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홍색영화에 울고, 모범생은 공청단 가입… 교육현장 스며든 시진핑 사상

중앙일보

입력

차이나랩

차이나랩’ 외 더 많은 상품도 함께 구독해보세요.

도 함께 구독하시겠어요?

중국 교실에서 수업 중인 학생들. 게티이미지뱅크

중국 교실에서 수업 중인 학생들. 게티이미지뱅크

시진핑(習近平) 중국 주석의 권위는 흔히 마오쩌둥(毛澤東)과 덩샤오핑(鄧小平)에 비견된다. 하지만 외부의 중국 전문가 상당수는 혁명 세대가 아닌 시진핑의 카리스마는 마오나 덩에 미치지 못한다고 평가한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시진핑은 당·정·군 내 공식 조직들을 자신이 직접 관할하도록 변경했다. 민간에 대해서는 교육과 통제를 강화했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겐 당성(黨性)을 주입하는데 주력한다. 중화권 매체들에 따르면 각 지역의 중점 초등학교엔 시진핑의 특대형 초상화와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 등이 쓰인 플래카드가 교실 안팎 곳곳에 걸려 있다. 24자로 된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은 아이들이 반복적으로 암송해야 하는 일종의 숙제다. 시진핑이 공산당 총서기로 처음 선출되던 2012년 18차 당대회 때 발표된 이 문장은 국가 가치관으로 부강, 민주, 문명, 조화를, 사회 가치관으로 자유, 평등, 공정, 법치를, 개인 가치관으로 애국, 직업정신, 성실과 신용, 우호를 천명하고 있다.

24자를 외우는 것은 어렵지 않다. 여기에 더해 당은 학생들에게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 학생 독본〉이라는 책을 나눠줬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시진핑 개인 숭배가 주 내용이다. 중국을 북한에 빗대 ‘서(西)조선’이라고 자조 섞인 풍자를 하던 자국민들이 떠오른다. 중국 당국은 해당 수업을 교장이 직접 관할하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국어 교과서엔 ‘시진핑 할아버지가 나무를 심다’, ‘주더(朱德·마오쩌둥의 혁명 동지)의 멜대’, ‘국기 게양’, ‘인민을 위해 복무’ 같은 글들을 볼 수 있다.

‘꼬마 기자’ 프로그램도 있다. 아이들을 ‘애국주의 기지’, 문화센터 등에 데려가 교육한 후 반에서 보도를 내고 벽보를 만들게 한다. 모범생들을 공산당 산하 청소년 조직인 소년선봉대나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에 가입하도록 해 가입하지 않은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열등생으로 인식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영화도 훌륭한 선전 수단이다. 〈나와 나의 조국〉, 〈장진호〉같은 ‘홍색 영화’를 보도록 학교 측이 장려한다. 수업에선 영화 감상평을 발표한다. 6·25 전쟁에서 중국군과 미국군의 전투를 다룬 〈장진호〉를 본 아이들은 “선생님, 저는 화가 나서 죽을 것 같습니다” “미군이 고기, 생선 등을 마음껏 먹는데 중국군은 감자조차 먹지 못하는 장면을 보고 영화 속에 쳐들어가 음식을 빼앗고 미군을 죽이고 싶었어요” 같은 반응들을 보인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샤오펀훙(小粉紅)’이라 불리는, 공산당에 세뇌돼 격앙된 정서로 공산당을 대변하는 젊은이들이 양산된다. 이들은 당과 국가를 동일시하는 교육을 받고 자란다. 공산당은 지난해 ‘애국주의 교육법’을 통과시켜 ‘애국애당(愛國愛黨)’을 법률로 명문화했다. “학교가 영재들을 망치고 있다. 아이들이 독립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 기계가 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학부모들도 ‘교육’ 대상이다. 학부모들은 일종의 학습 프로그램을 다운받아야 한다. 시진핑을 칭송하는 내용의 동영상이다. 학교는 매달 학부모가 규정대로 동영상을 다 봤는지 점검하고, 규정에 미달할 경우 학부모 단톡방(위챗 그룹 채팅)에 이름을 공개한다.

교육뿐만 아니라 전방위적인 주민 통제도 시진핑 체제의 수단이다. 중국 당국은 이른바 ‘왕거화(網格化) 관리’를 실시하고 있다고 한다. 2019년 10월 도입된 이 제도는 도시의 관리 구역을 격자(grid)로 나눈 뒤 디지털 플랫폼 등을 활용해 기층(基層)을 관리하는 방식이다. 주로 주거 지역을 중심으로 가구를 일정 단위로 묶어 감독한다. ‘격자 관리인’, ‘10가구 감독관’ 등으로 불리는 중국 행정조직의 최말단 관리들이 각 격자를 관리한다.

모든 주거 지역에는 기본적으로 인민을 감시하는 요원이 배치돼 있다. 위챗을 감시하는 사이버 경찰 1명, 파출소 경찰관 1명, 지역 담당 공무원 1명이 그 역할을 수행한다. 민감한 키워드에 연루된 사람이 발견되면 연행해 조사도 한다. 일종의 연좌제도 실시된다고 한다. 당국의 감시망에 ‘찍힌’ 전과가 있으면 가족 등 주변 사람들이 진학과 취업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최근엔 중국 정부의 이런 교육과 통제에 불만을 가지고 ‘저우셴(走線)’을 감행하는 이들이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선 위를 걷다’는 뜻의 이 신조어는 멕시코 등 중남미를 경유해 미국으로 밀입국하는 중국인 유민(流民)들을 일컫는다. 멕시코인 등 국경을 통해 미국으로 밀입국하는 중남미인들 대열에 중국인들도 끼어있다는 것이다. 만약 외국인 밀입국을 강하게 단속하기로 유명한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차기 대통령이 된다면 이마저도 힘들어질 가능성이 높다.

차이나랩 이충형 특임기자(중국학 박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