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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재집권 가능성에 떨고 있는 지구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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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5호 09면

막 오른 미 대선…왜 다시 트럼프인가

지난해 12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가운데)이 독일 비스바덴에 있는 미군 유럽·아프리카 사령부를 방문해 지휘관들의 설명을 듣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해 12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가운데)이 독일 비스바덴에 있는 미군 유럽·아프리카 사령부를 방문해 지휘관들의 설명을 듣고 있다. [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공화당의 대선 후보 등극에 성큼 다가섰다. 이 기세라면 3월 말 전에 대의원 과반을 확보하면서 경선이 사실상 종료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미국 역사상 1892년 대선 이후 처음으로 전직 대통령이 자신을 꺾었던 현직 대통령과 재대결을 벌이게 된다.

만약 오는 11월 5일 대선에서 트럼프가 승리해 내년 1월 20일에 대통령에 취임하게 된다면 한국을 포함한 세계는 다양한 트럼프 리스크에 또다시 직면하게 된다. 예측 불허 트럼프의 일방적인 정책을 가늠하기 쉽지 않지만 1기 행정부 당시와 트럼프 개인 성향을 기초로 어느 정도 추정은 가능하다.

군사 안보 차원에서 볼 때 트럼프는 잘 알려진 대로 미국의 해외 분쟁 개입을 극도로 싫어한다. 동맹 관계나 미국의 대(大)전략에 따른 기존의 전략적 가치도 고려 대상이 아니다. 이에 따라 유럽, 중동, 아시아 등 곳곳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가장 즉각적인 영향이 미칠 곳은 우크라이나다. 트럼프는 우크라이나 지원을 중단할 것이 분명하다. 이미 공화당 유권자들 대다수와 중도층은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에 부정적인 터라 트럼프가 마주칠 정치적 반대도 거의 없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도 조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간의 입장차는 분명하다. 바이든은 젊은 세대와 미국 내 소수 인종을 신경 써야 하기에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이스라엘과 다른 노선임을 강조하는데 반해, 개신교 세력을 선거에 동원해야 하는 트럼프로서는 이스라엘 지지를 확고히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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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이번 미국 대선에서 유권자들은 어떤 후보를 선택할지 이미 마음을 정한 상태다. 문제는 선거 때 투표하러 갈 것인지 말 것인지다. 이스라엘을 둘러싼 바이든과 트럼프의 정책 차이는 투표율에서 중요 변수 중 하나가 될 전망이다.

대만 유사시와 관련해선 바이든이 대만에 대한 절대적 수호 입장이지만, 트럼프는 선거 기간 동안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할 심산이다. 우크라이나든 중동이든 대만이든 북한이든 자신의 임기 중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이 당선되면 바이든의 안보 정책 실패를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선전 중이다.

트럼프의 경제 리스크는 어떠할까. 일단 1기 행정부 당시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요구처럼 한국만 따로 치르는 비용 구도와는 다소 다른 전개가 유력하다. 현재까지 파악된 리스크는 수입 품목 전반에 걸친 10% 관세 부과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폐기 공언 등이다. 1974년에 제정된 무역법의 301조에 근거한 관세 부과는 자유무역과 세계화에 대한 적대감이 팽배한 미국 유권자들을 위한 맞춤형 통상 정책이다. 바이든 행정부와 전문가 집단이 나서서 미국의 소비자에게 돌아갈 피해와 물가상승 우려, 그리고 전 세계 국가들이 취할 대미 보복 무역 조치 가능성을 아무리 설파해도 선거 기간 중에는 공감을 얻기 어려워 보인다. 추후 미국 경제에 부작용이 드러나는 시점에 가서야 트럼프는 관세 인하를 유인책으로 유럽 및 아시아 국가들과의 개별 협상에 나설 가능성이 큰데, 2020년 초 중국과의 협상 타결이 전례다. 실제로 관세 부과보다 우리 기업에 더 심각한 트럼프 리스크는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전면 폐기 시나리오다. 배터리를 포함한 에너지와 기후 환경 관련하여 이미 추진 중인 생산 및 투자 계획에 상당한 파급력이 미칠 전망이다. 청정에너지 산업과 기술에 약 3700억 달러 규모에 이르는 세제와 금융 혜택을 부여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경우 지난 2022년 여름 입법 당시의 한국 전기차에 미칠 피해 우려는 거의 해결됐지만 우리 기업이 중국과의 배터리 산업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호재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11월 5일에 대선과 함께 치러질 의회 선거도 중요하다. 현재 전망으로는 상원 선거에서 공화당 현역 의원이 출마하는 11곳 모두 낙승이 확실한 반면, 민주당이 지켜야 하는 23석 가운데 적어도 3석이 경합 중이고 그 중 이미 1석은 공화당에 빼앗길 것이 분명하다. 그 경우 2025년 1월 3일에 개원하는 새 의회에서 상원 공화당은 적어도 50석 이상을 획득하고 하원 공화당은 현재의 다수당 지위를 유지하게 되므로 트럼프 1기 행정부 첫 2년(2017~2018)과 마찬가지로 공화당 대통령-공화당 의회 시대가 만들어진다. 다만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전면 폐기될지는 불투명하다. 우선 입법 과정으로만 보면 상원 의사규칙 자문관의 판단에 따라 인플레이션 감축법 폐기 법안을 예산조정절차에 태우게 된다면 필리버스터가 배제되므로 상하원 모두 단순 과반으로 폐기 법안의 통과가 가능하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첫째,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포함된 막대한 규모의 세금 및 금융 혜택과 그로 인한 생산 투자 계획이 다수의 공화당 지역구에서 진행 중이라는 점이다. 둘째, 인플레이션 감축법 안에 포함된 처방전 약값 인하, 특히 인슐린 비용을 한 달에 35달러 이하로 낮춘 점 등으로 인해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전부 폐기해 버리는 데 대한 정치적 부담이 공화당에도 따른다. 또한 폐기하더라도 이미 지출이 확정된 경우에는 예산 회수도 불가능하다. 만일 기후 위기 관련 조항들만 따로 떼어서 법 개정을 하려고 한다면 예산조정절차에 적용하는 것이 불분명해지며 민주당 상원의 필리버스터에 의해 좌초될 가능성이 크다. 결론적으로 트럼프가 당선되는 경우 안보 및 통상과 관련된 리스크가 적지 않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우리가 이미 트럼프의 정책 기조를 겪어봤기에 대처가 가능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서정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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