈등 양상으로 아바타 딱지를 떼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이 인사는 "이 비서실장은 내공이 간단치 않다. 경거망동했을 리가 있느냐"라고 말해 대통령실과 여당 사이에 모종의 공감대가 있었을 수 있음을 내비쳤다.

 한 위원장에 대한 대통령실의 반응이 김 여사 관련 의혹에 대한 대응과 관련한 것이었던 만큼 실전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한 위원장이 ‘국민의 눈높이’를 언급했고, 김경률 비대위원이 ‘마리 앙투아네트’ 발언까지 꺼냈으니 용산에서 불쾌해했을 개연성이 크다. 하지만 이런 변수 속에서도 명품백 수수 의혹을 그대로 두고 총선을 제대로 치르기는 어렵다는 인식은 대통령실과 여당 핵심이 공유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당초 민주당이 띄운 김 여사 관련 논란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검법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출발이었다. 그런데 당정 갈등이 시선을 독차지하는 사이 명품백 사과 논란으로 치환된 측면이 있다. 윤 대통령이 조만간 관련 입장을 밝힐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시점에 맞춰 여권 인사들은 ‘덫에 걸린 쪽에만 사과하라고 하느냐’며 일제히 여론전에 나섰다. 여권 일각에선 '기획 녹화'의 문제점을 국민에게 알리면서 제2부속실 설치 등 보완책과 함께 영부인 경호에 구멍이 뚫린 점을 고려해 경호 라인에 책임을 묻는 조치도 수습책의 하나로 검토 중이라고 한다.

 이번 충돌을 ‘권력 2인자’의 차별화로 보며 일종의 레임덕으로 풀이하는 시각도 있었다. 하지만 여권 인사는 “총선에서 져서 진짜 레임덕이 오는 게 더 심각하다는 점을 여권 수뇌부가 모를 리 있느냐"라고 반문했다. 이번 사건을 거치며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은 나아지지 않았다. 하지만 서울경제·한국갤럽의 25~26일 여론조사 결과,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이 국민의힘에 앞서긴 하지만 한 달 전 조사에 비해 정부·여당 심판론이 5%포인트 낮아졌다. 총선에서 국민의힘 후보를 뽑겠다는 비율은 6%포인트 올랐다. 특히 스윙 보터 지역인 대전·세종·충청에서 국민의힘 후보 선호도가 12%포인트 증가했다.

 당정 갈등 이슈는 오히려 민주당에 숙제를 던진 모양새다. 이전과 달리 여당이 용산을 제대로 견제한다는 이미지를 확보할 경우 선거에서 야당을 뽑아야 할 필요성이 줄어들 수 있다. 대통령실과 여당은 GTX 노선을 경기 평택과 충남 아산까지 연장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민심을 얻기 위한 정책 수단도 동원 중이다. GTX가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시절 시작된 것을 보면 언제 실현될지 알 수 없는데도 이미 평택·김포 등이 들썩이고 있다.

 민주당 출신 인사가 나서 “지역구 의석이 호남 28석, 영남 65석인 데다 강원·충청 등에서 민주당이 밀린다. 이대로면 총선에서 민주당이 질 가능성이 크다”(최병천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는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 그런데도 민주당 의원들은 여전히 여권 내홍을 평가하느라 바쁘다.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이 여권의 실책만 기대하고 유권자에게 어떠한 감동도 주지 못한다면 경고가 현실이 되지 말란 법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