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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사망' 보복은 해야겠고, 확전은 두렵고...딜레마 빠진 바이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미국 백악관은 친(親)이란 민병대의 드론 공격으로 미군 3명이 사망한 것에 대한 보복을 하겠다는 뜻을 재차 강조했다. 그러나 배후로 지목된 이란과의 전쟁은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자국민이 희생된 상황을 방치할 수 없지만, 대선을 앞두고 확전을 피하고 싶은 조 바이든 대통령의 딜레마가 반영된 반응이란 해석이 나온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29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총사령관인 바이든 대통령은 테헤란(이란)의 지원을 받는 단체들이 미군의 목숨을 앗아갔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며 “우리(미국)의 일정과 시간에 맞춰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이란과의 전쟁을 원하지 않고, 군사적 방식으로 이란 정권과 충돌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라며 이란과의 전면전 가능성에는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커비 조정관의 답변에 구체적인 보복의 시기와 방식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이 반복됐다. 그러자 그는 “대통령이 스스로 결정할 사안”이라며 ‘보복은 하되, 확전을 피한다’는 어중간한 입장이 바이든 대통령의 생각임을 시사했다. 커비 조정관은 더 나아가 “헌법상 군 통수권자의 자위권 행사는 의회의 동의가 불필요하다”라고도 설명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을 비롯한 안보 분야 참모들로부터 미국 3명이 사망한 친이란 민병대의 드론 공습과 관련한 보고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을 비롯한 안보 분야 참모들로부터 미국 3명이 사망한 친이란 민병대의 드론 공습과 관련한 보고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역시 이날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무총장과 회담한 뒤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단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응징할 것”이라면서도 “대통령은 중동에서 갈등 확산을 방지하고자 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며 백악관과 정확히 같은 입장을 밝혔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전략소통조정관이 29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보복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이란과의 전면전은 피해야 한다는 어중간한 입장을 밝힌 뒤, 카린 장 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의 브리핑을 불편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AP=연합뉴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전략소통조정관이 29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보복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이란과의 전면전은 피해야 한다는 어중간한 입장을 밝힌 뒤, 카린 장 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의 브리핑을 불편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번 민병대의 드론 공격으로 미군 3명이 숨지고 34명이 부상을 입었다. 지난해 10월 7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시작된 튀 교전 중에 미군이 사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게다가 드론 공격을 받은 미군 기지는 첨단 방어 시설을 갖추고 있었지만, 적(敵)의 드론을 귀환하는 아군의 드론과 구분하지 못하고 그대로 무방비로 노출됐다는 외신 보도도 나왔다. 백악관은 이에 대해 “국방부가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것”이라는 말 외에는 추가 답변을 피했다.

친이란 무장세력의 공격을 받은 요르단 미군 주둔지 ‘타워 22’. AP=연합뉴스

친이란 무장세력의 공격을 받은 요르단 미군 주둔지 ‘타워 22’. AP=연합뉴스

한편 관련 무장 세력들은 추가 공격 가능성을 거론하며 미국을 향한 도발의 수위를 높였다. 이라크의 친이란 무장세력 하라카드 알누자바는 성명을 내고 “미국이 즉각 떠나지 않으면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며 “오늘 떠나지 않으면 하루하루 가혹한 대가가 이어질 것”이라고 위협했다.

다만 이들은 스스로 이번 공격의 배후라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이란 정부도 반미·반이스라엘 세력을 의미하는 ‘저항의 축’은 각자 자율적인 결정을 내린다며 자신들은 이번 공격과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렇듯 미국이 보복에 대한 부담을 노출하는 사이 이스라엘은 이날 이례적으로 낮시간대에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를 공격했다. 시리아 국영매체에 따르면 이날 공습으로 이란군의 군사 고문이 사망했고, 이 과정에서 다수의 민간인도 희생됐다.

확전을 경계하는 듯한 바이든 행정부에 야당인 공화당은 맹공을 퍼부었다. 미치 맥코넬 상원의원은 “미국인의 피를 명예의 훈장으로 달고 있는 이란의 후원자들에 대해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존 코닌 상원의원은 “이란의 이슬람혁명수비대를 향한 즉각 공격”을 요구했다.

미국 여론도 바이든 대통령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바이든의 핵심 보좌관들조차 ‘억지력 회복’을 위해 바이든 정부가 해왔던 일이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며 “특히 대선이 진행되는 올해 이러한 (야당의)요구는 보다 강한 정치적 호소력를 지니게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NYT는 이어 “미국과 유럽이 이미 차단하고 있는 이란의 경제 부문은 거의 없고, 중국은 계속 이란의 석유를 사들이고 있다”며 “바이든 대통령에게 ‘중간 지대’ 성격의 옵션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28일(현지시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브루클린침례교에서 열린 ‘주일 점심’ 행사에서 희생자 추도 묵념을 하는 조 바이든 대통령. 전날 친이란 성향의 이라크 민병대가 시리아 국경에 인접한 요르단 미군기지 ‘타워22’ 를 무인기로 공격해 미군 3명이 숨졌다. AP=연합뉴스

28일(현지시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브루클린침례교에서 열린 ‘주일 점심’ 행사에서 희생자 추도 묵념을 하는 조 바이든 대통령. 전날 친이란 성향의 이라크 민병대가 시리아 국경에 인접한 요르단 미군기지 ‘타워22’ 를 무인기로 공격해 미군 3명이 숨졌다. AP=연합뉴스

한·미연합사 작전참모를 지낸 데이비드 맥스웰 아시아·태평양센터 부대표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군사력을 적절하고 단호하게 사용하려는 힘과 의지를 보여주지 않을 경우 미국의 억지력에 대한 메시지는 약해질 수밖에 없다”며 “역설적이지만 바이든이 원하는 확전을 방지하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분쟁이 통제 불능 상태가 되기 전에 초기에 단호하게 행동하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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