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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 분노 파고드는 독일·프랑스 극우 정당..."EU '농업 파괴' 막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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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22일(현지시간) 프랑스 툴루즈 인근의 고속도로를 점거한 한 트랙터 앞에 "농부가 화났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프랑스 농민들은 지난 18일부터 이곳을 막고 있다. AFP=연합뉴스

22일(현지시간) 프랑스 툴루즈 인근의 고속도로를 점거한 한 트랙터 앞에 "농부가 화났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프랑스 농민들은 지난 18일부터 이곳을 막고 있다. AFP=연합뉴스

유럽의 극우 정당이 ‘농민의 분노’를 활용해 몸집을 불리려 한다는 진단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독일·프랑스 등에선 인플레이션과 에너지 위기의 직격탄을 맞았음에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그린딜’(EU의 탄소중립 목표)에 따라 인상된 디젤 관련 세금과 규제를 감당해야 하는 농민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농민들의 반정부 시위가 각국으로 확산하는 가운데, 반이민 정서에 기대어 세를 불린 유럽의 극우 정당들이 농민의 불만을 대변하겠다며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다. 오는 6월 예정인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 정당들의 득세 가능성이 한층 커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극우 정당 “우리 농업 죽이려는 EU 막겠다”

지난 21일(현지시간)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농민들의 분노에 유럽연합(EU)에 대항하는 (극우 정당) RN(국민연합)이 회복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전날에도 이 매체는 “유럽 전역에서 농민들의 분노가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 유럽 곳곳에선 농민들의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프랑스에선 지난 16일 수백 대의 트랙터·트럭이 툴루즈로 향하는 고속도로에 집결했다. 비도로용 경유에 대한 면세 혜택의 단계적 폐지와 EU가 제시한 토지 휴경 의무 등 규제에 반발해서다.

프랑스 농민들은 지난해 11월에도 척박한 현실에 대한 관심을 모으겠다며 도시와 마을의 표지판을 거꾸로 뒤집는 운동을 벌였다. ‘세상이 온통 거꾸로’라는 메시지를 담았다면서다. 다음 달 24일~3월 3일 파리에서 열리는 국제농업박람회를 앞두고도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19일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내무부 장관에게 지사들이 농부들을 만나보라 지시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지난달 8일 프랑스 한 마을의 표지판이 거꾸로 뒤집혀 있다. 프랑스 농민들은 농업 정책에 대한 반발로 이같은 뒤집기 운동을 벌였다. AFP=연합뉴스

지난달 8일 프랑스 한 마을의 표지판이 거꾸로 뒤집혀 있다. 프랑스 농민들은 농업 정책에 대한 반발로 이같은 뒤집기 운동을 벌였다. AFP=연합뉴스

이런 와중에 극우로 평가 받는 조던 바르델라 RN 의장은 지난 20일 가축 농장을 찾아 사진을 찍고 농부들과 만나며 “프랑스 농업을 죽이려는 유럽연합에 대한 유일한 보루”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RN은 EU가 서명한 자유 무역 협정에서 ‘농업 예외’를 설정하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에선 농민들의 반발이 거세지며 2018년 벌어졌던 반정부 시위인 ‘노란 조끼 운동’ 같은 움직임이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독일도 유사한 상황이다. 지난 15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앞 광장에는 농민 1만 명 이상이 집결했다. 농업용 디젤 보조금을 폐지하려는 정부에 맞서 트랙터 5000대와 트럭 2000대가 도심을 막아서며 일대 교통이 마비됐다.

시위대 일부는 정부 퇴진을 요구했고, 올라프 숄츠 총리는 “농민 시위에 극우 정당이 개입하고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실제 극우 성향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최근 인기가 상승해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2위를 기록했다.

우익 극단주의 전문가인 요하네스 키스 라이프치히대 사회학과 교수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좌절감으로 인해 농민협회가 극우 포퓰리즘 논리에 취약해질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15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앞 광장에 5000여 대가 넘는 트랙터와 2000대 가량의 트럭이 줄지어 서 있다. 독일 정부의 경유 보조금 삭감 폐지를 주장하며 지난 8일 시작된 농민들의 시위는 이날 절정에 이르렀다. AP=연합뉴스

15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앞 광장에 5000여 대가 넘는 트랙터와 2000대 가량의 트럭이 줄지어 서 있다. 독일 정부의 경유 보조금 삭감 폐지를 주장하며 지난 8일 시작된 농민들의 시위는 이날 절정에 이르렀다. AP=연합뉴스

6월 유럽의회 선거 앞두고 긴장 고조

루마니아·네덜란드 등 다른 유럽국가에서도 농민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9일 루마니아에선 ‘농민형제여, 단결하라!’는 구호를 내걸고 트랙터들이 부쿠레슈티로 향하는 진입로를 습격했다. 이들은 보조금을 늘리고 휘발유 가격을 인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네덜란드에선 오염가스 배출을 50% 줄이기 위해 젖소 등 가축 수를 최소 30% 줄이겠다는 목표를 발표한 이래 농민시민운동(BBB) 정당이 약진한 바 있다. BBB는 극우인 헤이르트 빌더르스와 연합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6월로 예정된 유럽의회 선거를 둘러싼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24일 EU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에선 “EU의 농업과의 전쟁에 반대한다”는 시위가 벌어질 예정이다.

르몽드는 “농민들은 지금까지 인플레이션과 에너지 위기의 결과에 대한 정치적 논쟁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였다”며 “그러나 원자재 및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많은 농장의 마진이 침식됐다”고 지적했다. 예나대 노동 사회학자인 클라우스 되레도 “농민들은 자신들이 고려되지 않는다고 느끼면서 보다 공격적인 항의 방법으로 전환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농민들을 규합하며 세를 불리고 있는 극우 세력을 견제하려는 움직임도 커지고 있다. 독일에선 AfD 정치인들이 이민자를 대거 추방하는 계획을 논의했다는 보도가 나온 뒤 19~21일 전역에서 140만 명 이상이 Afd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가했다.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21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 모여 시위를 벌이고 있다. 주최 측은 지난 19일부터 사흘간 전국 약 100개 도시에서 140만 명 이상이 시위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AP=연합뉴스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21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 모여 시위를 벌이고 있다. 주최 측은 지난 19일부터 사흘간 전국 약 100개 도시에서 140만 명 이상이 시위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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