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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여우사냥꾼, 美 상대한다…"中외교부장 류젠차오 낙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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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류젠차오(劉建超, 가운데) 중국 공산당 대외부장이 지난 1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를 방문해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등 미국 인사들을 만나고 있다. AP=연합뉴스

류젠차오(劉建超, 가운데) 중국 공산당 대외부장이 지난 1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를 방문해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등 미국 인사들을 만나고 있다. AP=연합뉴스

"중국은 북한과 미국이 융통성을 보여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유리한 방식을 취하기를 바란다."  

2006년 8월 4일 당시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었던 류젠차오(劉建超)가 방한해 한국 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했던 발언이다. 그는 이때 외교통상부(현 외교부) 초청으로 서울을 방문했다. 약 18년이 지난 지금, 6자회담은 북한의 표현을 빌려오면 "죽었다"는 상태이며, 강산도 변했다. 류젠차오 당시 대변인의 상황도 변했다. 정확히 말하면, 그의 위상은 한결 높아졌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의 24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그는 차기 중국 외교부장(외교부 장관)으로 사실상 낙점됐다고 한다. 외교부의 얼굴이자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외교 복심으로 한반도 정세와 전망에도 큰 영향을 미칠 키 플레이어가 되는 셈이다.

WSJ 기사의 요지는 "시 주석의 반 부패 캠페인에 앞장섰던 인물이 중국의 외교부장이 될 준비를 마쳤다"는 것이다. 류젠차오의 현재 명함엔 중국 공산당 대외부장이라는 직함이 적혀있지만 최근 그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공산당의 사정 기구, 국가예방부패국의 부국장이었다. 시 주석의 권력 다지기에서 중요한 단계이자 도구였던 부패 척결의 선봉에 서 있었다. WSJ는 "시 주석의 부패 척결은 '여우 사냥'이라 불렸다"며 "류젠차오는 그 핵심 인물이었다"고 풀이했다.

중국에선 해외에 도피한 부패 사범을 검거해 송환하는 일을 '여우 사냥 작전', 또는 '하늘의 그물'이라는 뜻인 '톈왕(天網)'으로 부르고 있다. 이밖에도 전ㆍ현직 고위 관료가 부패 의혹으로 낙마하는 것은 '호랑이 사냥,' 하위직이 부패 의혹으로 낙마하는 것은 '파리 사냥'이라고 부른다. 시 주석 집권 초반에 이런 '사냥 작전'이 많았던 것을 두고 권력 장악을 위한 도구라는 비판도 해외 매체를 중심으로 나왔다. 류젠차오는 이중에서도 해외 사범 검거인 '여우 사냥'에서 주요 축을 담당했다.

류젠차오(劉建超) 중국 공산당 대외부장이 지난해 11월 호주 시드니를 방문해 중국과 호주의 관계 발전에 대해 연설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7월 이후 부쩍 해외 출장을 두루 다니고 있다. AP=연합뉴스

류젠차오(劉建超) 중국 공산당 대외부장이 지난해 11월 호주 시드니를 방문해 중국과 호주의 관계 발전에 대해 연설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7월 이후 부쩍 해외 출장을 두루 다니고 있다. AP=연합뉴스

시 주석은 지난 여름, 친강(秦剛) 당시 외교부장 후임을 물색하며 고민에 빠졌다고 WSJ는 전했다. 그의 오랜 외교 복심인 왕이(王毅) 공산당 정치국 위원 외에 마땅한 새로운 인물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천거 인물 리스트에서 류젠차오의 이름을 발견했고, 그를 낙점하기로 했다고 WSJ는 전했다.

문제는 류젠차오의 대미 외교 경험이 많지 않았다는 점이다. 요동치는 미ㆍ중 관계 속에서 시 주석으로선 미국을 상대할 외교부장 선정이 중요할 수 밖에 없다. WSJ는 "시 주석은 그래서 왕이를 일단 외교부장으로 다시 임명하고, 그 사이 류젠차오가 대미 외교 경험을 더 쌓도록 조치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외교의 얼굴인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지난 12일, 워싱턴DC에서 마주한 인물이 류젠차오였던 데엔 이런 배경이 깔려있다.

지난 1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국무부에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마주앉은 류젠차오와 중국 대표단.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국무부에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마주앉은 류젠차오와 중국 대표단. 로이터=연합뉴스

두 사람의 만남은 미ㆍ중 관계의 주요 변수였던 대만 총통 선거 직전이었다. 미국 외교를 현재 대표하는 블링컨과, 곧 대표할 류젠차오가 마주 앉아 서로의 의중을 떠보는, 일종의 상견례 자리였다. 류젠차오는 블링컨뿐 아니라 사모펀드인 블랙스톤의 스티븐 슈워츠먼 최고경영자(CEO) 등 미국의 정치와 경제를 대표하는 인사들을 두루 만났다. 블랙스톤은 대중 투자에 적극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현재 미국 외교의 얼굴인 토니 블링컨(오른쪽) 국무장관과, 근미래 중국 외교의 얼굴, 류젠차오(劉建超). 지난 12일(현지시간) 국무부에서 만났을 당시 찍은 사진이다. 신화=연합뉴스

현재 미국 외교의 얼굴인 토니 블링컨(오른쪽) 국무장관과, 근미래 중국 외교의 얼굴, 류젠차오(劉建超). 지난 12일(현지시간) 국무부에서 만났을 당시 찍은 사진이다. 신화=연합뉴스

류젠차오는 중국 지린(吉林)성 더후이(德惠)에서 태어나 베이징 외국어학원 영어학과를 졸업한 뒤 86년 외교부에 입부했다. 이후 요직인 외교부 대변인을 거쳤고, 주필리핀 및 주인도네시아 대사, 부장조리(차관보) 등을 역임했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국제관계학을 공부했다는 기록도 나온다. 외교부 입부 전엔 영어 번역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미국 대선 등을 앞둔 중요한 시기에 중국 외교의 얼굴로 낙점됐다.

시 주석은 그를 언제 임명할까. WSJ 등 여러 매체의 보도를 종합하면 3월에 예정된 중국의 주요 정치행사,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가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WSJ는 "류젠차오의 외교부장 임명 관련 사실을 확인해달라고 중국 정부에 요청했으나, 답을 들을 수 없었다"고 전했다. '노 코멘트'였다는 의미다. 부인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예스'일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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