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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까치밥, 한국인의 톨레랑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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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곽정식 수필가

곽정식 수필가

도쿄, 베이징, 모스크바, 런던, 워싱턴DC 같은 외국 수도를 떠올리면 ‘서울처럼 산으로 둘러싸인 수도는 없다’라는 말이 옳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서울 주변의 크고 작은 산들 가운데 한강 남쪽 5㎞쯤에는 높이 300m의 대모산(大母山)이, 또 그 옆에는 비슷한 높이의 구룡산이 있고, 남쪽으로는 청계산이 펼쳐진다.

이 중에서 대모산은 어미 모(母)자가 들어간 산답게 흙이 많아 포근한 느낌을 준다. 흙이 많은 대모산은 전국에서 유행하는 ‘맨발걷기’ 동호인 모임이 시작된 곳이다.

늦가을 감나무 남겨놓는 열매
동물과의 공생 위한 삶의 슬기
까치 소리가 주던 설렘 어디로

삶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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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대모산속 길을 걷다가 길옆을 올려다보면 나뭇가지 사이에 짜임새 있게 지어진 까치집들을 볼 수 있다. 숲속 곳곳에는 까치 외에도 동고비, 딱새, 쇠박새와 어치가 보이고 가끔 딱따구리 나무 쪼는 소리도 들린다. 대모산은 새가 많다는 점에서 다양한 곤충이 사는 이웃 청계산과 조(鳥)와 충(蟲)의 대비를 이룬다.

대모산의 식생을 더 알고자 관리사무소에 들러 김경연 선생을 만났다. 그녀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저는 어려서 지리산 마을에서 커서인지 산과 자연이 늘 그리웠습니다. 그러다 숲해설가 자격증을 얻어서 이곳에 10년째 근무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대모산의 생태변화를 주기적으로 체크하면서 인근 산이나 공원에 근무하는 분들과 정보를 교환합니다.”

얼마 후 김 선생은 대모산 새들에 대해 궁금해하는 분들을 위해 작은 세미나를 열어주었다. 세미나는 데크(deck)를 따라 걸으면서 질문과 답변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참석했던 한 분이 대모산 숲속 군데군데에 쌓아 놓은 통나무 더미가 관리사무소의 난방용인지부터 물었다. 이에 탐조회원인 강춘자 선생은 “저 통나무 더미는 ‘바이오톱(biotope)’이라고 부르는데, 그 안이 따뜻해 시간이 지나면 새들의 먹이가 되는 애벌레가 생깁니다. 이런 애벌레는 텃새들의 먹이가 되지요. 우리나라에는 텃새가 철새보다 많다고 여겨지지만, 텃새는 10%에 불과하고 90%가 철새입니다. 그런데 야생에 사는 철새에게는 먹잇감이 많아도 도회지에 사는 텃새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바이오톱은 배고픈 도회지 텃새들에게 먹이를 제공합니다.”

설명에 막힘이 없어 내친김에 까치의 가족애가 끈끈하다는데 실제로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까치는 엄마 아빠가 아기까치의 똥까지 먹어요. 똥을 먹지 않을 때는 똥을 물어다 버립니다. 천적에게 들키지 않으려고요. 또 기억력이 좋아서 동네에 모르는 사람이 나타나면 까치는 가족과 동료들에게 조심하라고 지저귑니다. 사람들은 같은 동네 밥을 먹는 까치가 손님을 알아보고 반가워서 지저귀는 것으로 오해하지요. 그런데 이런 오해가 까치를 사람들과 더없이 가깝게 만들었지요.”

강 선생의 설명을 들으면서 ‘까치밥’이라는 말이 연상되었다. 한국의 늦가을 감나무에는 으레 따지 않은 감 몇 개가 매달려서 파란 하늘과 대조를 이룬다. 사람들이 무리해서 다 딸 수 있겠지만 몇 개는 ‘까치밥’이라고 하여 남겨둔다. 어쩌면 희소식을 전하는 까치를 가까이 부르려는 의도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런 까치밥은 사람들이 자연의 동료인 동물들에게 보여주는 예의이자 공생의 삶을 위한 슬기라 할 수 있다. 추수할 때도 벼 이삭을 남김없이 거두지 않고 허기진 새들을 위해 논바닥에 몇 가닥의 이삭을 흘리듯 놓는 것처럼 말이다.

소설 『대지』를 쓴 펄 벅 여사는 경주 근처에서 감나무에 감 몇 개가 매달린 이유를 물었다. “저 감들은 따기 힘들어서 남긴 건가요?” “아닙니다. 저건 까치밥입니다. 배고픈 겨울새의 몫이지요.” 이 말을 들은 그녀는 “나는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보았다”라고 말했다.

서양에 관용의 정신 ‘톨레랑스’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나눔의 까치밥이 있다. 우리는 어릴 적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고 생각했다. 우리에겐 이처럼 손님을 살갑게 대하는 풍습이 있었다. 그 시절 어른들은 겨울에 찾아온 자식 친구의 언 손을 잡아 아랫목 이불 밑에 넣어 주셨다. 가난한 친척이 찾아오면 안쓰러워 따뜻한 밥을 먹이고 재워줬다. 또 돈 없는 친구가 찾아와 기약 없이 머물다 가도 형편 되는 대로 노잣돈을 챙겨주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이야기들을 들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우리 집에서 밥 먹고 가!”라는 말은 일상에서 늘 듣던 얘기였다.

까치 소리를 듣고 우리는 누군가를 기다린 적이 있다. 그때는 기다리는 설렘도 있었다. 지금은 누가 찾아온다고 하면 오는 이유부터 묻는다. 손님, 아니 누군가의 방문이라는 말만 들어도 ‘침범’과 ‘방해’로 느끼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러니 “우리 집에서 자고 가!”라는 말은 이제 ‘사어목록(死語目錄)’에서나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설이 다가온다. 친척이나 옛 친구들의 안부를 물어보자. 휴대전화가 바로 옆에 있지 않은가?

곽정식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