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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억 인도 무슬림 떤다" 모디 집전한 힌두교 사원 봉헌 뭐길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22일(현지시간) 새 힌두교 사원의 봉헌식을 직접 집전했다. 행사를 주관하는 모디 총리의 모습은 뉴스 채널을 통해 인도 전역에 24시간 방영됐고,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의 대형 TV에서도 방송됐다.

국교를 정하지 않는 세속국가에서 국가 지도자가 특정 종교 행사를 직접 주관하는 건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이를 두고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인도를 힌두 국가로 선포하고, 인도 무슬림을 2등 시민으로 강등시켰다"고 평가했다.

 22일(현지시간)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아요디아의 힌두 사원을 봉헌하기 위해 걸어가고 있다. AFP=연합뉴스

22일(현지시간)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아요디아의 힌두 사원을 봉헌하기 위해 걸어가고 있다. AFP=연합뉴스

총리가 집전한 봉헌식, 꽃장식만 3000㎏

로이터통신과 CNN방송, 알자지라 등에 따르면, 이날 인도 북부 도시 우타르프라데시주(州)의 아요디아에서는 힌두교의 신 람(Ram)을 모시는 힌두 사원이 개관했다.

생방송으로 중계된 봉헌식은 모디 총리가 직접 주재했다. 모디 총리는 이 행사를 위해 지난 11일간 단식과 기도에 전념했다고 CNN은 전했다. 힌두 민족주의자들은 아요디아가 ‘힌두교의 바티칸’이 될 것이라며 환호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22일(현지시간) 힌두 신 람의 웅장한 사원을 둘러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22일(현지시간) 힌두 신 람의 웅장한 사원을 둘러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 사원은 분홍색 사암으로 지어진 3층 건물이다. 건축비로 150억 루피(약 2400억 원)가 투입됐다. 지난 16일부터 람의 신상을 사원 안으로 옮기는 작업이 시작됐고, 힌두교 사제들은 이에 맞춰 기도와 의식을 진행해왔다.

아요디아 거리는 온통 꽃과 향, 힌두교를 상징하는 샤프란(주황)색 깃발로 가득 채워졌다. 사원의 꽃 장식 담당자인 산자이 다와리카르는 “20가지가 넘는 품종의 꽃 3000㎏을 사용했다”고 전했다.

봉헌식은 금 장신구와 다이아몬드‧꽃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람의 신상이 공개되고 모디 총리와 사제들이 기도하며 신상 앞에 제물을 바치며 절정에 달했다. 이때 군용 헬리콥터가 사원 부지 곳곳을 날며 꽃잎을 뿌렸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22일(현지시간) 인도 아요디아의 힌두 사원에서 힌두 신 람의 신상 앞에서 의식을 수행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22일(현지시간) 인도 아요디아의 힌두 사원에서 힌두 신 람의 신상 앞에서 의식을 수행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날 행사에는 인도의 유명 정치인을 포함해 볼리우드의 수퍼 스타 아미타브 바찬, 크리켓 선수 사친 텐둘카르, 인도 최대 부자인 무케시 암바니 릴라이언스 그룹 회장 등 7000여 명이 참석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날 100여 대의 전세기가 아요디아 국제 공항에 착륙했다.

모디 총리가 소속된 집권당 인도인민당(BJP)은 인도 전역에서 축하 행사를 열었다. 대다수 주(州) 정부는 봉헌식을 기념하기 위해 공휴일을 선포하고 주류 판매점의 문을 닫았다. 강추위가 몰아닥친 미국의 타임스퀘어에서도 힌두 사원 개관을 축하하는 행사가 열렸다.

인도 아요디아의 힌두 사원 봉헌식에서 헬리콥터가 공중에서 꽃을 뿌리고 있다. EPA=연합뉴스

인도 아요디아의 힌두 사원 봉헌식에서 헬리콥터가 공중에서 꽃을 뿌리고 있다. EPA=연합뉴스

16세기 이슬람사원 파괴. 힌두 사원 봉헌

이날 봉헌식을 두고 외신들은 “힌두교도의 승리이자, 2억 인도 무슬림의 절망”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이날 인도의 무슬림 공동체는 외출을 삼가고, 혼자 자동차를 운전하지 말고, 무슬림임을 나타내는 옷을 입지 말라는 내용을 공유하며 두려움에 떨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이날 봉헌된 힌두 사원의 부지는 16세기 무굴제국 때 지어진 모스크(이슬람 사원)인 바브리 마스지드가 있던 곳이다. 하지만 힌두교도들은 이곳이 힌두 신 람의 출생지로, 원래 힌두 사원이 있던 곳이라 믿고 있었다.

1992년 힌두교 과격 단체인 ‘힌두 민족 의용단’이 바브리 마스지드 모스크에 난입해 이를 파괴했고, 그 여파가 인도 전역으로 번져 곳곳에서 종교적 충돌 끝에 무슬림 2000여 명이 숨지는 유혈 참사까지 벌어졌다. 이 폭동은 1947년 인도 독립 이후 최악의 참사로 꼽힌다.

힌두 근본주의자들이 1992년 아요디아 시의 모스크를 쇠막대기로 파괴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힌두 근본주의자들이 1992년 아요디아 시의 모스크를 쇠막대기로 파괴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후 힌두교도와 무슬림은 이 땅에 자신들의 사원을 짓게 해달라고 법적·정치적 분쟁을 벌여왔다. 법적 다툼은 2019년 인도 대법원이 힌두교도의 손을 들어주면서 일단락됐다. 이번에 봉헌된 아요디아의 힌두 사원은 올해 12월 완공된다.

타임은 아요디아의 힌두 사원 봉헌식이 모디 총리의 정치 경력에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아요디아의 모스크가 파괴된 1992년, 당시 구자라트 주지사였던 모디는 “아요디아에 힌두 사원이 들어설 때까지 이곳에 돌아오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30여 년이 지난 이날 이 곳을 찾아 힌두 사원을 봉헌하며 “인도가 독립을 얻은 날”에 비유했다. 모디는 1992년 참사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아요디아의 힌두 사원 건설현장에 노동자들이 줄지어 서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해 12월 아요디아의 힌두 사원 건설현장에 노동자들이 줄지어 서 있다. AFP=연합뉴스

"힌두트바 시작" "총선 캠페인" 비판

이에 대해 무슬림들은 “아물지 않은 상처에 굵은 소금을 문지르는 것 같다”면서 “모디 총리의 ‘힌두트바(인도는 힌두교의 땅이 돼야 한다는 이념)’ 어젠다 실현을 알리는 행사같다”고 NYT에 전했다. 특히 아요디아에 거주하는 무슬림들은 “힌두교도들이 아요디아를 힌두교의 성지라 강조하면서, 무슬림을 몰아낼 수 있다”면서 “다른 지역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라 우려했다.

지난해 11월 디왈리 축제를 맞아 화려하게 장식한 아요디아의 모습. AP=연합뉴스

지난해 11월 디왈리 축제를 맞아 화려하게 장식한 아요디아의 모습. AP=연합뉴스

한편 이번 행사에 대해 힌두교도 사이에서도 비판이 제기됐다. 특히 야당은 오는 4~5월 총선을 앞두고 모디 총리가 인구의 80%인 힌두교도에게 사원의 이름으로 표를 구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봉헌식을 보이콧했다.

BJP의 대변인 수단슈 트리베디는 야당의 비판에 대해 “모디 총리에 대한 질투, 악의, 열등감의 폭발”이라며 “야당은 국가와 신에 맞서고 있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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