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박무늬 한복, 전통 춤 "분더 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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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독일 방문객들이 한국 전통 춤을 관심 있게 쳐다보고 있다. 베를린=유권하 특파원

이달 16일 오전 독일 수도 베를린 중심가 뤼초우우퍼 26번지에 자리 잡은 한국문화원 2층 홀. “거문고 줄은 무엇으로 만들었나요?” “가야금과는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문화원을 찾은 독일인들의 질문이 쉴새없이 이어졌다. 곧 이어 연주가 시작되자 앞줄에 자리 잡은 유치원생들의 눈망울이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비슷한 시각 전통 혼례복 전시장 앞. 화려한 금박무늬로 장식된 한복을 쳐다보던 파란 눈의 어린 여학생들이 연방 "분더 쇤(아주 예뻐요)"를 외치며 발길을 떼지 못한다. 전통 서예 시범이 열린 세미나실도 현지인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였다. 저마다 한지에 독일 이름을 한글 붓글씨로 써주는 기념품을 받으려고 길게 줄지어 섰다.

오전 9시에 시작된 오픈하우스 행사장에 몰려든 인파는 오후 늦은 시간까지도 좀처럼 줄지 않았다. 베를린 주민들은 마지막 프로그램인 선비 춤 공연이 끝난 뒤에도 한동안 자리를 뜨지 않고 1층 갤러리에서 떡과 다과를 들며 담소를 나눴다.

문화원 직원들은 이날 하루종일 밀려드는 현지인들을 맞느라 비지땀을 흘려야 했다. 처음엔 300명가량 찾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두 배가 넘는 600여 명이 몰려들었다. 유치원생에서 김나지움(중.고등학교 과정) 학생과 현지 대학생들까지 다양했다. 노태강 문화원장은 "한국 문화를 직접 몸으로 느낄 수 있도록 체험 위주로 행사를 꾸민 게 주효한 것 같다"며 "한국 문화가 독일에 뿌리내릴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고 환하게 웃었다.

이번 행사는 한국문화원의 역할 변화를 모색하는 차원에서 기획돼 시험적인 성격이 짙었다. 예전 행사는 주로 교민 위주로 프로그램이 짜였다. 그러나 이번엔 기획 단계에서부터 철저히 현지인을 대상으로 했다. 한국문화원이 이제는 교민의 사랑방 수준을 넘어 한국 문화를 현지에 널리 알리는 전초기지가 돼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행사 프로그램도 일회성 이벤트나 공연보다 수준 높은 교양강좌로 채웠다. ▶한국학 입문 강의 ▶한글 소개 ▶전통 동양 침술 안내 ▶국악이란 무엇인가 등 독일인들의 관심을 끌 만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그렇다고 딱딱한 강좌만 준비한 건 아니었다. 최신 설비가 갖춰진 한국영화 감상실에서는 독일어로 자막 처리된 '인어공주' '살인의 추억' 등 한국 영화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노 원장은 "현지인들이 과연 자발적으로 관심을 갖고 찾아와 줄지 반신반의했다"고 말했다. 문화원 측은 신문 광고도 베를린 지역신문 한 곳에만 짤막하게 냈다. 교민단체에 인원 동원을 부탁하던 관행도 과감히 깼다. 이정일 문화담당은 "내심 걱정을 많이 했는데 아침부터 줄을 서는 현지인들 행렬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한국 판소리에 관심이 많다는 음악평론가 마티아스 엔트레스는 "문화원 본연의 역할을 되찾은 매우 뜻깊은 행사"라고 평가했다. 그는 "현지 언론만 신경 쓰는 국가 홍보보다는 이번 행사처럼 문화 체험을 통한 한국 알리기가 독일인들의 마음을 훨씬 더 사로잡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베를린=유권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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